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버블붕괴③…탐욕과 사기, 그리고 파멸
일본 버블붕괴③…탐욕과 사기, 그리고 파멸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1.27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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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을 뇌물로 제공, 금융사기사건 속출…해외 명화와 골프회원권 투기

 

일본 자산버블 시기에 가장 유명한 정치스캔들이 리쿠르트 사건이다. 리쿠르트사는 부동산, 구인광고, 인재파견, 판매촉진, IT 분야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서비스 회사였다. 1988618알 아사히신문이 가와사키시의 한 재개발사업에 1억엔의 이익을 제공한 의혹사건을 특종보도하면서 사건의 일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리쿠르트의 자회사인 코스모스사가 가와사키역 인근 재개발 사업 편의를 봐 달라며 미공개 주식을 부시장에게 뇌물로 제공했다는 내용이었다. 부시장은 차기 시장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인물로. 양도받은 주식의 매각 이익이 1억엔에 이르고 주식 구입 자금도 리쿠르트 금융 자회사에서 융자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때만 해도 사건은 일본 사회에서 흔히 있는 부정부패의 하나로 여겨졌다. 이후 아사히신문이 정관계 인사들도 관련 주식을 취득했다는 후속 보도를 내놓으며 일본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사건은 정··언론계 유착 게이트로 비화하며 검찰 조사로 이어졌다.

리쿠르트 게이트 수사는 도쿄지검 특수부가 맡았다. 이 사건으로 다케시다 노보루(竹下登) 수상, 차기 수상으로 지목되던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대장상이 사임했다. 에조에 히로마사(江副浩正) 리쿠르트 회장 등 정관계 인사들도 줄줄이 구속됐다. 일본경제신문의 사장까지 주식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다케시타 정권은 무너졌고 자민당 장기 지배체제를 흔들었다.

뇌물은 미공개 주식이었다. 리쿠르트는 사업을 따내기 위해 미공개 주식을 공개직전에 정··경제계의 유력 인사들에게 싸게 양도해 공개 후에 부당 이익을 보게 했다. 당시 수상을 비롯해 정관계, 언론인 76명에게 주식을 뇌물로 건넨 것이다.

리쿠르트 스캔들은 일본 경제의 구조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 언론인이 뇌물로 엮이며 서로 밀고 당겨주는 일본식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의 실체를 드러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군부의 오만이 버블시대에 정치인과 관료의 경제적 오만으로 재현된 것이다.

리쿠르트 사건에서 주목할 대목은 당시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모리다고(森田康) 사장이 미공개주식을 얻어 8,000만엔의 매각이익을 얻은 사실이다. 언론인이 부패사건에 끼어드는 것은 그 사회가 부패할대로 부패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빅4 증권사들은 언론사 주식을 보유하고 언론에 주가 작전에 활용했다. 증권사들은 작전을 펼칠 종목을 언론에 흘리고, 신문들이 받아쓰며 주가 부양에 동원되었다.

 

리쿠르트 사건을 보도한 일본 신문 /아사히신문
리쿠르트 사건을 보도한 일본 신문 /아사히신문

 

버블 시기에 야쿠자도 주식시장에 개입했다. 일본 조직폭력배들은 멋진 양복을 입고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었다. 그들에겐 주식투자가 유흥가와 사창가, 빠찡코 사업을 지배하는 것보다 멋지고 지적인 사업으로 보였다. 이시이 스스무(石井進)라는 야쿠자 일파의 보스는 정치인 가네마루 신(金丸信)의 후원을 받아 후쿠소 상교라는 부동산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이 회사를 통해 1,700억엔을 증시에 쏟아 부었다. 1987년에 120억엔의 수익을 올렸다. 1989년에는 노무라증권과 니코증권에게서 자금을 지원받아 철도와 호텔을 운영하는 도큐전철(東急電鉄)의 주식을 매집했다. 그는 이 투자에서 8억엔의 수익을 올렸다.

이시이는 기업형 범죄조직을 운영했다. 정치인과 재계와 인연을 맺고 협박조로 자금을 얻어 그 돈으로 주식투자에서 돈을 벌었다. 부동산을 살 때 집주인에게 화염병으로 공격해 협박하고 강탈하는 수법을 썼다. 그는 1991년 병으로 사망했는데, 장례식에는 일본 전역에서 6,000명의 무리들이 찾아와 참배했다고 한다. 일본 버블이 낳은 모습의 하나였다.

 

오노우에 누이(尾上縫)라는 여장부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요정에서 일하다가 건설회사 간부의 정부가 되었고, 그의 도움으로 2개의 요정을 경영하게 되었다. 그녀는 1987년에 일본산업은행(日本興業銀行) 오사카 지점에서 10억엔 규모의 채권을 구매하면서 증권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오노우에는 자신의 요정 가치의 1,500배나 되는 3조엔의 돈을 굴리며 스미토모와 다이와은행, NTT 등에 투자했다. 그녀가 운영하는 요정에는 일본 재계, 금융계 거물들이 들락거렸고, 야마이치 증권사는 그녀의 요정에 상주직원을 두었다고 한다.

