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③…사라진 ‘13월의 월급’
유럽 재정위기③…사라진 ‘13월의 월급’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2.1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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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부실 해소하는 과정에서 국가채무 증가…복지축소에 시민 항의

 

우리나라 직장인들에게 ‘13월의 보너스란 말이 있다. 연말정산을 통해 그동안 낸 세금을 돌려받는 것인데, 실제론 보너스가 아니다. 하지만 ‘13월의 월급’(thirteenth salary)을 받는 나라가 있다.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컬롬비아 등 남미 국가에서 제도화되고 있는데, 유럽에서도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에서 제도화되어 있고, 벨기에, 이탈리아, 체코,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 관습화되어 있다. 특히 그리스 공무원에겐 14월의 봉급도 있고, 크리스마스, 부활절, 여름휴가철에는 별도로 보너스를 줬다.

유럽국가들 가운데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는 노조와 사회주의 정당이 강력해 상상도 하기 어려운 복지제도를 채택했다. 정부는 예산을 늘려 공기업 직원들에게 다양한 보너스를 줬고, 사기업들도 따라갔다. 이처럼 남유럽 국가들이 과도하게 복지정책을 쓸수 있는 것은 유럽통합 이후 값싼 자금을 빌릴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가장 큰 결점은 회원국들의 약속 위반에 규제 장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1992년에 체결된 조약에는 회원국들이 연간 재정적자를 GDP3% 이내에서 억제하고 국가부채를 GDP60% 이내로 제한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약속을 지킨 나라가 거의 없었다. 2010년에 독일의 재정적자가 GDP4.3%였고, 이탈리아는 4.6%였다. 재정이 가장 건실한 독일마저 약속을 위반했는데, GDP10%를 넘은 그리스를 규제할 명분이 없었다.

국가부채가 많은 나라를 규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유로존에서 탈퇴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EU는 위축되고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 유로화를 폐기하고 EU를 해체하는 것은 독일과 프랑스도 원치 않았다. 이들 나라도 유럽 동맹체에서 이득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EU를 깨지 않고 파산 위기의 나라를 회생시키는 방법은 잘사는 나라가 도와주는 길밖에 없다. 독일과 프랑스가 나서서 기금을 만들고 파산위험국을 살려낼 도리밖에 없었다. 대신에 구제금융을 다는 나라엔 가혹한 긴축정책이 요구되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GDP 대비 재정적자 추이 /위키피디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GDP 대비 재정적자 추이 /위키피디아

 

2008년 이전에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재정을 꾸려갔다. 위기 이전에 세 나라의 국가부채 비중(GDP 대비)은 유럽 평균에서 아래를 밑돌았다.

스페인은 EU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건실한 거시경제정책을 유지했고, 은행들을 모범적으로 감독했다. 그럼에도 부동산 붐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1996년에서 2007년 사이에 스페인의 주택가격이 세배나 뛰었다. 20052분기에 스페인 가계의 모기지 채권은 6,510역 유로에 달해 1년전보다 20%나 증가했다. 정부도 주택보급을 장려했다. 은행들은 40년 상환 모기지 채권을 팔았다. 독일과 프랑스의 은행들도 스페인 은행들이 파는 모기지 채권을 샀다. 유럽 북부의 풍부한 유동성이 유럽통합의 이점을 노려 스페인으로 흘러 들어갔다.

하지만 미국발 서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스페인의 주택가격 거품도 동시에 가라앉았고 은행들은 부실의 늪에 빠졌다. 은행들은 차입이 막혀 파산위기에 놓였고, 결국 정부가 구제금융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포르투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고, 이탈리아도 비교적 덜했지만 여건은 비슷했다.

 

스페인의 주택가격 추이 /위키피디아
스페인의 주택가격 추이 /위키피디아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건이 터지고, 유럽의 은행들도 파산 위기에 처했다. 유럽의 재무장관들은 EU 차원의 공동기금을 마련해서 은행들을 구제하자고 했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반대했다. 각국이 자기 정부의 돈으로 은행을 구제하자는 것이 독일의 논리였다. 메르켈의 논리는 일면 타당성이 있었다. 독일의 은행 부실규모가 스페인보다는 적었다. 독일 납세자의 돈으로 스페인 국민의 주택 빚을 갚아줄 필요는 없었다. 공동통화를 사용하고 동일한 금리를 채택하면서도 국가별로 재정을 따로 관리한 것이 유럽 재정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포르투갈 정부는 재정에서 돈을 풀어 은행 파산을 막았다. 그리스와는 별도로 세 나라도 GDP대비 재정적자의 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붕괴되었다. 유럽연합의 시스템은 균열을 일으켰다.

