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4일 영국 노던록 은행 지점에 긴 줄이 늘어섰다. 예금자들이 자신의 돈을 먼저 인출하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었다.

뱅크런(bank run)은 은행이 부도나기 전에 예금자가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으로 달려가는 현상을 말한다. 영국에서 뱅크런이 150년만에 재현되었다.

노던록(Northern Rock)은 잉글랜드 북동부 지역의 50여개 주택조합(building society)들이 합쳐져 1990년대말에 금융업으로 전환한 지역은행이다. 이 시골뜨기 은행은 미국 부동산 붐과 함께 모기지 채권을 사면 큰 돈을 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동산에서 출발한 은행이니만큼 그 분야에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다고 자부했다.

은행 경영자들은 머니마켓에서 돈을 빌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대량으로 샀다. 2007년 중반, 미국 모기지 시장이 가라앉으면서 노던록은 머니마켓에서 자금을 빌리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모기지 채권 가격은 하락하고 빌린 돈의 만기가 돌아오면서 이 은행은 2007년 9월 영국 중앙은행에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이 소식이 보도되면서 예금자들이 내 돈을 빼내기 위해 은행 창구로 몰려들었다. 이 은행이 2007년말 기준으로 자산은 89억 파운드, 차입금은 260억 파운드였다. 결국 이 은행은 2008년 2월에 주주들이 돈을 한푼도 못 받고 지분 90%를 정부에 내주며 국유화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노던록은 150명의 간부들에게 넉넉한 보너스를 지급하려 했다. 세금으로 예금자 돈을 상환해야 할 처지에 간부들은 제몫을 챙기려 한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미국의 모기지 채권을 산 유럽은행들이 집단 도산의 위기에 처했다. 영국 정부는 2008년 10월에 5,000억 파운드(8,500 달러)의 은행구제 패키지를 마련했다. 이 돈은 세금에서 마련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국인들은 부도덕한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세금을 냈던 것이다. 바클레이즈, 로이즈, 애비(Abbey), HBOS, HSHC, 스탠다드차타드,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 등 내로라는 은행들이 세금에 의지해 살아났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영업하던 인디맥(IndyMac) 은행에서 뱅크런이 나타났다. 인디맥은 프레디맥(Freddie Mac)과 파머맥(Farmer Mac)처럼 회사 이름에 공공은행인 것처럼 Mac(Mortgage Corporation)이란 꼬리표를 달았지만, 민간은행이었다. 이 회사의 모기업은 컨트리사이드파이낸셜(Countrywide Financial)로, 2006년 현재 미국 모기지 채권의 20%를 거래했고, 자산규모가 미국 GDP의 3.5%에 이르렀다.

1985년에 창립한 인디맥은 처음엔 중간등급의 모기지 채권인 알트-A(Alt-A)를 거래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2006년에 모기지채권 거래액이 900억 달러로 늘어나 이 은행은 저축대부조합(savings and loan)으로는 7위, 모기지 채권거래는 9위로 뛰어 올랐다.

수익이 늘어나면서 점점 더 위험한 채권에 손을 댔다. 은행은 주택 거품이 가장 심한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네바다, 애리조나에 집중투자하고, 구매자의 소득이나 신용을 보지 않고 대출을 주었다. 특히 금리에 취약한 변동금리 모기지(ARM)의 대출 비중이 높았고, 서브프라임 시장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주택 거품이 붕괴되면서 인디맥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겉보기에 멀쩡한 이 은행에 부실이 드러난 것은 2008년 5월 12일 SEC가 발행하는 10-Q 분기보고서였다. 금융감독당국은 이 자료에서 이 은행의 재무구조가 어려워질수 있다고 언급했다. 예금자들이 창구로 달려갔고, 예금을 인출되면서 은행은 급격히 가라앉았다.

2008년 7월 31일 인디맥은 청산절차에 해당하는 챕터7(Chapter 7 bankruptcy)을 법원에 신청했다. 미국 역사상 4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었다.

