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세계금융위기①…녹아내린 아이슬란드
2008 세계금융위기①…녹아내린 아이슬란드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2.0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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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부채가 GDP의 7배…단기시장 막히며 위기 노출, 영국과 금융전쟁

 

아이슬란드(Iceland)9세기에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바이킹 족들이 정착한 이래 노르웨이의 영토였다가 16세기 이후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다. 1918년 덴마크로부터 독립했다.

븍극권에 가까워 말그대로 얼음의 나라다. 면적은 102,775로 우리나라와 비슷하며, 인구는 364만명으로 부산광역시를 약간 넘는다.

주요 업종은 알루미늄 광산업과 어업, 관광업이다. EU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아이슬란드 크로나(króna)라는 독자적인 화폐를 통용한다.

 

인공위성에서 본 아이슬란드의 겨울(2004년 1월) /위키피디아
인공위성에서 본 아이슬란드의 겨울(2004년 1월) /위키피디아

 

이 얼음나라가 2008년에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가장 먼저 금융위기를 맞았다. 이 나라의 은행들이 미국의 모기지 관련 채권에 투자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지불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한 부채를 끌어들인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해외 채권자와 예금자들이 일시에 상환요구를 받으면서 이 나라는 거덜났다.

2008년 위기 직전에 아이슬란드의 대외부채는 500억 유로(9,553조 크로나)를 넘어섰는데, 이는 이 나라의 2007GDP(85억 유로)7배나 되는 수준이었다. 3대 은행의 자산은 14,437조 크로나로, GDP11배나 되었다.

이처럼 아이슬란드 은행에 엄청난 자산이 쌓인 것은 2011년에 금융자유화의 일환으로 정부가 소유하던 은행을 민영화하면서부터였다. 민간은행들은 해외에서 자금을 끌어오고 예금을 유치했다. 민영화한 은행들은 영국과 유럽대륙보다 높은 금리를 쳐줬기 때문에 금리차이를 노리는 자금들이 대거 아이슬란드로 들어왔다. 유럽의 돈이 북극으로 흘러가면서 이 작은 나라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렸다. 유럽과 아이슬란드의 금리차이가 점점 벌어지면서 대규모 자금이 아이슬란드로 유입되었다. 특히 영국과 네덜란드 자금이 유입되었다. 아이슬란드 은행에 넣어두는 예금은 냉동보관(Icesave)이란 별명처럼 안전할 것 같았다.

통화량이 늘어나면서 2008년 중반에 중앙은행은 금리를 15.5%로 올렸다. 당시 영국의 금리가 5.5%, 유로존 4%에 비하면 세배 이상의 금리였다. 크로나로 발행하는 빙하채권(glacier bonds)은 영국과 대륙의 유럽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겨울에 얼음으로 뒤덮이는 이 나라에 부동산 가격이 뛰고, 주민들은 넘쳐나는 은행돈을 끌어들여 펑펑 썼다. 바이킹의 후예들은 알루미늄을 제련하며, 추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돈놀이를 하는 게 훨씬 쉬웠다. 위기 직전에 이 나라 가계부채는 가처분소득의 213%에 달했다. 자산가치 증가율이 이자율보다 높은 곳에서 가정에서 빚을 내는 것이 당연한 경제논리다. 하지만 그런 달콤한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게이르 호데 아이슬란드 총리의 기자회견(2008년 10월 27일) /위키피디아
게이르 호데 아이슬란드 총리의 기자회견(2008년 10월 27일) /위키피디아

 

2007년 이후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 금융시장이 휘청거리면서 은행들에 서서히 어려움이 닥쳐왔다.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재무구조를 들여다본 유럽의 은행들이 대출만기를 줄였다.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장기대출이 어려워지고 점점 단기시장에 의존하게 되었다.

2008915일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단기자본을 운영하는 머니마켓(money market)이 얼어붙었다. 초단기자본으로 대출만기를 이어가던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위기에 봉착했다.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닥쳐온 것이다.

가장 먼저 파산 위기에 처한 은행은 3대은행 중 하나인 글리트니르(Glitnir)였다. 이 은행은 중앙은행에 구제금융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중앙은행이 파악해 보니, 이 은행의 상환규모가 GDP를 훨씬 넘어 지원 자체를 거부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2주째가 되는 2008929, 아이슬란드 정부는 글리트니르 은행을 국유화한다고 발표했다. 이 은행은 1015일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를 무려 7,500억 달러나 안고 있었다. 가만 놔두면 보름후에 은행 자체가 공중분해될 상황이었다.

아이슬란드 정부가 이 부채를 대신 갚아줄 능력이 없었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다만 자국민 예금자만 보호해줄 생각을 했다.

