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성에 사람을 제물로 바친 인신공희 흔적
경주 월성에 사람을 제물로 바친 인신공희 흔적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11.27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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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월성을 잇는 진입로에서 인골, 건물지, 석축해자 추가 확인

 

경주 월성은 신라 초기의 궁궐터다. 그 궁궐을 짓기 위해 사람을 희생시켜 주춧돌 아래 묻는 인신공희(人身供犧)가 이뤄졌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경주 월성 가운데 계림~월성 진입로와 서성벽에 대한 발굴조사에 대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50대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성벽 기저부 조성층과 체성부 성토층 사이에서 확인되었다. 발굴팀은 인신공희와 성벽 축조 공정의 연결성을 확인했다.

앞서 2017년 발굴조사에서 서쪽 성벽에서 인신공희의 흔적을 발견했다.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사용한 국내 최초의 발굴사례였다.

 

월성 서성벽 인골 출토지점 /문화재청
월성 서성벽 인골 출토지점 /문화재청

 

이번 발굴조사에서 볏짚을 포함한 각종 유기물질, 목탄 등을 섞어 흙을 교대로 깔았던 교호성토(交互盛土)의 흔적, 흙덩어리를 재료로 쌓은 흔적, 체성부 내부에 존재한 석렬을 확인했다.

경주 월성은 해자(垓子)로 둘러싸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조사로 정확한 해자의 배치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1호 석축 해자는 축조 방식이 다른 두 개의 해자로 분리되었으며, 월성과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통일신라~고려·조선 시대에 걸쳐 존재한 유구의 통시적 변화를 확인했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계림을 지나 월성으로 올라가는 통행로에 대해 20199월부터 발굴조사를 착수하였다. 발굴조사에서 통일신라 시대 대형 건물터로 추정되는 적심건물지가 보완 조사 되었으며, 통일신라~고려·조선 시대에 이르는 도로 유구, 기와무지 등이 확인되었다. 월성과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확인된 도로 유구는 5m 이하의 소형 도로로 추정되면서 국가적 제의 공간과 관련된 계림, 황남동 대형건물지 유적과 통하고 있었다.

 

2020 월성 발굴조사 구간 /문화재청
2020 월성 발굴조사 구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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