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①…그리스 포퓰리즘의 파국
유럽 재정위기①…그리스 포퓰리즘의 파국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2.10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과도한 복지 정책에 재정적자 누적…세계금융위기 여파로 국가파산 위기

 

2009104일 그리스 총선에서 좌파정당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OSOK)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Giorgos Papandreou)가 총리에 올랐다. 파판드레우는 그리스의 유력 정치가문 출신으로,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총리를 이어갔다.

파판드레우 정부는 출범 보름후인 1020일 그해 재정적자가 GDP12.7%에 달하며, 공공부채는 4.1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EU가 요구하는 재정적자 가이드라인은 GDP3%인데, 그리스는 그보다 4배나 많다고 공개한 것이다. 그러자 곧이어 피치, S&P, 무디스 등 신용평가 3사가 경쟁적으로 그리스의 국가신용도를 떨어뜨렸다.

파판드레우 정부의 솔직한 고백은 그리스 경제위기를 촉발하는 단서가 되었고, 나아가 EU 재정위기로 확대되었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이제 막 총리가 된 파판드레우가 초래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 경제위기는 멀리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 가, 신임 총리의 아버지이자 정치적 선배인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Andreas Papandreou)가 총리를 할 때 만들어 놓은 결과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중도우파 정치인이었으나, 아버지 안드레아스는 좌파 정치인이었다. 안드레아스는 1981~1989, 1993~1996년에 걸쳐 두차례 총리를 역임했다.

 

3세대 총리를 이어건 파판드레우 가문(좌로부터 선대) /위키피디아
3세대 총리를 이어건 파판드레우 가문(좌로부터 선대) /위키피디아

 

아버지 파판드레우가 총리를 하던 1980년대에 내건 구호는 변화였다. 파판드레우 정권은 앞서 군사정부와 왕정의 권위주의와 서열주의를 배격하고 평등주의를 실현했다. 그 일환으로 만든 정책이 직장의 단일호봉제와 학교에서의 시험폐지였다. 똑같이 일하고 똑같은 임금을 받고,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끼리 경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은 평등하고, 노동의 질도 균일하다는 이 정책은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제도는 그리스인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경쟁이 필요 없는 사회에 국민들은 게으름을 선호했고, 물질만능주의를 탐닉하게 했다.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창의는 사라지고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산업에 대한 추구도 없었다. 대학의 질도 떨어졌다.

주요산업은 관광과 농업이었다. 관광은 고대 선조들이 물려준 찬란한 문화유산 덕분에 유럽에서 으뜸가는 수익을 올렸고, 지중해의 따듯한 기운에 힘입어 농작물은 쑥쑥 자랐다.

2차 대전과 내란을 거치면서 사회기반시설이 거의 파괴되어 있었기 때문에 재건과정에서 경제성장률을 빨랐다. 1950~1975년 사이에 그리스의 GDP 성장률은 연평균 10%를 상회해 일본 다음으로 높은 성장률을 달성하는 기적을 이뤘다. 1980년대에도 독일을 비롯해 북유럽 자본이 흘러들어오면서 그리스는 넉넉한 자금을 운영할수 있었다.

아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PASOK 정부는 대대적인 복지시스템을 도입했다. 농촌 주민들에게도 의료 혜택을 부여하고, 저소득 가정의 여행을 국가에서 보조해 주었다. 이러한 비용은 국가가 짊어졌다. 공공채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 그리스는 포퓰리즘의 시대였다. 이 시기에 국가부채는 GDP28%에서 89%로 증가했다. 그 수치는 2002년에 98%로 상승했다.