북극 나라의 은행 파산 소식은 영국 예금자들을 불안하게 했다. 영국의 언론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재무구조를 파헤쳤다. 영국의 BBC는 아이슬란드 최대은행 카우프싱(Kaupthing)1억 파운드를 빌리는데 6,250만 파운드의 보증을 섰다며, 이런 최악의 사례를 일찍이 보지 못했다고 비아냥거렸다. 가디언지는 아이슬란드가 곧 파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크로나는 10월 들어 1유로당 131에서 340으로 폭락했다. 총리 게이르 호르데(Geir Haarde)는 아무런 대책을 찾지 못하고 주여, 아이슬란드를 살리소서라고 외칠 뿐이었다.

106일 영국 건지(Guernsey) 섬에 있는 아이슬란드 3대은행 란즈방키(Landsbanki) 지사가 건지섬 행정당국에 파산을 신청했다. 건지섬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영국령 섬으로 조세회피처(tax havem)로 운영되고 있었다. 영국 언론들이 떠들어댄 아이슬란드 은행파산이 가까워 진 것이다.

이날 저녁, 아이슬란드 중앙은행 간부가 자국 TV에 나와 우리는 다소 부주의한 은행 채무에 대해 지불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아이슬란드 정부가 내국인에 한정해 예금자 보호를 시행하겠다는 의미였다. 아이슬란드 정부의 입장은 국제관례상 맞는 말이다. 정부가 외국인의 예금까지 세금으로 지불할 필요가 없다.

 

아이슬란드 주가지수(OMX Iceland 15) 추이 /위키피디아
아이슬란드 주가지수(OMX Iceland 15) 추이 /위키피디아

 

하지만 영국은 가만 있지 않았다. 영국 재무장관 알리스테어 달링(Alistair Darling)은 미국의 9·11 테러 이후 제정한 반테러법을 적용해 영국내 아이슬란드 자산을 동결해 버렸다. 영국인들이 아일란드 은행에 예치한 예금이 40억 파운드로 추정되었는데 영국 정부는 그 이상을 동결했다. 영국금융청(Financial Services Authority)은 아이슬란드 은행 카우프싱 영국 법인이 파산하자 곧바로 그 법인의 해외부분을 네덜란드 ING디렉트에 매각처분했다.

두 나라 사이에 감정 대립이 격화되어 갔다. 고든 브라운(Gordon Brown) 영국 총리는 영국인 예금자 30만명을 대신해 아이슬랜드에 법적 조치를 단행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게이르 호데 아이슬란드 총리는 영국이 반테러법을 적용한 것에 분노한다고 맞받아쳤다.

아이슬란드는 영국과 함께 NATO 회원국이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영국정부의 조치에 대한 불만을 NATO에 분풀이했다. 자칫하면 NATO를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것이다. 그러자 영국은 정기적으로 아이슬란드 영토를 보호화기 위해 파견하는 공군기 출격을 중단해 버렸다. 아이슬란드는 러시아에 군사기지를 주겠다고 슬며시 제안했지만, 러시아측이 남의 나라 금융분쟁에 끼어들기 싫어 거절했다.

 

영국 정부의 공세는 아이슬란드 금융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카우프싱, 란즈방키, 글리트니르등 3대 은행이 차례로 국영화되거나 정부 통제에 들어갔다. 수도 레이캬비크 주식시장은 정점에서 90%나 폭락했다. 외국인 예금자 보호에 대한 다툼은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법정에 상정되어 수년을 끌었다. 후에 외국인 예금에 대해 아이슬란드 정부가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

 

게이르 호데 아이슬란드 총리의 기자회견(2008년 10월 27일) /위키피디아
게이르 호데 아이슬란드 총리의 기자회견(2008년 10월 27일) /위키피디아

 

아이슬란드 정부는 극도의 긴축정책을 썼다. 정부의 금융감독 실패와 무능을 탓하는 아일랜드 국민들의 시위가 확대되며 호데 총리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은 부엌에서 쓰는 남비와 프라이팬을 들고 나와 두드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 시위 결과 호르데 정부가 퇴진했는데, 이 시위를 키친웨어 혁명’(Kitchenware Revolution) 또는 그릇과 팬의 혁명’(Pots and Pans Revolution)이라 부른다.

아이슬란드의 GDP20073분기에서 20103분기까지 10%나 감소했다. 얼음왕국은 극도의 긴축재정과 자본통제를 실시하고 IMF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위기 3년 후인 20118월에 IMF를 졸업했지만 자본통제는 2017년까지 이어졌다. EU에 가입하려 시도했지만 회원국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참고자료>

Wikipedia, Iceland

Wikipedia, 20082011 Icelandic financial crisis

Wikipedia, 2009 Icelandic financial crisis prote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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