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철교, 영국 아이언브리지…산업혁명 산물
최초 철교, 영국 아이언브리지…산업혁명 산물
  • 김현민기자
  • 승인 2019.05.0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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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산업 중심지 콜브룩데일에 건설…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세계 최초의 철교(鐵橋)는 영국 콜브룩데일(Coalbrookdale)이라는 곳에 있는 아이언브리지(The Iron Bridge). 이름 그대로 철의 다리.

영국에 산업혁명의 불이 당겨진 18세기초 콜브룩데일은 철강산업의 중심지였다. 도시 이름 자체가 석탄골짜기 마을이란 뜻이다.

에이브러햄 다비 1(Abraham Darby I)라는 철강업자는 1709년 그곳에서 석탄에서 추출한 코크스로 철광석을 제련했다.

철광산과 제련소 사이에는 세번강(River Severn)이 흘렀다. 협곡이 깊었다. 철광석은 세 번강의 수운(水運)을 이용해 운반되었다. 하지만 제련할 물량이 늘어나면서 좁은 강으로 광물을 실어나르는 게 힘들게 되었다. 다리를 놓기로 했다. 하지만 계곡이 깊고 강변이 불안정했다.

 

아이언브리지 (2008년) /위키피디아
아이언브리지 (2008년) /위키피디아

 

철제 다리는 아이언브리지가 원조는 아니다. 프랑스 리용(Lyons)에서 1755년 철교를 건설하려다 돈이 많이 들어서 포기했다. 영국에서 철교를 만들면 세계 최초가 된다.

1773년 건축가 토머스 프리처드(Thomas Farnolls Pritchard)가 아치형 철교를 만들자고 친구들에게 제안했다. 철강 중심지에 철로 만든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었다. 당시 콜브룩데일의 제련소는 다비 1세의 손자 다비 3세가 경영하고 있었다. 다비 3세는 프리처드의 제안을 받아들여 철교 건설을 위한 자금 모금에 나섰다.

177711월 철교 공사가 착공되었다. 건설비용이 예상보다 많이 들었다. 모집한 자금이 모자라 다비 3세가 자신의 재산을 쏟아 부었는데, 그는 막대한 건설비용 때문에 1789년 사망할 때까지 빚에 시달렸다.

다리는 주철(무쇠)로 만들었다. 교각 거리 30m, 사용된 철의 총중량은 약 380톤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리는 17797월에 준공되었다.

 

영국 콜브룩데일의 아이언브리지(2019년) /위키피디아
영국 콜브룩데일의 아이언브리지(2019년) /위키피디아

 

강 양쪽에 철제 기둥을 세우고 공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공사 기간에 강을 오가는 배들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았다. 다리는 짧은 기간에 세워졌다.

지금의 토목기술로 보면, 아이언브리지는 형편없는 철교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대엔 혁명적 기술이었다.

다리가 준공된 후 엔지니어들, 작가들, 화가들이 이곳으로 몰려와 다리를 보며 경탄하고 이 지역의 산업적인 풍경에 놀라워 했다. 이 다리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몰려 오면서 다리 근처에 호텔이 세워지고 시장이 만들어졌다.

그후 다리가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교통량이 늘어나, 결국 이 다리는 1934년 차량 통행이 금지되었다. .

아이언브리지는 세계최초의 철교라는 이미지와 함께 영국 산업혁명과 인류 문명의 요람임을 보여주는 산물이다.

1986년에 아이언 브리지와 주변 협곡(IronBridge Gorge)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일부가 되었다. 지금은 보행자만 허용하는데 일정액수의 통행료를 내야 한다.

 

아이언브리지 건설 당시의 그림 (1779년 7월) /위키피디아
아이언브리지 건설 당시의 그림 (1779년 7월)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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