당시만 해도 그리스는 그다지 국가채무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경제성장률이 높았기 때문에 채무는 상환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부는 점점 관료화되어 갔다. 복지를 늘리는 바람에 공무원 수가 늘어나고 1981~1991년 사이에 공공부문이 42%나 증가했다. 우파 정부가 들어서도 좌파정부가 마련한 정책을 뒤엎지 못했다. 복지혜택을 줄이는 정책을 취하면 표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리스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위키피디아
그리스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위키피디아

 

국민들은 점차로 소비에 탐닉하게 되었다. 2001년 유럽의 통화가 단일화하고 EU 단일시장이 형성되면서 그리스는 북쪽의 잘 사는 나라에서 유입되는 돈에 젖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유럽의 공동기준에 경제의 틀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EU 단일 경제시스템은 그리스의 새 젖줄이 되었다. 단일 시장은 단일 통화에 단일 금리를 적용했다. 그리스의 생산품은 독일의 생산품에 대해 경쟁력을 잃게 되고, 그리스인들은 점점 더 외국산 제품에 의존하게 되었다. 소득보다 더 많은 대출을 얻었고, 그 대출로 소비를 이어갔다.

금리는 낮았다. EU의 풍부한 유동성이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쪽으로 흘러갔다. 그리스의 은행들의 자산은 연간 20% 이상 늘어나 경제성장률을 세배나 상회했다. 은향들은 흘러넘치는 돈을 소비자들에게 빌려주었고, 그리스인들은 값싼 돈에 흥청거렸다.

넘치는 돈은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쾌락적 소비에 돈을 썼다. 주택가격도 상승했다. 정부도 복지비용을 채권 발행으로 충당했다. 채권발행 비용은 높지 않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 그리스인들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절호의 계기였다. 지하철도 초현대식으로 신설하고 대형스포츠센터도 만들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위키피디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위키피디아

 

올림픽이 끝난후 2005년에 그리스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선정한 삶의 질 지수(quality-of-life index)에서 그리스는 독일, 벨기에, 프랑스보다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지수는 그리스가 빚더미 위에서 누리는 삶이란 것을 제시하지 않았다. 기업은 국영화되었고, 고용은 공공기관에 의해 이뤄졌으며, 소비는 부채에 의해 지탱되었다.

 

이러한 빚 잔치 구조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불어 닥치면서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유럽의 은행들도 얼어붙었다. 그리스로 흘러가던 돈줄도 막혔다. 부채는 장기든 단기든 만기가 있다. 만기가 돌아오면 상환하거나 다른 부채를 얻어 연장해야 한다.

돈줄이 말라버리면서 그리스 정부와 국민들은 자신들이 빚더미 위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세대 파판드레우가 총리가 되고 나서 6~8%로 예고했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갑자기 12.7%라고 정정한 것이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EU통계국(Euorstat)이 수차례 그리스의 재정을 재심사한 결과 이 수치가 최종적으로 15.5%로 정정되었다. 그리스는 통계를 조작하는 나라로 의심을 받게 되었고, 금융시장의 참여자들은 그리스에 빌려준 돈을 빠른 속도로 회수하게 된다.

해를 넘겨 20101월 그리스 정부는 5년물 국채 80억 달러를 발행하는데 4배 이상의 수요가 있었고, 3월에 10년물 50억 달러를 발행하는데도 3배의 수요를 채울수 있었다. 하지만 4월에 신용평가회사들이 그리스 국채에 대한 신용을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뜨리면서 그리스 정부는 채권시장에서 돈을 빌릴수 없게 되었다. 파판드레우스 정부는 국가파산의 위기에 직면에 EU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52EC(유럽위원회), ECB(유럽중앙은행), IMF의 트로이카가 1,1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그리스에 제공했다. EUIMF의 구제금융은 파산위기에 몰린 그리스를 돕자는 것이기도 하지만, 채권은행들이 돈을 상환받기 위한 절차이기도 했다. 채권은행단은 구제금융을 주고 만기를 연장해주는 조건으로 그리스 정부에 긴축재정을 요구했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아버지 대에 만들어 놓은 복지제도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돈을 흥청망청 쓰던 그리스인들은 제왕처럼 군림하는 채권은행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느끼게 된다.

 


<참고자료>

Wikipedia, George Papandreou

Wikipedia, Greek government-debt crisis timeline

SAGA jounals, Populism and the Greek crisis: A modern tragedy

Wikipedia, Greek economic miracle

Wikipedia, Andreas Papandreou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