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④…흔들리는 공동통화
유럽 재정위기④…흔들리는 공동통화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2.13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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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 해체론 부상…메르켈-사르코지 콤비의 의지로 통합 유지

 

유럽 재정위기가 진행되는 과정에 경제학계에서는 유럽연합(EU)과 유로화의 유지 여부가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유로는 실패한 실험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경제학자들은 유럽의 채무국이 과도한 긴축재정을 피하기 위해서는 유로존에서 탈퇴해 환율정책을 운용함으로써 위기를 탈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은 그리스와 아일랜드 구제금융이 실패하면 독일이 유로존에서 탈퇴해 마르크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독일이 유로존에서 떨어져 나가고 베네룩스 3국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새로운 통화동맹을 맺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유로 해체론을 제기한 학자와 언론들이 주로 미국계와 영국계였다. 이런 정황들이 쌓이면서 유럽 재정위기 배후에 앵글로색슨족가 있다는 음모론이 나왔다. 그리스, 스페인, 프랑스 등의 언론들은 미국과 영국이 자신들의 경제위기를 다른 곳으로 분산하고, 유로를 붕괴시키기 위해 루머를 퍼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혹자는 미국이 달러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유로를 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음모론에 대해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과 영국의 트레이더들이 남유럽 공공부채를 지나치게 부풀리고 유로가 깨질 가능성을 우려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 재정위기가 일반적인 시장 패닉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유로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제국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었다. 1차대전 이전의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게르만족이 헝가리, 보헤미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트란실바니아, 갈라치아를 지배하는 제국이었다. 미국의 보수정치평론가 로스 다우섯(Ross Douthat)은 독일이 유럽의 정치, 경제를 쥐고 흔든다고 평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로존의 단일통화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메르켈 총리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수시로 만나 유로존의 유지를 결의했다. 두 정상은 우리는 유로존을 해체하지 않을 것이며, EU의 존속을 위해 유로화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을 맞췄다. 두 리더는 여러 차례 동일한 메시지를 시장에 던졌다. 그들은 :유로화가 깨질 것이라는 가설은 유럽통합의 의지를 잘못 읽은 것이라고 유로 와해 가능성을 일축했다.

 

유럽 각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중 /위키피디아
유럽 각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중 /위키피디아

 

가장 먼저 EU에서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높은 나라는 그리스였다. 그리스의 EU 탈퇴(Grexit)는 그리스가 선택할 옵션이었다. 그리스가 탈퇴하면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이 줄줄이 탈퇴하고 유로 해체론자들의 주장대로 갈 우려가 팽배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리스의 파판드레우 총리는 유로를 탈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메르켈은 유럽통합을 지지하면서도 독일 혼자서 돈을 내놓는 것은 거부했다. 메르켈은 사르코지의 동의를 얻어 유로존 국가들이 일정비율로 자금을 갹출해 구제금융을 조성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 구상에서 만들어진 임시조직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European Financial Stability Facility)이다. 할당 비율은 독일 27.1%, 프랑스 20.4%, 이탈리아 17.9%, 스페인 11.9% 등으로 각국 경제력에 비례해 정했다. 영국은 유로존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201059일 발족한 EFSF의 첫 구제금융은 그리스로 갔다. EU는 여기에 IMF와 유럽중앙은행(ECB)의 자금을 합쳐 그리스에 1,1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처음으로 방출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간 구제금융은 2018년까지 모두 5,4405,000만 유로였고, 받은 나라는 8개국이다. 전체 금액중 IMF 1,049억 유로를 빼면 80% 정도가 유럽에서 조달된 자금이다.

이중 그리스가 받은 구제금융 액수는 세 차례에 걸쳐 모두 3,019억 유로로, 전체의 절반 이상인 55.5%를 차지했다. 유럽 재정위기의 핵심은 그리스였고, 그리스로 시작해 그리스로 끝났다.

