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⑤…주도권 강화하는 독일
유럽 재정위기⑤…주도권 강화하는 독일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2.14 15: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EU 통합의 최대 수혜자에서 구제자로…독일식 재정원칙의 유럽화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2000년대초, 독일은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라는 별명을 얻고 있었다. 실업률은 높고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성장률이 낮았다. 갓 통일한 옛 동독 지역이 경제를 끌어 내렸다.

그러던 독일은 EU 통합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다. 그리스가 파산 위기에 몰리고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 이른바 PIGS 나라들의 국가부채로 유럽이 휘청거리던 2010년에 독일은 3.6%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유럽 통합 10년만에 독일은 통일 과정의 성장정체를 해소하고 유럽에서 가장 강한 경제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EU통합의 수혜국은 독일만이 아니었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핀란드도 경상수지 흑자를 내며 성장했다. 핀란드를 제외하면 과거 신성로마제국의 영지였던 나라들이 대체로 경제통합의 이익을 얻었다.

그 이유는 공동통화 유로에 있었다. 독일 경제는 10여년전 마르크를 쓸 때보다 평가절하된 유로를 썼기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효과를 얻었다. 독일제 상품 가격이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졌고, 수출경쟁력이 높아졌다.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비해 유럽의 남부국가들의 상품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잃었다. 그리스는 드라크마(drachma)가 폐기된 이후 상대적으로 고평가된 유로를 통용했다. 그리스의 임금은 상승했다. 같은 제품을 전제로, 그리스 상품은 독일 상품에 비해 경쟁력을 잃었다. 그리스 뿐 아니라 유럽 남부인들은 값비싼 자국 상품 대신에 값싼 독일상품을 쓰게 되었다.

대신에 남부 국가들은 저금리의 이점을 누렸다. 그리스는 드라크마를 쓸 때 금리가 8%대였는데, 유로를 사용하면서 독일과 똑같은 싼 이자로 돈을 쓸수 있게 되었다. 북부의 은행들은 남부지역에 대출을 늘리게 되었다.

 

자료=ResearchGate
자료=ResearchGate

 

2010년 유럽 재정위기가 확대되면서 독일 수혜론이 불거졌다. 독일이 유로통합의 이득을 보았으므로 재정이 어려운 나라를 구제하기 위해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Martin Wolf), 프랑스 재무장관 크리스틴 리가르드(Christine Lagarde)는 공동통화 사용 이래로 독일의 임금이 절제되면서 수출경쟁력을 갖고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논리는 독일로 인해 유럽의 불균형이 파생되었고, 주변국가에 경상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남유럽 재정위기는 독일이 이웃 나라의 부를 빨아 당겼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이른바 근린궁핍화(beggar-thy-neighbor) 이론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런 비판에 대해 독일 경제학자 한스-베르너 진(Hans-Werner Sinn)은 독일의 자본이 남부 국가로 흘러들어가는 바람에 독일의 투자율이 낮아졌고, 그 결과로 독일의 성장률이 이탈리아보다 낮아졌다고 반박했다. 이에 마틴 울프는 독일의 저성장은 국내수요의 저하, 강한 규제, 국제화의 결과일뿐 유로의 탓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오히려 남쪽으로 흐른 자금은 소비와 주택붐을 일으켜 투자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EU 구제금융 비율 /위키피디아
EU 구제금융 비율 /위키피디아

 

독일 수혜론은 독일 책임론으로 전환되었다. 유럽의 시선은 독일 정부의 입장에 쏠렸다. EU의 의회 격인 유럽위원회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그리스 사태를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2010년초 그리스가 국가파산 위기에 몰리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 정부가 책임질 일이라며 구제금융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분명히 했다. 독일의 유권자들은 내가 낸 세금으로 아테네 정부를 구해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통합 초기에 EU 내 독일의 위상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EU 통합은 유럽과 세계의 패권을 노리는 프랑스에 의해 주도되었고, 영국 보수당은 프랑스의 패권주의에 거부감을 느껴 가입에 미온적이었다. 1, 2차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은 프랑스의 헤게머니를 인정하는 정도였다.

