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세계금융위기⑤…“월가를 점거하라”
2008 세계금융위기⑤…“월가를 점거하라”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2.0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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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 불평등 심화…금융인 부도덕 규탄하는 점거운동 확산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휘청이던 20093월 보험회사 AIG16,500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공개했다. 미국 최대보험사인 AIG는 모기지채권과 연계된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에 투자했다가 대형 손실을 보았고, 20184분기에 617억 달러의 적자를 내 파산위기에 몰렸다. 2008년말 뉴욕 연준(Fed)이 나서서 8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고 겨우 살아난 회사였다.

국민이 낸 혈세로 살아난 회사가 무슨 보너스 잔치인가. 미국의 여론이 들끓었다. 언론들은 AIG 보너스를 추적했다. 보너스 이외에 회사가 주는 여러 가지 혜택을 포함하면 21,800만 달러에 이른다는 계산도 나왔다.

AIG측은 경영진들이 금융위기 속에서 파생상품을 털어내려 나름 고생했다며 군색한 변명을 늘어 놓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화를 냈다. 그는 세금으로 살아난 회사가 그렇게 많은 보너스를 받는 것은 납세자를 분노케 하는 것이라며 그 돈을 회수하는 방법을 찾아내라고 티모시 가이스너 재무장관에게 지시했다. 공화당 상원의원 찰스 그래슬리는 회사가 망하면 일본 기업인들은 사임하거나 할복자살한다면서 성토했고,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의원도 무슨 동화의 나라 앨리스인줄 아느냐고 비난했다.

하원은 즉각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은 회사의 보너스를 100% 세금으로 환수하는 법을 32893의 압도적 표결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입법을 금지한 헌법 조항에 위반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상원은 위헌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법안을 부결시켜버렸다.

AIGCEO 에드워드 리디(Edward M. Liddy)는 의회 청문회에 불려 나가 “10만 달러 이상 보너스를 받은 간부들에게 절반을 회사에 돌려주도록 권유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대답도 대중의 분노를 삭히지는 못했다. CEO의 지시로 고액 보너스를 받은 사람들의 상당수가 절반을 회사에 토해냈는데, 돌려주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5,000억 달러가 회수되었는데, 나머지 1억 달러 이상은 지급되었다.

 

뉴욕 맨해튼의 AIG 본사 로비 /위키피디아
뉴욕 맨해튼의 AIG 본사 로비 /위키피디아

 

AIG의 보너스 논란은 미국 기업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경영자들은 거액의 스톡옵션을 받아 챙기고, 단기 이익을 내기 위해 회사를 경영했고, 자신의 임기 내에 실적을 부풀리는 일에 열중했다. 미국 기업과 금융기관은 연방정부와 의회에 압력을 넣어 기업에 유리한 법안을 만들었다. 그 결과로 미국 사회의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현상이 심화되었다.

미 연방의회예산국(CBO)의 자료에 따르면 1979~2007년 기간에 미국인 상위가계 1%의 소득이 275% 상승한데 비해 중산층 60%의 소득은 40% 증가하는데 그쳤다. 1979년 이후 하위 90%의 미국인들의 세전소득은 평균 900 달러 감소한 반면에 상위 1%의 소득은 70만 달러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연방정부의 세금이 부자들에게는 부드럽게, 일반 대중에겐 까탈스럽게 매겨졌다는 얘기다.

1992~2007년 사이에 미국 최고소득자 400명의 소득은 392% 증가한데 비해 이들에 대한 과세액은 37% 증가했을 뿐이다. 2009년 미국 상위 1%의 평균소득은 96만 달러로 100만 달러에 근접했다.

2007년 통계로 상위 1%의 인구가 미국 전체 부()34.6%를 차지했고, 그 아래 19%50.5%를 소유했다. 상위 20%를 합치면 미국 부의 85%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80%의 미국인은 고작 15%를 놓고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통계가 확인해 주었다.

