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글로벌 삼성 키워내다
이건희 회장 별세…글로벌 삼성 키워내다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10.25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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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신경영 결단으로 1등 상품 만들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 이 회장은 20145월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5개월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삼성측은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으며,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한다"고 발표했다.

고 이건희 회장은 194219일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5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 상학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후 1968년 홀라희 여사와 결혼했다.

 

아버지 이병철과 어린 시절 이건희 /위키피디아
아버지 이병철과 어린 시절 이건희 /위키피디아

 

선친 별세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고인은 회장에 취임한 1987년부터 2019년까지 삼성그룹의 매출을 174,000억원에서 314조원으로 성장시켰고, 넘을수 없었던 일본 최고 전자기업 소니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경영을 하던 시기에 삼성은 스마트폰, TV, 모니터, D, 낸드플래시 등 세계 1등 상품을 만들어 냈다. 그가 경영한 26년 동안 10만명을 갓넘었던 임직원수는 40만명을 넘었다.

1993, 고인은 삼성전자 임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작심발언으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그의 신경영선언은 양이 아닌 질의 경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임직원에게 전파했다. 신경영선언 이후 삼성은 품질경영, 질경영, 디자인경영 등으로 대도약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건희 삼성 회장 /위키피디아
이건희 삼성 회장 /위키피디아

 

하지만 1995년 야심 차게 진출한 자동차 사업에선 수조원의 적자를 냈고, 노태우 정권 정치자금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1999년 폐 림프암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건강도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2008년엔 차명계좌와 세금 포탈 혐의로 아들 이재용과 함께 퇴진해야 했다.

2010년 그는 다시 복귀했지만 몸은 눈에 뛰게 약해져 있었다. 이어 형인 이맹희 전 재일비료 회장과 누나 숙희씨와 상속권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2014년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져 6년 이상 입원치료를 받았다.

유족은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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