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두는 신라왕녀…호화 장신구 쏟아졌다
바둑 두는 신라왕녀…호화 장신구 쏟아졌다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12.0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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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쪽샘 44호서 바둑돌, 비단벌레 금동 장식, 돌절구 등 출토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에서 바둑돌 200여개가 쏟아졌다. 이 무덤에 묻힌 주인공은 왕족 가운데 여성으로 추정되었다. 무덤에 묻는 물건은 피장자가 애호하던 것이 통례이므로, 신라 왕녀가 바둑을 두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그동안 남성 무덤에서 바둑돌이 출토되었지만, 이번엔 쳐성으로 추정되는 무덤에서 바둑돌이 나왔다. 신라시대에 여성들도 바둑을 두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가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 대한 정밀발굴조사에서 무덤 주인공이 착장한 금동관(1), 금드리개(1), 금귀걸이(1), 가슴걸이(1), ·은 팔찌(12), ·은 반지(10), 은허리띠 장식(1) 등 장신구 조합, 비단벌레 딱지날개로 제작된 금동 장식 수십 점, 돌절구·공이, 바둑돌(200여 점), 운모(50여 점) 등을 지난 달 한꺼번에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쪽샘 44호 고분의 주인공 장착 장신구 세트 /문화재청
쪽샘 44호 고분의 주인공 장착 장신구 세트 /문화재청

 

이 무덤의 주인공이 착장한 장신구들은 전형적인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나오는 장신구 양식들이다. 특히 가슴걸이는 남색 유리구슬과 달개(瓔珞, 쇠붙이 장식)가 달린 금구슬, 은구슬을 4줄로 엮어 곱은옥을 매달았는데 이러한 형태는 황남대총이나 천마총 같은 최상위 계층 무덤에서만 확인되었던 디자인이다.

장신구의 구성과 재질 등을 고려했을 때, 44호의 주인공은 신라 최상층인 왕족으로 추정되며, 장식대도(裝飾大刀)가 아닌 은장식 도자(刀子, 작은 손 칼)를 지닌 점에서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출토유물을 기준으로 한 피장자의 신장은 약 150전후로 추정되며, 금동관, 귀걸이, 팔찌, 허리띠 장식 등 장신구의 크기가 전반적으로 작은 점도 피장자가 여성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장신구 크기가 작은 점은 기존 조사 사례 중 금령총과 유사하다.

무덤의 축조연대는 출토된 토기, 금귀걸이나 금팔찌의 형태로 보아 금관총 출토유물과 유사한 점으로 비추어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출토 바둑돌 /문화재청
출토 바둑돌 /문화재청

 

이번에 출토된 유물 가운데 주목할만한 것이 바둑돌이다. 바둑돌은 피장자 발치 아래에 부장된 토기군(土器群) 사이에 대략 200여점이 모여진 상태로 확인되었다. 크기는 지름 1~2, 두께 0.5내외이고 평균적으로 1.5정도의 것이 가장 많다. 색깔은 크게 흑색, 백색, 회색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인공적으로 가공한 흔적이 없어 자연석을 그대로 채취해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도 신라시대 바둑돌은 황남대총 남분(243), 천마총(350), 금관총(200여점), 서봉총(2) 등 최상위 등급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만 출토된 바 있다. 이후 시기로 넘어가면 7세기대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인 용강동 6호분(170)에서도 확인되었고, 분황사지에서는 가로세로 15줄이 그어진 바둑판 모양의 전돌(벽돌)이 출토되기도 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효성왕(재위 737742)대 기록에 효성왕이 바둑을 뒀다는 내용과 신라 사람들이 바둑을 잘 둔다는 내용 등이 확인된다. 그동안 바둑돌이 출토된 무덤의 피장자는 모두 남성으로 추정되어 당시 바둑이 남자의 전유물로 이해되었다. 이번 피장자는 왕족 여성으로 추정되고 있어 바둑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비단벌레 금동장식(위)와 재현품(아래) /문화재청
비단벌레 금동장식(위)와 재현품(아래) /문화재청

 

비단벌레 장식도 나왔다. 주인공 머리맡에 마련된 부장궤(副葬櫃, 부장품 상자) 상부에서 수십 점이 확인되었다. 비단벌레의 딱지날개 2매를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앞뒤판 둘레를 금동판으로 고정하여 만든 장식이다. 크기는 가로세로 1.6×3.0cm에 두께는 2정도 소형이며, 신라 고분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바가 없는 형태와 크기의 장식이다.

비단벌레 장식은 기존 신라 고분에서도 황남대총 남분, 금관총, 계림로 14호 등 최상급 무덤에서만 출토된 바 있어 이번 44호 피장자의 위계를 상징적으로 가늠할수 있다.

또 지금까지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비단벌레 장식은 모두 마구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번 비단벌레 장식도 안장이나 장니(障泥, 흙이 튀지 않게 안장 밑에 늘어 뜨린 말다래)에 매달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할수 있다.

 

돌절구와 공이 /문화재청
돌절구와 공이 /문화재청

 

돌절구와 공이는 주인공 머리맡 부장궤(副葬櫃) 안 철솥 바로 옆에서 함께 확인되었다. 돌절구는 바닥이 평평하고 세로로 긴 형태이며, 화강암을 연마하여 위쪽에 얕은 함몰부를 만들었다. 돌절구의 크기(높이 13.5cm, 11.5cm)와 함몰부의 용량(60ml)으로 보아 곡물을 빻는 실질적인 용도라기보다는 상징적 의미로 부장되었을 수도 있고, 약제를 조제하는데 사용한 약용 절구(현대의 막자사발과 같은 용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사례는 황남대총 남분에서 돌절구공이 1묶음, 서봉총에서 공이 1점이 확인된 바 있다. 이외에 출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국은(菊隱) 이양선 박사(1916~1999)의 기증 유물 가운데도 돌절구와 공이 1묶음이 있다.

 

금드리개(위의 좌, 우), 금귀걸이(중간의 좌, 우), 금은팔찌(아래 좌), 은팔찌(아래 우) /문화재청
금드리개(위의 좌, 우), 금귀걸이(중간의 좌, 우), 금은팔찌(아래 좌), 은팔찌(아래 우) /문화재청
금동관 노출(위)과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아래) /문화재청
금동관 노출(위)과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아래) /문화재청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분 발굴조사는 2014년부터 진행되어 올해로 7년차이며, 현재 매장주체부 유물 노출까지 진행되었다. 그동안 호석(護石) 주변에서 행해진 제사흔적, 봉분 성토방식, 적석부 구조와 축조방식, 다양한 지점에서의 의례행위 등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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