인디맥이 예금자의 돈을 꺼내 모기지 채권에 투자하면서 미국 금융규제를 어겼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은행은 예금의 37%인 68억 달러를 위험자산에 투자했다. 부실이 생기자 모기업의 지원금으로 덮으려 하다가 예리한 SEC의 관찰에 들어난 것이다.

 

2007에서 2008년까지 미국에선 170개의 크고작은 은행이 도산했다. 그중 인디맥이 상대적으로 컸고, 대부분이 군소은행들이다. 큰 은행의 부실은 연방정부와 연준(Fed)이 떠안으면서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비난을 샀다. 대형은행이 파산하면 예금자 손실은 물론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에 연방정부는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두 개 공공주택은행을 국영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우량채권의 부실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한 조치였다.

최대증권사 메릴린치는 상업은행 뱅크오브어메리카에 떠넘겼다. 이 M&A 과정에서 재무부와 연준이 도왔다. 보험회사 AIG에게 연준이 850억 달러의 긴급자금을 대출해 주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 워싱턴 뮤츄얼(Washington Mutual)이 휘청거렸다.

워싱턴뮤츄얼은 1889년 워싱턴주 시애틀에 대화재가 발생한 이후 재건작업에 자금대출을 하기 위한 상호출자회사로 출발했다. 이 회사는 1983년에 은행으로 전환하고, 워싱턴 오레건 아이다호 유타 몬태나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서부지역에서 영업을 확장했다.

2000년대 들어 월마트식 경영방침을 세우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8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160억 달러, 주택채권 534억 달러를 보유했는데, 여기서 부실이 발생한데다 은행상호간 대출에서 자금융통이 막혀버렸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예금자들이 뱅크런으로 9일동안 인출한 자금이 167억 달러, 총예금의 9%에 해당했다. 2008년 9월 25일 은행은 견디지 못하고 파산보호신청을 냈다. 미국은행 파산으로는 역사상 네 번째 규모의 파산으로 기록되었다.

 

 

노스캐롤라이나에 본거지를 둔 와쵸비아 코프(Wachovia Corp)는 미국 4위 시중은행이었다. 이 은행은 워싱턴뮤츄얼 파산 이후 예금자들이 경쟁적으로 예금을 인출하는 바람에 은행 잔고가 급속하게 비어갔다. 9월 26일 하루에 50억 달러의 예금이 빠져나갔다. 이 은행의 예금잔고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렇게 가다간 은행이 며칠내에 부도가 날 가능성이 컸다.

금융당국이 와쵸비아를 주시하며 개입했다. 이때 적용된 논리가 대마불사다. 와쵸비아가 파산하면 미국경제는 걷잡을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였다. 벤 버냉키 의장은 후에 “와쵸비아는 (미국) 경제에 체계적 중요성(systemically important)이 있었다”는 선문답으로 대마불사의 논리를 표현했는데, 이 선에서 연방정부와 연준이 철통방어에 나선 것이다.

금융당국은 일단 건실한 은행인 시티그룹과 웰스파고를 동원해 와쵸비아의 지점을 관리하게 했다. 예금인출은 연준이 지급보중했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씨티그룹이 와쵸비아를 방어하면서 본 손실 420억 달러를 보전했다. 당국은 와쵸비아를 웰스파가 인수하게 함으로써 예금자 불안을 씻어냈다.

 

2008년 11월에 미국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중대한 정치행사를 한달 앞두고 민주·공화 양당은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법안(TARP)에 합의했다. TARP를 뒷받침하는 긴금경제안정화법안(Emergency Economic Stabilization Act)은 곧바로 상하 양원을 통과해 시중은행에 뿌려졌다. 이 금액은 2012년에 4,750억 달러로 줄었으며, 실제 집행된 액수는 4,310억 달러였다. 이를 통해 미국은 금융시장 붕괴를 막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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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Wikipedia, Northern Rock

Wikipedia, 2008 United Kingdom bank rescue package

Wikipedia, IndyMac

Wikipedia, List of banks acquired or bankrupted in the United States during the financial crisis of 2007–2008

Wikipedia, Washington Mutual

Wikipedia, Government intervention during the subprime mortgage cri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