이탈리아 파시즘⑦…패전, 그리고 무솔리니 체포
이탈리아 파시즘⑦…패전, 그리고 무솔리니 체포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0.2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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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축국에 참여해 2차 대전 참전…패전 책임 물어 국왕이 해임

 

2차 세계대전 시작은 19399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날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틀후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영연방 국가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 참전하면서 전쟁은 국제전으로 비화되었다.

전쟁 초기 이탈리아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 영국은 이탈리아에게 연합국의 편에 들 것을 요청했지만, 프랑스는 이탈리아와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었다. 파시스트들은 원래 이탈리아 땅이던 니스와 사보이, 코르시카를 돌려 달라고 프랑스에 요구했고, 아프리카에서도 지부티, 튀니지에서 프랑스와 충돌하고 있었다. 독일의 침공을 받은 후 프랑스는 남부에서 이탈리아와 부딪치는 것을 걱정해 국경문제를 선의적으로 논의하자고 입장을 바꾸었지만, 무솔리니는 프랑스의 제의를 거부했다.

무솔리니는 독일군에 의해 파리가 점령되기 직전인 1940610, 전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해 프랑스와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프랑스 남부를 공격했다.

 

군중 앞에 선 무솔리니 /위키피디아
군중 앞에 선 무솔리니 /위키피디아

 

초기 이탈리아군은 승기를 잡고 적진으로 진격했다. 프랑스에서 니스, 모나코, 사보이 일대와 코르시카 섬을 점령했다. 발칸반도에서도 그리스를 쳐들어 갔다. 리비아에 주둔한 이탈리아군은 영국 보호령인 이집트를 공격했고, 프랑스령인 튀니지를 장악했다. 에티오피아에선 영국령 소말리아와 수단을 쳐들어갔다.

하지만 이탈리아군의 공격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저항에 부딛쳤다. 그리스는 완강하게 반격했고, 이집트를 쳐들어간 이탈리아군은 물자 보급이 늦어져 지연되다가 영국군의 저지로 멈춰섰다. 에티오피아 전선에서도 영국군은 파죽지세로 반격했다.

이탈리아군은 리비아와 에티오피아, 알바니아와 같은 나라보다는 강했지만, 유럽 강대국 군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약체였다. 군수장관 카를로 파바그로사(Carlo Favagrossa)1942년이 되어야 유럽국가와 전쟁을 벌일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무솔리니는 2년이나 앞당겨 참전한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농업국가였고, 산업시설은 영국과 프랑스의 15% 수준에 불과했다. 전쟁에 필요한 철강, 자동차, 석탄, 원유 생산능력은 프랑스나 영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초기에 밀물처럼 밀고들어 가던 이탈리아군은 이내 힘에 부쳐 곳곳에서 퇴각했다. 1)

 

2차 대전 초기, 이탈리아 공격 지역 /위키피디아
2차 대전 초기, 이탈리아 공격 지역 /위키피디아

 

에티오피아는 영국군의 진주에 힙입어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했고, 이집트 케넨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은 두배나 많은 병력으로도 영국군에 참패를 당했다. 이탈리아군이 여기저기서 패주하자 독일군이 투입되었다. 그리스와 유고슬라비아 전선에선 독일군이 가담하면서 이탈리아는 보조부대로 전락했다. 아프리카 전선에도 독일군이 이탈리아군을 지원했다.

19416월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군은 소련을 침공했다. 히틀러는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는데, 무솔리니가 먼저 나서 동부전선에 이탈리아군의 투입을 제의했다. 무솔리니는 내각회의에서 내가 걱정하는 것은 우리 군이 투입되기 전에 독일이 소련에 승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며 동부전선 투입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소련군은 독일군에겐 무력하게 무너졌지만 이탈리아군에겐 강했다. 이탈리아군에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

19411211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시작으로 미국이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유럽 전선에 참전했다.

194210, 이집트 엘알라마인 전투(Battle of El Alamein)에서 이탈리아와 독일군은 영국군에 의해 궤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다. 이탈리아군은 리비아도 빼앗기고 튀니지로 패배했다. 1943513일 연합군은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를 점령하고 곧이어 이탈리아 최남단의 판텔레리아 섬을 공격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탈리아 본토였다. 2)

 

시칠리아 섬에 상륙한 미군 /위키피디아
시칠리아 섬에 상륙한 미군 /위키피디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더 이상 전쟁을 끌고 나갈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국왕은 귀족과 원로정치인을 불러 왕실의 진로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국민들은 파시스트에 신물을 느끼게 되었고, 국왕이 뭔가 해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왕실과 측근들은 무솔리니를 실각시키고, 그의 후임자까지 구상하는 음모를 꾸미게 된다.