오사카의 흑녀로 불린 그녀는 미신을 신봉했다. 그녀는 자신의 요정에서 강령회를 열고 투자의 성공을 빌기도 했다. 그 자리에는 증권사 직원도 참석해야 했다. 그녀는 신이 알려준 종목을 중심으로 투자했고, 증권사들은 그녀가 찍은 종목을 맹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버블이 가라앉으면서 자산보다 부채가 많아지고 그녀의 사업은 악화되어 갔다. 마침내 1990년에 친분이 있는 도요신용금고(東洋信用金庫) 지점장에게 부탁해 가짜 예금증서를 만들고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사기행각을 하게 되었다. 거액을 융자한 신용금고는 경영파탄으로 소멸했고, 오노우에도 감옥에 갔다. 그녀는 버블레이디로 불렸다.

 

버블 시대에 소비를 즐기는 신진루이(新人類)의 풍조가 생겨났다. 이들은 힘들게 일하고 검약하는 일본인들의 전통적인 방식을 거부했다. 이들은 촌스러운 일본식 음식을 기피하고 프랑스식 고급 요리를 즐겨 먹었다. 당시 도쿄에 프랑스 레스토랑이 우후죽순 개점한 것도 이런 풍조의 영향이다. 여자들도 섹시한 옷차림을 하게 되고 미니스커트가 유행했다. 나이트클럽에 밤새워 술을 마시고 백화점족들이 생겨났다.

 

거품에 취한 부자들은 해외 명화시장에 진출했다.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는 예전에 비해 두배 이상 절상되었고, 갑자기 졸부가 된 일본인들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매집했다. 그들이 인상파 작품을 사모은 것은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야스다 화재해상보험은 반 고흐의 해바라기4,000만 달러에 사들였고, 일본인 쓰무마키 도모모리는 피카소의 미완성 그림 작은 돌의 결혼식5,100만 달러에 구입했다. 제지회사 오너인 사이토 료에이는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8,200만 달러에 산데 이어 르누아르의 갈레트의 풍차에서7,800만 달러에 샀다. 당시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일본인 큰손들에 의해 20배 이상 올랐다.

금융회사들은 예술품에 대해 담보 대출을 50%까지 해주었다. 그들은 그림을 이해해서 산 게 아니었다. 다만 사두면 언젠가 이익이 남을 것이란 재테크의 방편이었다. 일종의 오만이다.

그 오만은 1986년 미쓰이물산이 뉴욕 맨해튼의 엑손빌딩을 살 때 매도자가 부른 값보다 26,000억 달러를 더 지불한데서도 나타났다. 당시 미쓰이 회장은 기네스북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 위해 61,000만 달러의 기록적인 가격을 지불했다고 한다.

 

뉴욕의 엑손빌딩 /위키피디아
뉴욕의 엑손빌딩 /위키피디아

 

골프회원권도 투기의 대상이었다. 정치인과 기업인, 관료들은 골프를 통해 서로의 인맥을 다졌다. 골프가 고급스포츠라는 인식에 회사원들도 골프장에 들락거리며 골프 대중화 바람이 불었다.

땅값이 치솟자 골프장 회원권도 투자의 수단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일본경제신문은 500개 골프장의 회원권 시세를 취합해 니케이골프지수를 실었다. 1982년초 100에서 시작한 이 지수는 1982160이 되었고, 1990년 봄에 1,000 포인트까지 치솟았다. 고급골프장으로 알려진 도쿄 코가네이(小金井) 골프장 회원권은 1억엔에서 4억엔으로 올랐다. 은행들은 골프회원권을 담보로 90%까지 대출을 주었다. 1990년 부동산회사 코스모월드는 캘리포니아의 페블비치(Pebble Beach) 호텔과 골프장을 83,100만 달러를 주고 매입했다.

 

캘리포니아의 페블비치 골프장 /위키피디아
캘리포니아의 페블비치 골프장 /위키피디아

 

일본인들의 오만은 극치로 다가갔다. 그들은 도쿄를 세계 금융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1980년대말에 자산 기준으로 세계 10대 은행 가운데 7개가 일본의 은행이었고, 노무라증권의 자본금이 미국 5대은행보다 많았다. 도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뉴욕증시의 두 배에 달했다. 하지만 1990년이 시작되면서 그들의 오만은 허구였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リクルート事件

Wikipedia, 尾上縫

금융투기의 역사, 에드워드 챈슬러, 국일증권, 2001

광기, 패닉, 붕괴-금융위기의 역사, 찰스 킨들버거등, 굿모닝북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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