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철도전쟁②…청일전쟁의 과실, 동청철도
동북아 철도전쟁②…청일전쟁의 과실, 동청철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2.2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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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후 동청철도와 남만주철도 부설권 획득…만주 지배 의도

 

중국에서 최초의 오송철도(吳淞鐵道)가 뜯겨나갈 무렵인 1870년대 중반, 러시아에선 시베리아 철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시베리아 철도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연기되다가 1886년 차르의 동의를 얻어내고, 1891년 마침내 착공식이 거행되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철도 건설은 다목적이었다. 유럽지역 농민들을 시베리아로 이주시켜 정착케 하고, 청나라와 국경분쟁을 벌이던 극동아시아에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크림전쟁(1853~1856)에 패한 이후 영국과 오스만투르크의 동맹으로 남하정책이 저지됨에 따라 러시아는 시베리아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러시아는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와 교역을 확대하고, 영국과의 대치전선을 확대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특히 1885년 영국의 거문도 점령, 일본의 군사력 확대는 러시아로 하여금 극동지역으로 군사력 투입을 신속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 수단이 철도였다.

 

 

클라우드 킨더 /위키피디아
클라우드 킨더 /위키피디아

 

시베리아철도 공사가 진행되면서 청나라가 긴장했다. 철도에 대한 거부감에 사로잡혀 있던 청나라 조정에선 이홍장(李鴻章), 좌종당(左宗棠), 장지동(張之洞)등 양무파(洋務派)들이 철도 부설을 주장했고, 권력실세 서태후도 이를 받아들였다.

청 조정은 러시아의 시베리아철도 건설에 자극받아 심양(瀋陽), 길림(吉林)을 거쳐 훈춘(琿春)에 이르는 노선의 건설을 추진하게 되었고, 1890년 영국인 엔지니어 클라우드 킨더(Claude W. Kinder)를 고용해 철도건설계획을 수립했다.

관동철도(關東鐵道)로 불리는 이 노선은 1892년에 착공해 허베이성 탕산(唐山)에서 출발해 산해관(山海關)을 조금 지나서까지 건설되다가 청일전쟁을 맞아 공사가 중단되었다.

 

청일전쟁(1894~1895)동아시아의 패권을 바꿔 놓았다. 중화주의에 취해 있던 청국 지도부는 한때 조공국이었던 일본에 패배했다는 사실에 패닉에 빠졌다. 오랑캐는 오랑캐로 제압한다는 중국 특유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 상책으로 떠올랐다. 일본의 침략의도를 저지하기 위해선 한때 적이었던 러시아와 화친해야 한다는 상소가 연이어 올라왔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에 요동반도를 떼줄 것을 요구했고, 중국은 1895417일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에서 이를 인정했다. 이에 러시아는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의 요동반도 할양을 무산시키게 된다. 이른바 삼국간섭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러시아는 요동반도와 뤼순(旅顺)을 돌려 받게 해준 댓가로 만주를 통과하는 철도 부설을 중국에 요구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철도는 극동지역에서 멀리 돌아 블라디보스톡에 연결된다. 만주를 통과하면 노선이 단축되고 운행시간도 줄어든다. 시베리아철도는 유럽쪽과 극동쪽 양방향에서 건설되고 있었다. 중간중간에 이미 깔려 있는 철도를 연결하면서 대역사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많은 숙련, 비숙련 자유노동자와 시베리아 유형 죄수들이 가혹한 조건에서 건설공사에 내몰렸다. 청일전쟁 무렵에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한 철도는 아무르 강변을 따라 하바로프스크를 근접했고, 유럽에서 출발한 철도는 이르쿠츠크를 지나 바이칼호로 향해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동청철도 구간 /위키피디아
동청철도 구간 /위키피디아

 

청나라의 서태후와 이홍장은 러시아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일본에 호되게 당한 이후여서 그들은 러시아만이 우군이 될수 있다고 믿었다. 러시아는 일본이 재침할 경우에 대비해 빠른 속도로 군대를 투입할수 있도록 만주를 관통하는 동청철도(東淸鐵道)를 부설하도록 허락할 것을 요구했다.

러시아 재상 세르게이 비테(Sergei Yulievich Vitte)는 이홍장에게 청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우리가 블라디보스톡에 군대를 파견했으나, 철도가 미비해 행동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군대가 길림에 도착했을 때 전쟁이 이미 끝나버렸다면서 동청철도 부설의 당위성을 강변했다. 하지만 비테의 주장은 거짓말이었다. 청일전쟁 당시 시베리아철도는 바이칼호에 이르지 못했고, 러시아는 당시 극동에서 군사행동을 자제하고 있었다.

