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고대왕국 맥국①…영서지방의 부족연맹체
사라진 고대왕국 맥국①…영서지방의 부족연맹체
  • 김현민기자
  • 승인 2019.05.0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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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서 한반도로 이동…신라와는 우호, 백제와는 대립관계

 

고대에 맥국(貊國)은 강원도 춘천을 중심으로 강원도 영서지방에 위치해 있었다. 사서에서 맥국에 관한 기록은 손에 꼽힐 정도다. 하지만 맥국의 위치에 대해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언급하고 있으므로, 실재하고 있던 나라임은 분명하다.

 

춘주(春州)는 예전의 우수주(牛首州)인데 옛날의 맥국(貊國)이다. 지금의 삭주(朔州)가 맥국이라고도 하고, 혹은 평양성이 맥국이라고도 했다.” (삼국유사 마한편)

가탐(賈耽)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고구려의 동남쪽, ()의 서쪽, 옛날 맥()의 땅으로써, 대략 지금 신라 북쪽 삭주다라고 써있다. 선덕왕 61(서기 637)에 우수주(牛首州)로 만들어 군주(軍主)를 두었고, 경덕왕이 삭주로 개칭했다. 지금의 춘주(春州). (삼국사기 잡지)

 

강원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 삼악산성지.  부족국가인 맥국(貊國) 사람들이 쌓은 성이라는 설이 있다. /문화재청
강원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 삼악산성지. 부족국가인 맥국(貊國) 사람들이 쌓은 성이라는 설이 있다. /문화재청

 

맥국은 만주에서 한반도로 이동한 종족이다. 맥족은 요하 하류에 세력을 형성하다가 고구려와 부여에 의해 밀려나 한반도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백제 건국기엔 맥족이 춘천을 중심으로 영서지방에 부락을 만들고 부족연맹체를 형성했다.

조선후기 실학자 안정복(安鼎福:1712~1791)의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는 맥족에 관해,

()은 동이(東夷)의 옛나라로 중국의 동북쪽에 있고, ()과 가까웠으므로 북맥(北貉)이라고 했다. 그 땅에서는 오곡이 나지 않고 오직 기장만 생산됐다. 부여와 고구려가 함께 일어나자 그 부락이 동으로 옮겨가 예국의 서쪽, 지금 춘천부에 살면서 고구려에 복속했다. 산이 깊고 험해 다투지 않는 지역이 됐다.”고 했다.

삼국지 동이전 고구려조에서는,

고구려의 남쪽에 조선예맥이 있다. (중략) 소수맥(小水貊)이 있다. 고구려가 나라를 (소수맥이) 세울 때 큰 물을 의지하여 일어났는데, 서안평현 북쪽에 소수가 있어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구려의 별종이 소수(小水)를 의지해 나라를 세웠기로 소수맥이라 한다. 좋은 활이 나오니, 소위 맥궁(貊弓)이라는 것이 이것이다.”라고 썼다.

 

맥족은 강을 중심으로 주거를 형성했던 것 같다. 요하, 소수 등 강에 의지해 살던 맥족이 남으로 쫒겨오면서 북한강이 흐르는 춘천에 도읍을 정했다. 춘천에서 발굴되는 마을 유적지들이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든 충적지에 만들어졌다. 맥궁이라는 활이 중국에도 알려질 정도로 유명하고, 삼국사기엔 맥국 우두머리가 새와 짐승을 잡아 신라에 조공했다는 기록이 있어 맥족이 수럽에 능한 종족임을 알려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 맥국에 대한 기록은 신라 유리이사금때 2, 백제 책계왕때 1회 나온다. 예국이나 옥저처럼 대군장을 두지 않고, 읍락마다 부족장을 두었던 것 같다. 삼국사기 기사에선 맥족의 부족장을 거수(渠帥)라는 표현이 있다.

 

신라 유리이사금 17(40) 9, 화려(華麗)와 불내(不耐) 두 현()의 사람들이 함께 모의해 기병을 거느리고 북쪽 국경을 침범했다. 맥국(貊國)의 거수(渠帥)가 병사를 동원해 곡하(曲河) 서쪽에서 맞아 공격해 이들을 물리쳤다. 임금이 기뻐하여 맥국과 친교를 맺었다.

유리 19(42) 8, 맥국의 거수가 사냥을 해 새와 짐승을 잡아 바쳤다. (이상 삼국사기 신라본기)

백제 책계왕 13(298) 9, ()나라가 맥인(貊人)들과 합세해 침범했다. 임금이 나가서 막다가 적병에게 해를 입어 돌아가셨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 기사에서 유리이사금때 맥국이 신라를 도와 싸웠다는 곡하라는 지명에 대해 강릉이라는 설도 있지만, 강릉 이외의 강원도 어느 지역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나라의 직할령인 낙랑군이 서기 30년 동부도위를 폐하고 7개의 부족장을 현후(縣侯)로 봉해 자치권을 준다. 이때 동부도위의 치소가 있던 불내현(함남 안변)과 화려(함남 영흥)의 예족들이 신라의 북쪽 국경을 침공했고, 맥국의 우두머리가 부족군을 이끌고 강원도 방면으로 가서 신라를 도왔다는 기사다.

맥국의 본거지가 춘천으로 알려져 있는데, 춘천의 맥족이 강릉까지 군사를 동원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유리왕때 신라를 도와 예국과 싸운 맥족은 평창 근처의 부족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그 이유로 평창에서 대관령을 넘으면 곧바로 강릉이고, 평창강 유역에서 적석총을 비롯해 철기시대의 유적,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봉평 지역에서 맥국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太岐王)전설이 남아있다는 점을 들수 있다.

의 기사에서 책계왕때 백제를 침공한 한()나라는 위()의 낙랑군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한나라는 멸망하고, 위촉오의 3국시대였는데 낙랑군은 위()에 소속했으므로, 의 기사에서 한()은 위()의 오기로 보인다. 어쨌든 한사군의 마지막 명맥을 유지하던 낙랑군은 맥족을 동원해 백제를 치고, 책계왕이 전사한다. 낙랑군은 313년에 이땅에서 사라지는데, 이 무렵 낙랑군의 군사력은 고구려의 잦은 침공으로 약해질대로 약했고, 따라서 낙랑군과 연합한 맥국 병사의 전투력이 백제 임금을 죽일 정도로 강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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