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고대왕국 맥국③…강원도는 말갈의 나라?
사라진 고대왕국 맥국③…강원도는 말갈의 나라?
  • 김현민기자
  • 승인 2019.05.0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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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 말갈과 맥국 혼재…고구려에 복속후 신라의 영토로 편입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서기 42년에서 298년 사이 250년 이상의 시간대에 맥국 또는 맥족에 대한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이 기간에 신라와 백제를 북쪽에서 종족이 말갈이다.

삼국사기 본기에 등장하는 말갈과 관련한 기사는 백제본기 30, 신라본기 19회에 이른다. 신라본기에 나오는 말갈 기사는 실직국이 멸망한 후 집중되는데, 동예, 옥저에 이르는 예족과 혼선이 빚어진다. 백제와 충돌하는 말갈은 맥족과 혼동된다.

김부식이 예족과 맥족을 구분하지 않고 말갈이라고 오인해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만주에 있던 숙신계 종족(여진)이 한반도 중부로 내려와 예, 맥과 함께 동거했을 수도 있다. 학계에는 여러 가지 설이 나오고 있지만, 어느 것도 온전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실정이다.

어쨌든 말갈은 영동지역에서 신라와 충돌하고, 영서지역에서 백제와 전투를 벌인다. 말갈이나 예, 맥 모두가 고구려에 복속한 북방 동이족이고, 이전에 한반도에 실재했던 종족이 나중에 신라,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용광로에 녹아들어 한()민족이 형성됐다고 본다. 우리가 단일민족이라고 자랑하지만, 여러 민족과 종족이 전쟁과 문화교류를 거치는 수천년의 역사과정을 통해 하나의 언어, 하나의 문화로 통합된 것이며, 지역별로 남아있는 고유의 풍속, 설화 등에서 원래 종족의 옛모습을 어렴풋이 들여다 볼 뿐이다.

 

온조왕이 한강 유역에서 나라를 세울 때 백제를 가장 괴롭힌 곳은 낙랑군과 말갈이었다. 낙랑과 말갈은 연합해 백제를 공격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편에서 나타나는 말갈 관련 기사를 보자.

 

2(기원전 17) 임금이 말하기를, “말갈(靺鞨)은 북쪽 경계와 맞닿아 있으니, 무기를 수선하고 양식을 비축하여 방어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지시.

3(기원전 16) 말갈이 북쪽 국경을 침범.

4(기원전 15), 사신을 낙랑(樂浪)에 보내어 우의를 다짐.

8(기원전 11) 2, 말갈군 3천 명이 침입해 위례성을 포위.하니 임금은 성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 적병이 군량미가 떨어져 돌아가므로, 임금이 날쌘 병사를 이끌고 추격하여 대부현(大斧峴)에서 크게 싸워 죽이고 사로잡은 자가 5백여 명이었다. 7, 마수성(馬首城)을 쌓고 병산책(甁山柵)을 세움.

10(기원전 9) 10, 말갈이 북쪽 국경을 침범.

11(기원전 8) 4, 낙랑이 말갈을 시켜 병산(甁山)의 목책을 습격하고, 노략질. 7, 독산(禿山)과 구천(狗川)에 두 개 목책을 설치하여 낙랑의 통로를 막았다.

13(기원전 6) 5, 임금이 말하기를, “나라의 동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이 있어 국경을 침범하므로, 형세가 불안해 도읍을 남쪽으로 옮겨야겠다고 했다. 7, 한산(漢山) 아래에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가를 옮겼다.

14(기원전 5) 정월, 도읍을 옮김.

17(기원전 2) , 낙랑이 침범해서 위례성에 불을 지름.

18(기원전 1) 10, 말갈이 습격해 칠중하(七重河)에서 맞아 싸웠다. 추장 소모(素牟)를 사로잡아 마한으로 보내고 나머지 적들은 모두 죽였다.

22(4) 9, 임금이 말갈의 적병을 만나 격파.

40(22) 9, 말갈이 술천성(述川城, 여주)을 공격. 11, 말갈이 부현성(斧峴城)을 습격해 노략질.

 

고구려에서 이주해온 온조왕은 북쪽의 낙랑과 서쪽의 말갈의 공격을 받아 국가 존립 자체가 어려웠다. 처음엔 낙랑과 우호적 관계를 맺기 위해 사신을 보내기도 했지만, 곧이어 낙랑은 말갈과 연대해서 백제를 소멸시키려고 집요하게 공격했다.

말갈이 도성인 위례성을 포위 공격하고, 낙랑이 위례성을 불 지르는 등 낙랑과 말갈의 공동전선은 백제에겐 위협적인 존재였고, 결국 온조는 한강 이남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온조왕은 초기엔 마한에 조공함으로서 남쪽 변경을 안정시킨후 낙랑과 말갈의 공세에 대응했다. 그러다가 온조 18년에 맥족의 추장 소모를 붙잡아 상국인 마한에 보내고 곧이어 맥족의 본거지인 우두산성(춘천)을 공격하러 갔다. 이때부터 백제가 승기를 잡은 것 같다.

온조 38년에 북쪽 경계선을 패하(浿河), 동쪽 경계선을 주양(走壤)으로 확정하고, 이를 순시한다. 패하는 예성강, 주양은 춘천으로 비정된다. 낙랑과 말갈과의 경계를 확정한 셈이다.

이후 온조는 마한 정벌에 나서고, 비로서 백제라는 나라의 기틀을 다진다.

 

강원도 춘천시 신북면 발신리의 맥국터 기념비
강원도 춘천시 신북면 발신리의 맥국터 기념비

 

온조 이후에도 말갈의 백제공격은 계속된다.

 

다루왕

3(30) 10, 마수산(馬首山) 서쪽에서 말갈과 전투.

4(31) 말갈과 싸워 2백여 명의 목을 벰.

7(34) 9, 말갈이 마수성(馬首城)을 공격해 점령. 10, 말갈이 또 병산(甁山)의 목책을 습격.

28(55) 말갈이 북쪽의 부락을 침범.

29(56) 2, 임금이 우곡성(牛谷城)을 쌓도록 해 말갈을 방비했다.

36(63) 10, 임금은 낭자곡성(娘子谷城)까지 국경을 개척.

기루왕

49(125), 말갈이 신라를 침범하자 임금이 다섯 명의 장군을 보내어 구원.

초고왕

45(210) 10, 말갈이 사도성을 공격.

49(214) 9, 말갈 석문성(石門城)을 빼앗음. 10, 말갈이 술천(述川, 여주)까지 침범.

구수왕

3(216) 8, 말갈이 적현성(赤峴城)을 포위.

7(220) 10,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범.

16(229) 11, 말갈이 우곡(牛谷)을 침범해 노략질.

고이왕

25(258) , 말갈 추장 나갈(羅渴)이 좋은 말 10필을 바침.

 

백제본기에는 3세기 중엽 구수왕때까지 말갈이 백제를 공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3세기 중엽 말갈 추장 나갈이 좋은 말을 조공으로 바치며 친선을 요구하자, 더 이상 백제를 공격하는 말갈 기사가 사라진다.

고이왕 때 백제와 말갈은 화해하며 서로 공존하는 길을 모색한다. 대신에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와 본격적인 전쟁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고구려가 313년 낙랑을 멸한후 말갈은 고구려에 복속되고, 551년 거칠부의 공격을 받아 말갈(맥국)은 신라의 영토로 편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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