삼국간섭 직후 청국과 러시아 사이에 밀사들이 오가며 동맹체결이 협의되고 있었다. 청나라는 러시아의 군사적 지원을 필요로 했고, 러시아는 동청철도 권리를 얻으려 했다.

다급한 건 청나라였다. 청나라는 청일전쟁 기간에 이미 4,000여만 량()의 외채를 짊어지고 있었고 전쟁 후에 전쟁배상금 2억량에다 요동반도 반환금 3,000만량의 채무를 지고 있었다. 당시 청나라의 연간 세수는 8,000만량에 불과했다. 청은 빚을 얻어 배상금을 갚을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이 돈을 러시아가 해결해 주었다.

차관에는 꼬리가 달려 있었다. 러시아는 4억 프랑(1억량)의 차관을 빌려 주면서 동청철도 부설권을 요구했다. 러시아는 동청철도를 허용하지 않으면 원조가 불가능하다고 겁박했다. 돈에 쪼들린 중국은 동청철도를 내주는 게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1896522일 이홍장과 비테 사이에 청러 비밀협정을 체결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철도의 지름길인 동청철도 부설권을 챙겼다. 아울러 일본이 중국과 조선, 극동러시아를 침략할 경우 양국이 군대를 파견해 상호 지원하기로 했다. 일본을 적국으로 하는 상호방위동맹이었다.

이 비밀협정에는 러시아 함대가 전시에 청나라의 모든 항구를 사용할수 있으며, 평시에도 동청철도를 이용해 러시아군의 수송과 보급을 할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또 철도 연변 30리 이내에서 광산 등에 대한 러시아의 독점적 권리가 인정되었다. 러시아는 사실상 중국 내부에 가늘고 긴 영토를 소유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동청철도와 남만주철도 구간 /위키피디아
동청철도와 남만주철도 구간 /위키피디아

 

러시아의 동청철도 권리 확보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러시아가 장래에 중국을 병탄해 나갈 것을 우려하면서 조선의 동향을 신경을 곧두 세웠다. 앞서 고종은 민비 시해 이후 신변 위협을 느껴 러시아 대사관으로 파천했다. 극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이 노골화되어 갔다.

독일도 삼국간섭의 댓가를 요구했다. 독일은 189711월 선교사 살해를 명분으로 교주만( 膠州灣)의 칭다오(青島)를 점령했다. 앞서 독일은 러시아에 칭다오를 점령할 경우 개입할 것인지를 타진했는데, 러시아는 요동반도에만 관심이 있다며 독일의 군사행동을 양해했다. 제국주의 국가 간 영토 나눠먹기가 행해진 것이다.

이런 내막을 모른채 청나라는 러시아에 군함을 파견해 독일의 행동을 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외무장관 마하일 무라비예프(Mikhai Muravyov)는 이 기회에 요동반도 남단에 있는 뤼순(旅順)과 다렌(大連)을 점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상 비테는 반대했지만 차르 니콜라이 2세는 강경파에 손을 들어주었다. 황제의 명령에 러시아군은 18971212일 뤼순과 다렌을 점령했다. 그리곤 뤼순항을 포트 아서(Port Arthur)라고 명명했다.

 

하얼빈 역 /위키피디아
하얼빈 역 /위키피디아

 

러시아군은 뤼순과 다렌에서 철수하지 않았다. 중국의 입장에선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인 셈이 되었다. 러시아는 뤼순과 다렌을 25년간 조차하고, 동청철도와 뤼순항을 연결하는 지선의 부설을 허락하도록 요구했다.

청나라는 무기력했다. 결국 청은 뤼순과 다렌의 25년 조차를 허용하고, 남만주철도의 부설권도 넘겨주었다. 이 철도가 남만주철도(南滿洲鐵道).

남만주철도는 동청철도의 하얼빈에서 출발해 다렌만까지 연결하는 철도다. 두 철도가 만나는 하얼빈은 이때부터 근대도시로 변모하게 된다.

이로써 러시아는 뤼순에 관동성을 설치하고 총독을 파견한다. 러시아는 만주를 영토화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고, 이를 지켜보던 일본은 시베리아철도가 완공되기 전에 러시아를 제압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참고자료>

Wikipedia, Chinese Eastern Railway

김지환, 철도를 통해 세력을 확장한 러시아, 2014, 학고방

진시원, 동북아시아 철도건설과 지역국가관계의 변화, 2008, 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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