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흑인왕국⑦…황금의자의 나라 아샨티
아프리카 흑인왕국⑦…황금의자의 나라 아샨티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0.2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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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려준 왕권의 상징…의자 때문에 영국과 전쟁 발생하기도

 

아프리카 가나공화국에 아샨티(Ashanti)라는 주가 있다. 면적은 24,389로 우리나라의 4분의1 정도이고, 인구는 478(2011)이다. 수도는 쿠마시(Kumasi).

아샨티 왕국의 국기 /위키피디아
아샨티 왕국의 국기 /위키피디아

 

이 곳에 아샨티 왕국이 있었는데 유럽인들, 특히 영국인들이 이 왕국에 깊은 관심을 갖고 많은 연구물을 쏟아냈다.

이 왕국의 국기에는 특히한 점이 발견된다. 중앙에 황색 의자가 놓여 있다. 이 왕국은 이 황금의자를 상징한다.

 

아샨티 황금의자(Golden Stool)는 왕권과 국왕의 신성함을 상징한다. 황금의자는 왕과 왕비, 후계자에게만 보여주며, 왕이 등극하는 날과 같이 특별한 날에만 사용된다. 매우 신성시하는 의자여서 땅에 닿지 않도록 카펫을 깔고 왕이 앉을 때에도 의자를 만지지 않는다. 왕은 이 의자를 침식 머리 맡에 두어 보관한다.

 

아샨티의 황금의자는 이 나라의 시작이자 끝이다.

아샨티족은 가나의 주류종족인 아칸(Akan)족의 한 갈래로 17세기까지만 해도 이웃 덴키라(Denkyira) 왕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아샨티족에 오세이 투투(Osei Tutu)라는 부족장이 이웃 종족들을 연합해 덴키라를 제압하고 1701년에 독립하게 된다.

이샨티 부족장들이 누구를 왕으로 모시느냐를 결정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 신관(神官)인 오코포 아노케(komfo Anokye)가 하늘에 빌어 왕이 될 사람에게 황금의자를 내려달라고 빌었다. 그랬더니 하늘에서 황금의자가 내려와 오세이 투투 무릎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신화요 전설이다.

 

아샨티 왕국의 항금의자 /위키피디아
아샨티 왕국의 항금의자 /위키피디아

 

오세이 투투는 아샨티 왕국의 초대 왕이 되어 왕국의 기틀을 세우고 이웃 부족과 나라들을 제압했다. 열대우림의 산중 부족이 대서양 연안까지 영토를 넓혀 기니만의 강국이 되었다.

아샨티 왕국은 황금의 나라였다. 황금 의자는 그 나라에 황금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1)

포르투갈인들이 기니만 일대에서 교역을 하면서 아샨티 왕국의 해안을 황금해안(Gold Coast)라고 이름을 지었다. 황금에 눈이 뒤집힌 유럽인들이 내륙 깊숙이 탐험하려 했지만, 아프리카의 풍토병을 이겨내지 못했다. 19세기말에 키니네가 말라리아 특효약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유럽인들에게 죽음의 땅이었던 아프리카 내지가 열리게 되었다.

 

아샨티 왕국 /위키피디아
아샨티 왕국 /위키피디아

 

영국이 황금의자를 탐냈다.

1823년 영국의 아프리카부대와 이샨티 부족들과의 충돌이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챨스 매카시(Charles MacCarthy) 경이 이끄는 영국군은 병력 500명으로 아샨티를 공격했으나, 1만명에 이르는 아샨티군의 반격에 완패당하고 매카시 경은 살해되었다. 아샨티 왕은 매카시의 두개골에 금을 입혀 술잔으로 사용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그후 영국과 아샨티 왕국 사이에 두세차례 더 전쟁이 있었고, 아샨티는 영국의 막강한 화력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평화조약을 맺었다. 아샨티족들은 영국군의 무시무시한 화력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2)

 

1895년 영국은 아샨티왕국에 보호령이 될 것을 요구하며 병력를 파견했다. 영국이 원하는 것은 땅이 아니라 황금의자였다. 아샨티의 왕은 저항을 포기했다. 저항하다가 동족이 대량학살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1901년 영국은 아샨티를 식민지로 만들고 아샨티 왕과 왕비를 세이셀 군도(Seychelles)로 유배보냈다.

마침내 영국 지배자는 마수를 드러냈다. 총독에 부임한 프레더릭 호지슨(Frederick Mitchell Hodgson)은 수도 쿠마시(Kumasi)에 아샨티 부족 지도자들을 불러 놓고 호통을 쳤다.

왜 나에게 이렇게 경멸스러운 의자에 앉게 하느냐. 나는 대영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나는 영국 여왕을 대신해 의자에 앉을 자격이 있다. 황금의자를 가져와라.”

아산티 사람들은 일부러 가짜를 만들어주고 진품은 숨겨버렸다. ‘황금 의자는 아산테 왕국의 상징인 동시에 자존심이었다. 영국 총독은 이 의자가 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보배인지를 몰랐다.

 

1824년 영국군의 아샨티 왕국 공격 (그림) /위키피디아
1824년 영국군의 아샨티 왕국 공격 (그림) /위키피디아

 

아샨티족의 움직임이 수상해지자, 호지슨 총독은 영국정부에 병력 지원을 요청했다. 후에 영국 총리가 되는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우리는 성배(Holy Grail)를 찾기 위해 파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목적이 황금의자에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영국 지배자가 황금의자를 탐낸다는 소식을 듣고 왕실 가족 중에 아샨티에 남아 있던 왕의 어머니(대비)가 부족의 총궐기를 호소했다. 부족들은 일제히 일어나 영국 식민당국에 저항했다. 2만여명의 부족들이 무기를 잡았다. 황금의자를 찾으러 다니던 영군군은 물론 영국인 거주민들이 아샨티 부족에 포위되고, 사살되었다.

맥심 기관총으로 무장한 영국군이 전세를 압도했지만, 영국은 더 이상 황금의자에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럽인들은 전쟁을 황금의자의 전쟁’(War of the Golden Stool)이라고 부른다. 3)

영국 총독부는 1902년 영국은 아샨티를 보호령으로 만들었고, 1935년에는 아샨티 왕국을 복원해 자치권을 부여했다.

현재 아샨티 왕국은 1957년 독립한 가나공화국에서 연방의 일원으로 존재하고 있다. 현재 아샨티 왕국의 군주는 1999년 즉위한 우툼푸오 나나 오세이 투투 2(Otumfuo Nana Osei Tutu II).

 

아샨티 왕국은 황금 문화 이외에도 아크라포콘무’(Akrafokonmu)이라는 커다란 둥근 메달로 유명하다. 아샨티족은 항금으로 만든 이 메달을 목걸이처럼 차고 다녔다. 또 조각이 새겨진 영혼을 담는 그릇 쿠두오’(Kuduo)를 청동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옷감도 제작했다. 밝은 색에 기하학적 무늬의 옷감 켄테(Kente)는 서부 아프리카에서 인기가 높다.

 


1) Wikipedia, Ashanti Empire

2) Wikipedia, Anglo-Ashanti wars

3) Wikipedia, War of the Golden St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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