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흥진성(安興鎭城)은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에 있는 수군방어용 시설이다.
전체 길이 약 1,714m의 포곡식 산성으로 충청도 태안지역에 분포해 있는 수군진성(水軍鎭城) 중 가장 큰 규모다. 각자석을 통해 성을 처음 쌓은 시기(1583년, 선조 11년)를 추정할 수 있다. 성에는 화살이나 총알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여장(女墻)의 구조물이 남아 있다.
조선 효종 때 선비 김석견(金石堅)이 상소해 안흥진성의 축성을 청원했고, 이에 왕은 이후원(李厚源)에게 안흥진성 축조에 대한 필요성을 물었다. 이후원은 이 지역이 천연의 요새지이므로 군대를 주둔하고 양곡을 저장하면 안으로 강도(江都)의 표리(表裏)가 되고 밖으로 호남과 영남을 제어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효종은 충청감사에게 명을 내려 성을 쌓게 하였는데, 부근의 19개 군민(郡民)이 동원되었다.
안흥진성은 서해안에 자리한 입지적 특성상 조운로의 주요 거점을 담당하는 장소이자 한양과 강화도의 안정적인 방어를 위해 축성되었다. 이에 그 역할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1866년(고종 3년)에는 안흥방어영(종2품 방어사 군영)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18세기 후반에는 충청수영 행영(行營)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안흥진성은 조선시대 중국의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기도 했다.
또 군사적 요새지로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를 두어 군사상 중요한 임무를 맡아보게 했다. 동, 서, 남, 북 네 곳에 석문이 있었는데 동문은 수성루(壽城樓), 남문은 복파루(伏波樓), 서문은 수홍루(垂虹樓), 북문은 감성루(坎城樓)라 했다.
성의 윤곽으로 보아 규모가 큰 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성 안의 건물이 일부 불타 없어졌다.
안흥진성’은 <조선왕조실록>, <대동지지>, <비변사등록>등 문헌기록을 통해 축성의 연도·배경·완공시기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서해안의 관방유적(군사목적의 시설 유적)이었다. 전국의 통제영·방어영·수영·수군진성들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고, 수군진성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11월 2일 ‘태안 안흥진성’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60호로 지정했다. 그동안 충청남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