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5년에 백제 부소산성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645년에 백제 부소산성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12.0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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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巳年’ ‘北舍’란 글자 새겨진 토기 출토…성벽, 기단, 건물지등 발굴

 

충남 부여 부소산성에서 제작연도가 새겨진 토기가 발굴되었다. 토기에는 을사년(乙巳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제작년도가 서기 645년으로 추정된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부여 부소산성(사적 제5) 발굴조사에서 백제~통일신라 시대 성벽, 와적기단(瓦積基壇) 건물지, 집수시설을 비롯해 을사년(乙巳年)’, ‘북사(北舍)’ 글씨가 새겨진 토기 등 중요유물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토기에 새겨진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 ’이란 글자 /문화재청
토기에 새겨진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 ’이란 글자 /문화재청

 

발굴조사에서 눈에 띠는 유물은 궁녀사 구간 집수시설에서는 발굴된 토기다. 이 토기에는 乙巳年(을사년)’, ‘北舍(북사)’라는 글씨가 새겨져있다.

토기에 쓰여진 글자는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이라는 14자의 명문이다. 내용은 을사년 315일 모시산(牟尸山) 사람 국()이 만들었다로 해석된다.

을사년은 서기 645년으로 추정된다. 서기 645년은 의자왕 5년으로, 삼국사기에 그해 여름 5, 임금이 당 태종이 직접 고구려를 치면서 신라에서 병사를 징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 틈을 타서 신라를 습격하여 7개 성을 빼앗으니, 신라에서 장군 유신을 보내 침범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이 명문 사이에 연관성 여부를 찾기 어렵다.

모시산(牟尸山)삼국사기 잡지에 백제의 마시산군(馬尸山郡)과 유사해 충남 예산, 덕산으로 추정했다. 문화재 당국은 이 기와의 제작지와 제작자가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보고 있다.

北舍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는 백제 사비왕궁지구인 관북리 유적, 익산의 왕궁리 유적, 익산토성과 같이 왕실과 관련 있는 중요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

 

궁녀사 구간 집수시설 출토유물 /문화재청
궁녀사 구간 집수시설 출토유물 /문화재청

 

같은 곳에서 중국제 자기, 칠기(漆器) 등 중요유물과 더불어 수백 점이 넘는 백제 사비기 토기가 함께 매몰되어 있었다. 출토된 백제 시대 토기는 완형에 가까운 기대(器臺), 보주형(寶珠形)뚜껑, 전달린토기의 비중이 높았다. 또한, 7세기 신라 병형토기도 출토되었다.

 

조사결과, 부소산성 내 평탄지가 존재하는 군창지 구간, 사자루 구간, 궁녀사 구간 등에서 백제 시대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군창지 구간에서는 백제 중요유적에서 주로 확인되는 와적기단을 갖추고 둥근 모양으로 잘 다듬은 초석(기둥을 받치는 돌)을 사용한 위계 높은 건물지가 발굴되었다. 사자루 구간에서는 백제~통일신라 시대 성벽, 굴립주 건물지, 사각(방형)의 초석을 사용한 건물지 등이 조사되었다. 궁녀사 구간에서는 집수시설이 확인되었다.

 

부여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도성의 배후산성과 왕궁성으로 추정되는 유적으로, 성의 둘레는 약 2,200m이다. 19802002년 사이에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연차 발굴조사를 진행해 백제~조선 시대에 축조한 성벽, 백제 시대 수혈 건물지(땅을 파고 조성한 건물지)와 목책열, 조선시대 군창지 등을 확인한 바 있다.

이번 조사는 지난 7~8, 부소산성 내에 너비 1m, 깊이 0.8m의 재난 방재 관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성벽, 건물지, 추정 집수시설 등 유구의 존재가 확인되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긴급발굴을 하면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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