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⑥…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유럽 재정위기⑥…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0.12.1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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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극좌파정권도 채권단에 굴복… 마지막까지 정치적, 경제적 혼란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라는 악당이 있다. 자기 집에 들어온 손님을 침대에 눕히고 참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나 머리를 자르고, 작으면 사지를 잡아 늘여 죽였다. 그도 테세우스에게 같은 방식으로 죽었다.

유럽의 채권국들이 파산위기에 놓은 그리스 정부에 요구한 것은 프로크루스테스의 방식이었다. 채권자들은 구제금융을 주는 조건으로 GDP 대비 12%를 넘는 그리스의 국가부채 규모를 유럽의 기준인 GDP3%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그리스는 머리도 자르고 다리도 잘라야 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묘사한 그림 (John Tenniel, 1891) /위키피디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묘사한 그림 (John Tenniel, 1891) /위키피디아

 

2010년에 불거진 유럽 재정위기는 EU의 구제금융으로 2013~2014년에 회복 기미를 보였다. 아일랜드는 20127월에 국제시장에서 50억 유로의 장기채 발행에 성공했고, 201312월에 IMFEU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졸업했다. 포르투갈도 201210월에 채권을 발행했고 20145월에 구제금융의 올가미에서 탈출했다. 스페인은 실업률이 27%까지 치솟는 고통을 겪으면서 20141월에 채권자들의 손에서 벗어났다. 이탈리아는 구제금융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자구노력으로 부채위기를 벗어났다.

 

하지만 그리스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했다. 그리스의 국가부채 비율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보다 월등히 높았다. EUIMF, ECB의 트로이카가 요구하는 구조조정의 강도도 더 컸다. 인위적으로 키를 줄이기 위해 불요불급한 예산을 일거에 잘라야 했다.

공공지출을 줄이고 은행 적자를 결손처리하는 과정에서 공공과 민간 부문에서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11만여개의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률은 20087.5%에서 201223.1%로 치솟았다. 청년실업률은 54.9%로 두 명중 한 명꼴로 직장을 구하지 못횄다.

GDP 성장률은 2008년부터 마이너스를 기록해 2013년까지 위기 이전보다 25%나 가라앉았다. GDP가 축소되면서 부채비율이 더 높아졌다. 2014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177%로 아프리카 짐바브웨 수준이 되었다. 1인당 소득은 위기 이전에 22,000 유로에서 2014년에 17,000 유로로 4분의1이 줄어들었다. 이에 비해 세금은 늘어나 부가세율이 23%로 유럽에서 가장 높았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20%가 매일 먹는 식량을 살 돈이 부족했다. 개인파산자가 늘어 20122월 기준으로 홈리스가 2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홈리스들에게 줄 복지기금도 예산에서 삭제되었다.

나라의 빚을 갚고 은행 채무를 떨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적 삶마저 파괴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리스인들 사이에 구제금융이 뭐길래,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시위를 해도 소용없었다. 파판드레우 좌파 정권도 구제금융의 올가미에 매어 긴축정책만 요구할 뿐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정권을 바꾸는 길밖에 없었다. 돈을 갚지 못하겠다, 배 째라고 덤벼드는 정당에 그리스인들은 호감을 가졌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인물이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의 시리자 정권이다.

 

국민투표 직전인 2015년 7월 3일 긴축정책 반대를 외치는 아테네 시민들 /위키피디아
국민투표 직전인 2015년 7월 3일 긴축정책 반대를 외치는 아테네 시민들 /위키피디아

 

시리자(SYRIZA)는 급진좌파 동맹의 약자로 2004년에 결성되어 그해 총선에 전체 300석 중 6석을 얻어 소수정당으로 출발했다. 시리자는 2007년 총선에서 14석을 얻어 우파 신민주당(ND)과 좌파 PASOK로 구성된 양당체제의 틈새를 파고 들었고, 2010년 금융위기가 불어닥치면서 급격하게 세를 불렸다. 20125월 첫 총선에서 12석으로 의석수를 잃었으나, 다음달 또다시 실시된 총선에서 52석으로 제2당으로 올라섰다.

치프라스는 20149월 긴축정책 파기를 골자로 하는 테살로니키 프로그램(Thessaloniki Programme)을 제시했다. 이 공약 덕분에 2015125일 총선에서 시리자는 300석 중 149석을 얻어 집권당이 되었고, 치프라스는 그리스 역사상 최연소인 41세의 나이에 총리가 되었다.

