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철도전쟁③…시베리아철도와 러일전쟁
동북아 철도전쟁③…시베리아철도와 러일전쟁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2.2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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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철도개통 전에 전쟁 서둘러…전쟁 중 러시아 철도 정상작동 못해

 

19세기에 철도가 등장한 이후 유럽 제국주의는 철도를 앞세워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영국은 인도에 철도를 깔아 내륙 지배를 완수했고, 아프리카에서 유럽열강들은 경쟁적으로 철도를 놓았다. 러시아의 시베리아철도도 미개척지를 개발한다는 명분에다 극동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러시아 재무장관 세르게이 비테(Sergei Witte)는 철도야말로 중국을 평화적으로 정복하는 수단이라고 간파했다.

시베리아철도는 나중에 재상(총리)에 오르는 비테와 황태자 니콜라이(Nikolai)의 합작품이었다.

18913월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 3세는 시베리아 철도 건설책임자로 황태자를 임명했다. 황태자는 재위에 오르기 전인 1890~1891년 제위에 세계일주에 나섰다. 그는 오스만투르크, 그리스, 인도, 싱가포르, 중국을 거쳐 일본에 들렀다. 일본에서 암살 위험을 겪기도 했지만 블라디보스톡에 무사히 도착해 육로로 시베리아를 횡단했다. 그가 다닌 거리는 해로로 22,000km, 육로로 15,000km였다. 지구를 반 바퀴 돈 그는 극동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시베리아 철도 건설을 서두를 필요성을 절감했다.

니콜라이는 블라디보스톡에서 극동지역을 기점로 하는 시베리아철도 착공식을 개최했다. 그는 시베리아를 여행하면서 황량한 대지에 차르의 열차’(tsar's train)가 주파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어 189411월 알렉산드르 3세가 사망하고 황태자가 니콜라이 2세 차르에 오르면서 시베리아 철도는 본궤도에 오르게 된다.

 

시베리아횡단철도 구간 /위키피디아
시베리아횡단철도 구간 /위키피디아

 

러시아가 시베리아철도 건설을 본격화하자 일본이 긴장했다. 초대 총리와 육군상을 지낸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는 청일전쟁 직후인 1895년에 시베리아철도가 수년 내에 개통되면,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눈 앞에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시베리아 철도건설에 대항하기 위해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종단철도를 건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902년 일본참모본부는 극동 러시아군에 대한 군사작전을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러시아군의 수송로인 시베리아철도와 동청철도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당시 보고서에는 동청철도가 러시아 극동동맥이며, 일본의 작전 목표는 동청철도를 파괴하고 뤼순과 다렌만을 괴멸시키고, 북진해 하얼빈을 점령해 동서교통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일본으로선 시베리아철도 완공이 재앙이 될 것임을 인지했다. 철도가 완공되기 전에 러시아와 승부를 겨뤄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시베리아철도 건설공사 /위키피디아
시베리아철도 건설공사 /위키피디아

 

시베리아철도 공사의 실질적 책임자는 재무장관 비테였다. 비테는 프랑스에서 차관을 얻어 철도공사 자금으로 활용했다.

공사는 6개 공구로 나누어 1891년에 착공했다. 그 중 1~4공구가 착공 5년만에 완공되어 첼라야빈스키에서 바이칼호까지 열차가 운행되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바이칼호까지 철도도 중간중간 이어졌다.

문제는 바이칼호였다. 바이칼호 구간은 최대의 난공사였다. 호수 주변의 산세가 험악해 철로를 깔기 어려웠다. 공학자들은 바이칼호에 배를 띄워 열차를 이동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카페리의 형식의 트레인 페리(train ferry)가 만들어졌다. 페리는 영국에서 부품이 만들어져 이송되어 현지에서 조립되었다. 2척의 트레인 페리가 건조되었는데 바이칼호(SS Baikal)와 앙가라호(SS Angara). 바이칼호는 겨울에 얼어붙은 바이칼호를 깨고 운항할수 있도록 쇄빙선으로 만들어졌고, 기관차 1대에 열차 24대를 실었다. 앙가라호는 소형선이었다. 이들 배는 하루에 두 번 열차를 싣고 바이칼호를 건넜다. 바이칼호를 연결하는 트레인 페리가 1899년 건조를 마치고 투입되었다.

두 번째로 어려운 공사는 아무르강 구간이었다. 이 일대는 추운 겨울에 영하 60도까지 내려가는데다 홍수가 자주 발생해 큰 진척이 없었다. 러시아로선 아무르 구간을 대체할 노선이 필요했다. 러시아는 청일 전쟁 후 맺은 청러 밀약에 의해 만주를 관통하는 동청철도(東淸鐵道)를 건설해 블라디보스톡까지 연결하게 된다.