다음으로 포르투갈 768억 유로, 아일랜드 682억 유로, 스페인 413억 유로를 받았다. 비유로존 국가로 루마니아가 2325,000만 유로, 헝가리 156억 유로, 라트비아 45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각각 받았는데, 세 나라는 유로존 기금이 아닌, IMF와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았다. 이탈리아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구제금융을 받지 않고 위기를 극복했다. 지중해 동쪽의 섬나라 키프러스도 125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유럽중앙은행(ECB)도 가세했다. ECB는 그리스 사태가 터지자 곧바로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각국 정부채와 회사채를 무제한 사들였다. 2012년까지 ECB가 매입한 채권은 2,195억 유로에 달했다. ECB는 또 미국 연준(Fed)와 통화스와프를 활용했다. 유로화가 급격하게 평가절하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ECB는 나아가 정크본드의 신용도로 떨어진 그리스 국채를 지급보증해 줬다.

 

유럽 각국의 경상수지 추이(1998~2014) /위키피디아
유럽 각국의 경상수지 추이(1998~2014) /위키피디아

 

유럽 재정위기는 결국 독일과 프랑스가 구제금융의 절반 가까이를 마련해 지원함으로써 방향을 틀었다. 공동의 재무부는 없었지만, 중앙은행이 있었다는 것도 절반의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공짜 점심은 없었다. 독일과 프랑스는 구제금융을 그냥 주지는 않았다. EU는 독일과 프랑스의 입장을 대변해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에 긴축정책을 요구했다. 긴축정책은 정부의 예산을 삭감해 적자재정을 흑자로 돌리는 것이다. 예산삭감은 복지비용을 축소했고, 공무원 수를 줄였다. 은행에서도 인력을 줄였고, 도산한 기업에서도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위기 이전에 완전고용 상태를 이루었던 스페인은 실업률이 36%로 치솟았다. 일자리를 희망하는 사람의 3분의1 이상이 실업자로 전락한 것이다. 복지비용이 줄었기 때문에 실업수당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스는 더 심각했다. 위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GDP25% 감소하고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에 추월하는 시련을 맞았다. 식량과 의료가 부족하고 인간의 삶이 파괴되었다. 세금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포르투갈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빚을 갚기 위해 긴축재정을 할 수밖에 없는 채무국들에선 정권퇴진 시위가 격화되었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네덜란드 등 유럽 여러나라에서 정권이 바뀌었다. 정권이 바뀐들 상환조건만 조금 부드러워졌을 뿐, 부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2011년 5월 긴축재정을 반대하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시위 /위키피디아
2011년 5월 긴축재정을 반대하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시위 /위키피디아

 

그리스를 비롯해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에선 유로를 포기하고 예전의 통화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한 나라도 유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유로 탈퇴를 주장하던 세력도 정권을 잡은 후엔 EU회원국의 메리트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았다.

메르켈-사르코지 콤비는 EU 시스템의 결함을 보완하는 작업에 나섰다. 공동통화 실험 10년 사이에 확인된 문제는 재정준칙을 위반한 나라에 대한 규제가 없고, 공동의 재무부가 없다는 점이었다.

EU는 미국이 주도하는 IMF와 비슷한 유럽통화기금(European Monetary Fund)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2012년에 유럽안정화기구(ESM, European Stability Mechanism)을 설립했다. 이 기구는 그동안 일시적으로 운영한 EFSFEFSM을 통합해 상설화한 조직이다. EU는 또 미국 재무부채권(TB)에 해당하는 유로본드를 발행했다. 유로본드는 유로 회원국들이 지급보증했다.

 

EU는 재정 정책을 통합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공동 재무부를 설립하는 방안은 주권침해를 우려하는 회원국들의 반발을 고려해 재정준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리되었다.

201112월에 EU위원회는 재정적자가 GDP3%를 넘거나 국가부채가 GDP60%를 넘는 회원국에 대해 벌금을 물리는 내용을 비롯, 각종 귬융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유렵재정협약(European Fiscal Compact)을 통과시켰다. 이 협약은 각국 의회의 비준을 받도록 했다. EU 회원국은 영국을 제외하고 모두 의회의 비준을 얻었다.

20131월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는 새 협약에 따른 규제에서 런던 금융중심지 시티(City of London)를 제외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영국의 주장이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영국이 EU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참고자료>

Wikipedia, European debt crisis

Wikipedia, Greek government-debt crisis

Wikipedia, European Stability Mechanism

한국재정정보원, [KPFIS 인사이트] 유럽연합(EU)의 재정준칙_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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