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37°39′15″ 새겨진 앙부일구, 제위치로 귀환
북위 37°39′15″ 새겨진 앙부일구, 제위치로 귀환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11.17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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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과학기술의 정수, 미국서 귀환…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

 

조선시대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에는 북극고 삼십칠도 삼십구분 일십오초(北極高三十七度三十九分一十五抄)라고 새겨져 있다. 북극고(北極高)는 위도를 의미하는데, 앙부일구는 서울의 위도를 거의 정확하게 측정했다.

지구의 위도(Latitude)는 고대부터 활용되었다. 서양에선 페니키아인들이 BC 600경에 위도를 측정했고, 태평양 폴리네시아인들도 AD 400년경에 위도를 측정했다고 한다. 사막이나 바다에서 태양의 각도를 재는 방식을 축정했다.

앙부일구는 세종 16(1434)에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다. 둥근 지구 모양을 표현했는데, 작은 크기로도 시각선, 계절선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이었다.

조선시대 과학기술은 한양의 위도를 측정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세종의 명으로 만든 천문학서 칠정산(七政算)은 원() 시대에 들어온 이슬람 역법(回回曆法)을 전수받아 천문학 체계를 형성했다. 세종 당시의 천문지리학자들은 조선의 위도를 측정했던 것이다.

앙부일구는 그릇 안쪽에 바늘구멍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새기고 12등분해 인()에서 술()까지를 새겼다. 동심원의 끝부분 테두리에는 하지에서 동지까지 13개의 절기를 새겼다.

 

앙부일구에 새겨진 북극고 37°39′15″ /문화재청
앙부일구에 새겨진 북극고 37°39′15″ /문화재청

 

조선의 해시계 앙부일구가 국내에 들어왔다. 올해 상반기 미국의 한 경매에 출품된 앙부일구를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매입했다.

앙부일구하늘을 우러러 보는(, ) 가마솥(, ) 모양에 비치는 해 그림자(日晷, 일구)로 때를 아는 시계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 과학 문화의 발전상과 통치자의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이번에 환수된 앙부일구는 18세기에서 19세기 초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름 24.1, 높이 11.7, 4.5의 무게를 지닌 금속제 유물이다. 정확한 시간과 계절을 측정할 수 있는 조선의 우수한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밀한 주조기법, 섬세한 은입사 기법, 다리의 용과 거북머리 등의 뛰어난 장식요소를 볼 때 고도로 숙련된 장인이 만든 높은 수준의 예술작품이었다.

환수된 앙부일구는 서울의 위도에서 정확한 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이제 자신의 몸에 새겨진 위도를 제대로 찾아와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게 된 것이다.

유교 국가에서 관상수시(觀象授時, 하늘을 관찰하여 백성에게 절기와 시간을 알림)’는 왕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다. 앙부일구는 백성을 굽어 살피는 애민(愛民) 정신을 담아 만든 조선 최초의 공중(公衆) 시계로, 세종 대부터 조선 말까지 제작되었다. 세종대왕은 앙부일구를 처음으로 만들어 백성들이 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종묘와 혜정교(惠政橋, 지금의 서울 종로1)에 설치했다.

현대 시각체계와 비교했을 때도 거의 오차가 나지 않으며, 절후(節候,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기후 표준점), 방위(方位), 일몰시간, 방향 등을 알 수 있는 체계적이고 정밀한 과학기기다.

조선시대 과학 기기류는 기록으로만 전하는 것이 많으며, 이와 유사한 크기와 재질의 앙부일구는 국내에 불과 7점만 전하고 있다.

 

앙부일구 윗면 /문화재청
앙부일구 윗면 /문화재청

 

이번에 돌아온 앙부일구는 앞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관리되며 자격루, 혼천의 등 기타 과학 문화재들과 함께 연구, 전시, 보고서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1118일부터 1220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내 과학문화실에서 모든 국민에게 특별 공개할 예정이다.

 

고국으로 돌아온 앙부일구 /문화재청
고국으로 돌아온 앙부일구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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