중국은 동청철도 구간에 표준궤(1,435mm)를 채택하기를 원했지만 러시아는 자국 궤간인 광계(1,520mm)를 깔았다. 동청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삼림과 광산의 개발권과 공사인력에 대한 치외법권을 인정받았다. 러시아는 동청철도 안전을 위해 경비대 주둔도 허가받았다.

이렇게 해서 시베리아 철도는 1904년에 형식적이나마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개통했다.

 

바이칼호에서 트레인 페리로 열차를 수송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바이칼호에서 트레인 페리로 열차를 수송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일본은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완공되기 직전에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190424일 일본은 어전회의에서 러시아와의 전쟁을 결정하고 2월 중순에 12개 사단을 인천에 상륙시켰다. 동시에 함대를 요동반도 뤼순으로 출발시켰고, 9일에 뤼순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일본은 시베리아 철도의 수송능력에 대해 과대 평가했다. 일본 참모본부는 시베리아철도를 통해 러시아군이 하루 16편 운항할 것으로 판단하고 최대 27개 사단이 이동해 올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이제 막 건설을 끝낸 시베리아철도는 차량과 경험 있는 기관사가 부족했다. 상당수의 궤도에서 무거운 대포의 무게를 지탱할 상태는 아니었다. 궤도가 단선이었고 대피선과 급수장이 부족했다.

가장 큰 혼란은 바이칼호에서 발생했다. 호수로 인해 끊어진 구간은 트레인 페리로 호수를 건넜는데, 연락선들은 하루 4회밖에 운항하지 못했다. 게다가 잦은 안개와 기관고장으로 정상적인 운행이 이뤄지지 못했다.

게다가 전쟁이 발발한 2월엔 바이칼호가 얼어붙어 있었다. 호수위에 레일을 부설해 기관차가 다녔으나 얼음이 녹을 때는 대책이 없었다. 게다가 단선철도였기 때문에 병력 이동 등 급한 인적·물적 수송이 있을 경우 마주보는 운행되는 열차는 며칠씩 기다려야 했다. 겨울철에는 철로 주변에 폭설이 내려 눈을 치우며 지나가야 했다.

당시 일본군은 바이칼호 남단에 철도가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시베리아철도는 일본군이 판단한 것과 달리 하루 3회의 군용열차밖에 통과시키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러시아의 군수공장은 대부분 우랄산맥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군수품을 극동으로 이동시키는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이제 막 개설한 시베리아철도는 부실했고, 군수물자의 보급의 어려움은 러시아 패전에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은 개전 직후에 동청철도의 지선인 남만주철도의 철로를 뜯어내고 일본철도 궤간인 협궤(1,067mm)로 새로 깔았다. 러시아군이 남만주철도를 이용하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일본군이 러시아가 만들어놓은 철로를 이용하게 되었다. 190473일 일본은 다렌에서 안산(鞍山)까지 협궤를 부설했다.

 

시베리아철도를 달리는 화물열차 /위키피디아
시베리아철도를 달리는 화물열차 /위키피디아

 

러시아가 패전한 후 19058월 미국 동부 포트머스에서 정전협상이 진행되었다. 일본은 동청철도 가운데 남만주철도 전체를 달라고 요구했고, 러시아 대표로 나온 비테는 창투~다렌의 일부 구간만을 할양하겠다고 했다. 결국 창춘(長春)을 경계로 한 남만지선이 일본에게 넘어갔다.

러일 전쟁 이후 만주지역은 러시아의 동청철도와 일본의 신설 철도와의 경쟁으로 전환된다. 이후 일본과 러시아의 철도경쟁은 만주를 지배하기 위한 경쟁으로 전환된다.

전후 러시아는 동청철도를 빼앗길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러시아 영토를 지나는 아무르철도 완공을 서둘렀다. 아무르~하바로프스키~블라디보스톡의 구간에는 많은 죄수들이 강제로 투입되었고, 그들은 중장비 없이 맨몸으로 노동을 했다. 이 공사에는 10만명의 노동자가 15년 동안 투입되었다. 1916년 하바로프스크의 아무르철교가 준공됨으로써 아무르철도가 완공되고, 러시아 영토를 지나는 시베리아횡단철도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참고자료>

Wikipedia, Nicholas II of Russia

Wikipedia, Trans-Siberian Railway

Wikipedia, Train ferry

안병민, 러일전쟁과 시베리아횡단철도, 그리고 일본, 2008, 리북

윤영미, 시베리아횡단철도-건설배경과 과정 및 개발정책, 2008, 리북

김지환, 철도로 보는 중국역사, 2014, 학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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