 

유럽 정부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위키피디아
유럽 정부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위키피디아

 

아일랜드의 경우 켈트 타이거’(Celtic Tiger)라 불리며 1995~2000년 사이에 7.8~11.5%, 이어 2000~2007년 사이에 4.4~6.5%의 급격한 성장을 달성했다. 아일랜드인들은 지배자였던 영국을 제치고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인텔, 델컴퓨터, 페이팔, IBM, 페이스북, 이베이, 어도비 등 미국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아일랜드에 유럽본사를 차렸다. 독일 은행들은 아일랜드에 믿고 돈을 빌려주었다.

아일랜드에도 주택붐이 일어났다. 2000~2006년 사이에 주택가격은 두배로 뛰었다. 그러나 2007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이 터지면서 아일랜드의 주택붐도 꺼졌다. 주택 시장 붕괴는 무제한 집담보 대출을 해주던 은행들에게 직격탄을 던졌다. 3개월짜리 단기외채에 의존하던 은행들이 도산의 위기에 빠졌다. 리먼브러더스 사건이 터지자 아일랜드 정부는 은행 부채를 국가가 전액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무제한 채권을 발행해 6개 은행에 신규자금을 투입했다.

부동산 거품붕괴가 은행 부실로 이어졌고, 결국은 정부의 부담으로 돌아갔다. 2010년 아일랜드 정부의 재정적자는 GDP 대비 30%로 치솟았다. 아일랜드 정부는 마침내 IMF에 손을 내밀었다.

 

2009년말 그리스 정부의 재정 고백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는 외적으로는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비롯되었고, 내적으로는 유럽국가들이 부실은행을 구제하는 가운데 확대되었다. EU의 구조적 불완전성이 드러나 시스템 위기를 초래했다.

그리스의 재정적자 비율이 GDP12.7배나 된다는 놀라운 뉴스는 과도한 부채국에 대한 기피현상을 가속화했다. 부채가 많은 나라의 채권 수익률은 급격하게 상승했고, 은행들은 대출을 회수했다. 이자율이 오르더라도 대출이 가능하면 부도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20104월에 그리스 정부의 국채발행이 불가능해 졌다. 신용평가기관 S&P는 잽싸게 그리스의 국가신용을 정크본드(BB+) 등급으로 낮췄다. 돈 구하는 길은 막혔고, 결국은 EU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길 밖에 없었다.

 

2011년 5월 25일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그리스의 시위 /위키피디아
2011년 5월 25일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그리스의 시위 /위키피디아

 

그리스의 파판드레우 정부는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앞서 2010년 상반기에 세 차례에 걸쳐 자구노력을 단행했다.

2월에는 파판드레우 정부는 공무원 봉급 동결, 보너스 10% 삭감, 공공근로자의 초과노동수당 삭감을 통해 8억 유로를 절감한다고 발표했다. 이 정도 긴축에 채권은행들이 코웃음을 치자, 3월에 48억 유로의 2차 예산절감 패키지를 내놓았다. 여기에는 크리스마스, 부활절, 여름휴가 보너스를 30% 삭감하고 공공 보너스의 12%를 추가로 줄이며, 부가가치세를 올리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EUIMF는 이 것으로 모자란다며 더 강력한 긴축프로그램을 요구했다. 그리스 정부는 EUIMF1,100억 유로의 대출을 요구하면서 3차 긴축방안을 제시했다. 이 긴축방안은 파격적이었다. 여기에는 공공기관의 수를 6,000개에서 2,000개로 줄이고, 공공부문 급여를 8% 삭감하며, 3,000유로 이상의 고액월급자를 없애며, 공공청사를 1,000개에서 400개로 줄인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게다가 13월과 14월의 봉급을 월 500유로로 제한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정부 예산을 줄이기 위해 어쩔수 없는 조치였다. 하지만 이 조치에 그리스인들은 분노했다. 그들은 파판드레우 정부의 긴축정책에 항의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참고자료>

Wikipedia, Thirteenth salary

Wikipedia, European debt crisis

The Balance, Eurozone Debt Crisis: Causes, Cures, and Consequences

Wikipedia, 20082014 Spanish financial crisis

Wikipedia, European debt crisis contagion

Wikipedia, Post-2008 Irish economic downturn

Wikipedia, Greek government-debt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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