주식 등 금융자산만을 놓고 보면, 상위 1%42.7%, 차상위 19%50.3%, 나머지 80%7%에 불과했다. 금융위기로 출발한 미국의 경제불황은 상위계층의 돈놀이에서 촉발되었고, 그 결과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가된 것이다. 실업자 증가, 임금삭감, 소상공인들의 매출 감소는 경제위기의 산물이었다.

불평등 심화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모든 나라의 문제였다. 금융위기로 빚어진 사회적 불만은 시위운동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니, 점거운동(Occupy movement)이다.

 

미국인 상위 1%의 소득 비중 추이 /위키피디아
미국인 상위 1%의 소득 비중 추이 /위키피디아

 

2011917, 뉴욕 맨해튼 주코티 공원(Zuccotti Park)1,000명의 시위대가 몰렸다. 주코티 공원은 20019·11 테러 때 인근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바람에 손상되어 수리를 거쳐 2006년에 재개장되었다. 월스트리트에 가장 가까이 있는 공원이다.

시위대들은 우리는 99%”(We are the 99%)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그들 중 200여명은 그곳에서 노숙을 하며 이튿날에도 시위를 주도했다. 에스토니아 출신 캐나다인 칼레 라슨(Kalle Lasn)이 시작하고 어드버스터스(Adbusters)라는 캐나다 소비자운동단체가 주도한 이 시위는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운동으로 번져 나갔다.

이들은 금융위기로 타격을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1%의 소수가 99%의 대중을 가난하게 한 원흉이라는 인식이 그 출발점이었다. 이들의 주장은 기업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축소하고 소득을 보다 더 균형있게 배분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더 만들라는 것이었다. 나아가 금융기관을 개혁하고 뱅커들의 투기적 거래를 중지시키고, 압류된 주택을 해제하라고도 했다.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인하하라는 요구도 있었다.

이 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 헌금으로 7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뉴욕상품거래소의 부사장을 지냈던 로버트 핼퍼(Robert Halper)도 거금을 쾌척했다.

시위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뉴욕시 당국이 1115일 주코티 공원에서 시위대를 해산한 직후에 그들은 은행과 기업의 본사, 이사회, 압류된 주택, 대학가로 이동해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주도자들은 그해 일어난 아랍의 봄(Arab Spring) 시위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그해 1015일을 기해 세계적인 시위운동을 벌였는데, 이때 82개국, 951개 도시에서 점거운동(Occupy movement) 시위가 벌어졌다. 한국에서도 여의도와 서울역 등지에서 연대시위가 일어났다.

이들은 우리는 99%라는 슬로건으로 통일했다. 주로 20~40대의 젊은 층이 가담했고, 인쇄물을 제작해 배포하고 SNS를 통해 시위소식을 전했다. 그들은 금융인들이 보는 월스트리트 저널을 흉내내 '점거 월스트리트저널'(Occupied Wall Street Journal)을 간행하기도 했다.

 

2011년 9월 17일, 뉴욕 주코티 공원에 모인 시위대 /위키피디아
2011년 9월 17일, 뉴욕 주코티 공원에 모인 시위대 /위키피디아

 

이 운동의 성격에 대해 사회주의 운동이라고 보는 해석과 그렇지 않다는 해석이 있다. 슬로건을 보면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고, 자본주의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았다. 타락하고 부패한 금융인, 기업인들에게 경고했을 뿐이다. 뉴욕타임스의 논객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점거운동은 오래가지 못하고 동력을 잃어버렸다. 핵심 주도자가 없었고,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데다 흑인 등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모자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 운동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도 금융 노동자들을 악마화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지방정부들은 처음엔 시위를 방치하다가 도로교통 위반, 상업방해 등을 이유로 시위대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한해 후에 이 시위는 조용하게 사라져 버렸다.

 


<참고자료>

Wikipedia, AIG bonus payments controversy

Wikipedia, Occupy movement

Wikipedia, Zuccotti Park

Wikipedia, Occupy Wall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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