위기가 닥쳐오자 프랑스는 주도권을 놓고 슬그머니 독일에 책임을 떠맡겼다. 메르켈 총리는 마지 못해 그리스를 구제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전환했다. 독일 내에서는 그리스를 구제할 필요가 있느냐는 논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Handelsblatt)메르켈이 그리스 포커에서 승리할수 있을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은 국내법에 따라 독일 정부가 직접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제공할수 없으므로, 여러나라가 갹출해 EU를 통해 지원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2010년 메르켈의 그리스 구제방침에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 대통령과 프랑스 출신의 장 클로드 트리세(Jean-Claude Trichet) ECB 총재가 동의했다. 구제금융에 독일의 몫은 27%, 프랑스 20%, 이탈리아 18%, 스페인 12% 등으로 규정했다.

메르켈은 구제금융 기금 조성에 IMF를 끼워 넣을 것을 요구했다. 사르코지와 트리세는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사르코지는 미국이 주도권을 갖는 IMF가 참여하는 것을 꺼렸지만 메르켈은 위험 분산이란 측면에서 IMF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사르코지는 메르켈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메르켈과 사르코지의 합의는 다른 14개 회원국의 동의를 쉽게 얻어냈다. 이후 주요 현안마다 메르켈과 사르코지가 먼저 의견을 절충해 합의하고, 그 합의안이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유럽 재정위기에서 두 정상의 콤비를 메르코지’(Merkozy)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그리스 위기에서 독일 메르켈 총리와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의 역할을 풍자한 삽화. (Matthias Laurenz Gräff, 2015) /위키피디아
그리스 위기에서 독일 메르켈 총리와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의 역할을 풍자한 삽화. (Matthias Laurenz Gräff, 2015) /위키피디아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는 엄격한 긴축재정이 요구되었다. 그 요구는 재정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독일식 기준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스나 스페인, 포르투갈은 구제금융으로 국가 부채만 털어 내고 떨어내고 예산은 그대로 쓰고 싶어했다. 경제학자들은 예산삭감이 실업률을 증가시켜 경제를 더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06월 토론토 G20 정상회의에서 경기부양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독일을 압박했다.

하지만 메르켈은 독일 연방의 긴축재정 정책을 고집했다. EU의 구제금융에는 독일의 논라가 적용되었다. 채무국에는 돈을 받기 전에 연간 단위로 이행스케줄을 포함해 긴축계획을 제출하도록 요구되었다.

채무국의 예산감축은 당장 복지혜택 축소와 일자리 감소로 나타났다. 복지 수혜자들은 반발했다. 그리스인들은 2차 대전에서 나치가 저지른 만행을 떠올리며 독일을 규탄했다. 그리스 칼럼니스트들은 독일인의 피에 고트족, 훈족의 인자가 남아 있다고 힐난하고, 히틀러, 나치주의, 3제국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며 독일에 비난을 퍼부었다. 과격한 그리스인들은 인민투사그룹(Popular Fighters Group)을 조직해 독일 대사관이나 독일 기업의 지사를 공격했다.

 

단위 노동비용 추이 /위키피디아
단위 노동비용 추이 /위키피디아

 

메르켈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메르켈은 독일 국민과 EU 시민이 낸 돈으로 구제금융을 받는 나라에서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메르켈은 유럽의 재정개혁에 착수했다. 재정개혁은 사르코지가 주장하던 바였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벌칙조항을 가미하고,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의 규모를 제한하는 내용의 유럽재정준칙(European Fiscal Compact)이다.

메르켈은 2012년 사르코지가 물러나고 프랑수아 올랑드(Francois Hollande)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프랑스와의 유대를 유지했다.

2010~2015년 유럽 재정위기에서 와해될 것으로 우려되었던 EU가 더 강화된 경제공동체로 다시 태어난다. 그 배경에는 EU의 주도국인 독일과 프랑스의 강력한 뒷받침이 있었고, 그 중심에 메르켈의 지도력이 있었음은 부인할수 없다.

 


<참고자료>

ResearchGate, The 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 Is Germany to Blame?

Wikipedia, Anti-German sentiment

EuVisions, Germany’s leadership role in the Eurozone revisited: past and present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