급진좌파 시리자의 집권은 1930년 대공황기에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극우파 집권과 비교된다. 1930년대 독일에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채권국에게 전쟁배상금 압박을 받는 가운데 대공황을 맞아 극우파가 집권했다. 그리스에서도 독일을 중심으로 한 채권국의 긴축압박이 요구되고, 극심한 불황이 진행되는 가운데 극좌파 정권이 출범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다. 그리스는 다른 방향의 극단을 선택했고, 치프라스 신임총리는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로 지목되었다.

치프라스는 아테네에서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고교 시절에 시위 농성을 주동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대학시절에 공산당 청년모임에 가입하며 급진 좌파활동을 하다가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9년 시리자 당수로 취임하고 6년만에 총리에 올랐다.

 

2015년 3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위키피디아
2015년 3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위키피디아

 

집권에 성공한 치프라스는 국가파산을 선언하고 유로존에서 탈퇴하느냐, 유로존에 남아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더 강한 긴축정책을 채택하느냐의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는 긴축정책 포기를 내걸고 당선되었지만, 당선후에 일단 국가파산을 막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치프라스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에게 세금을 더 늘리는 내용의 긴축정책을 제시했고, 독일과 프랑스, EU 지도부가 이를 조건으로 3차 구제금융을 약속했다. 젋은 진보의 상징이었던 치프라스는 결국 국가 파산과 대량 실업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국내에서 그는 강한 반발에 부딛쳤다. EU가 요구하는 긴축정책을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깨고 EU 지도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는 것이다. 치프라스의 지지자들은 잃을 게 없다. 디폴트도 감수하자고 연일 시위를 벌였다. 지지자들은 배신감을 느꼈고, 일부 의원들은 긴축입법 처리를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치프라스는 이때의 상황을 그리스 신화의 스킬라와 카리브디스의 사이’(between Scylla and Charybdis)라고 표현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전쟁이 끝난후 귀향하다가 좁은 해협에 이르렀는데, 양쪽에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라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쪽 괴물을 피하니, 다른쪽에 또다른 괴물이 기다리고, 저쪽을 피하니 이쪽에서 괴물이 덤벼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스 10년물 국채 금리 추이 /위키피디아
그리스 10년물 국채 금리 추이 /위키피디아

 

치프라스는 이번엔 국내 여론을 받아들였다. 그는 채권 만기를 일단 6월말로 연기하고 긴축정책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총리가 국제적 합의와 국내 반발 사이에 오락가락하던 사이에 2015630일 그리스는 선진국으로는 처음으로 IMF 대출금을 갚지 못한 나라로 기록되었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해 옛 화폐인 드라크마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환율정책을 복원해 경상수지를 극복하면 허리를 졸라매는 긴축정책을 피할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EU에 가입하지 않은 아이슬란드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에서 크로나 퐁가절하로 상황을 반전시켰고, 캐나다도 자국 달러를 절하하면서 위기에서 탈출한 사례를 들었다.

그리스가 사실상 국가파산을 선언한 가운데 75일 긴축정책 수용여부에 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국민투표에서 박빙을 보일 것이란 예상을 깨고 반대가 61%로 찬성이 39%로 나왔다. 치프라스는 '반대가 클수록 정부의 협상력을 높여 채권단으로부터 더 좋은 합의안을 끌어낼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번엔 치프라스가 또 국민투표를 뒤엎는 정치공작을 단행했다. '3차 구제금융' 지원의 조건으로 채권단에 제출한 개혁안을 의회에 제출한 것이다. 그리스 의회는 치프라스 정부의 긴축안을 승인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의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못마땅해 했다. 메르켈은 그리스에게 유로존을 탈퇴하려면 하라고 했다. 하지만 EU는 미운 오리새끼에게 3차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그리스가 탈퇴할 경우 유로존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고, 다른 측면에서 그리스가 러시아와 연대할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를 병합하고 동부지역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스 극좌파들이 러시아에 붙으면 서방의 흑해 방어망이 뚫리고 동유럽이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미국이 조용히 유럽 리더국들에게 그리스 문제의 타협을 종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리스는 2018621일에 채권은행단과 협상을 통해 966억 유로에 대한 만기를 10년간 늘리고 그 사이에 분할 상환하는 조건에 합의했다. 이를 통해 그해 820일에 구제금융 프로그램에서 졸업했다. 20193월에는 국제시장에서 10년물 국채를 발행하는데 성공했다. EU가 만든 국가채무의 틀을 맞추기 위해 그리스는 10년 가까이 진통을 겪은 것이다.

 


<참고자료>

LA Times, How ancient Greek mythology can explain Greece’s modern-day debt crisis

CFA Institute, The Greek Financial Crisis (20092016)

Wikipedia, Greek government-debt crisis

Wikipedia, 2015 Greek bailout referend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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