그러던 중, 에마누엘레 국왕은 파시스트당의 고위간부인 디노 그란디(Dino Grandi)의 예방을 받았다. 그란디는 파시스트 정권에서 외무장관과 영국주재 대사를 역임하고 당시 하원의장이었다. 무솔리니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그란디는 사태를 예리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파시스트당은 무솔리니가 죽으면 끝나고, 전쟁의 상황은 종말로 치닫고 있다는 게 그의 관점이었다.

그란디는 국왕에게 18세기초 사보이 공작 빅토르 아마데우스 2(Victor Amedeus II)의 사례를 들었다. 공작은 프랑스 편을 들었다가 합스부르크로 돌아서 사보이 왕국을 지켜냈다. 지금 독일 편을 들게 아니라 연합국으로 돌아서 국체를 보전하자는 얘기였다. 그란디는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3)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은 79일 시칠리아 공격을 개시했다. 전투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탈리아군은 한달만에 시칠리아를 연합군에 내주고 반도로 물러났다. 연합군은 이어 로마 공습을 개시했다.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 원료와 원자재 부족으로 공장이 멈춰섰다. 식량은 배급되었고, 어쩌다 시장에 나오는 물건은 살인적인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무솔리니는 항상 옳다고 선전하던 파시스트들은 더 이상 선전물을 내보내지 않았다. 로마시민들은 정부의 라디오를 듣지 않고 바티칸과 런던에서 송출하는 라디오를 듣고 전황을 파악했다.

총파업이 일어났고, 그후에도 크고 작은 파업이 이어졌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독일군이 영토에 들락거리는 모습을 역겨워하게 되었다.

 

무솔리니는 본국이 위험에 빠지자, 히틀러에게 동부전선에서 군대를 일부 빼내 이탈리아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719일 이탈리아 북부 펠트레(Feltre)에서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만났다. 그날 히틀러는 거만하게 굴면서 무솔리니에게 왜 패전하냐고 따져 물었다. 무솔리니는 히틀러의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

피에트로 바돌리오 장군 /위키피디아
피에트로 바돌리오 장군 /위키피디아

 

또다른 반역자는 무솔리니의 사위이자 외무장관인 갈레아초 치아노(Galeazzo Ciano)였다. 펠트레 회담에 배석한 치아노는 히틀러의 고압적인 태도에 붊반을 품고 무솔리니에게 파시스트당 대회의를 열어 독일과의 동맹 탈퇴를 결정할 것을 요구했다. 무솔리니는 오락가락했다.

724일 전쟁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파시스트당 대회의가 열렸다. 무솔리니는 마지막으로 독일에 기댔다. 그는 회의에서 독일군이 남부에 들어와 연합군을 쓸어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란디와 치아노를 중심으로 한 간부들은 무솔리니의 견해를 반박하며 국왕의 의견을 물어보자고 했다. 동시에 무솔리니에 대한 불신임안에 제출되었다. 투표결과 198로 불신임이 가결되었다.

다음날 무솔리니는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당 대회의는 자문기구일뿐, 결정권이 없으므로 불신임안의 효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에마누엘레 국왕은 무솔리니를 불렀다. 국왕은 아침에 막료들과 무솔리니 해임을 결정해 둔 상태였다. 국왕은 무솔리니에게 총리직 해임을 통보하면서 피에트로 바돌리오(Pietro Badoglio) 장군을 후임 총리로 내정했다고 밝혔다.

무솔리니는 국왕의 결심을 듣고 궁정을 나오는데, 헌병들이 그를 체포했다. 그는 왕명에 의해 이탈리아 중부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캄포 임페라토(Campo Imperatore)에 감금되었다. 독일군이 혹여 밀고 들어올까 걱정해 무솔리니의 위치는 비밀로 했다. 무솔리니 해임과 체포 사실이 라디오를 통해 로마 시민들에게 전해졌으나, 아무런 소요가 없었다.

 


1) Wikipedia, Military history of Italy during World War II

2) Wikipedia, Benito Mussolini

3) Wikipedia, Fall of the Fascist regime in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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