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①…알렉산더가 약탈한 페르시아 금
인플레이션①…알렉산더가 약탈한 페르시아 금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01.02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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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상 첫 인플레이션…막대한 금 유통, 사후 20년간 물가 폭등

 

BC 331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군대는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를 함락했다. 병사들의 약탈은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졌다. 남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여자들은 침략자의 노리개가 되었다. 궁궐은 불탔다. 마케도니아의 병사들은 야수처럼 날뛰었다. 알렉산더는 이 약탈과 학살을 묵인했다. 100년전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공한데 대한 복수를 마음껏 자행했다.

이때 알렉산더 군은 페르세폴리스 궁전에서 18만 탤런트(talent)의 금화를 전리품으로 획득했다. 대부분 금괴 형태였고, 금화와 은화도 있었다. 무게로 3,000톤이나 되었다고 한다.

 

마케도니아 군의 페르세폴리스 약탈 /위키피디아
마케도니아 군의 페르세폴리스 약탈 /위키피디아

 

알렉산더가 아시아를 침공하기 전인 BC 336, 마케도니아의 국고에는 700만 탤런트의 금을 보유했고, 국가부채는 1,300만 탤런트에 이르렀다. 그리스의 조그마한 나라가 아시아의 강대국을 공략하면서 어머어마한 양의 금을 획득한 것이다. 알렉산더가 다음 도시를 공격하러 이동하면서 금화를 가져갔는데, 전리품을 수송하는데 나귀 15,000 마리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 금화를 어떻게 처분하는지 여부였다. 마케도니아의 재정담당자들이 모여 약탈로 얻은 금의 처분을 논의했다. 당시 재정담당자들은 이 금을 주화로 만들어 유통시키면 엄청난 물가 상승을 유발한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획득한 금 가운데 조금만 녹여 주화로 만들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당대 최고의 철학자들에게서 천문과 지리, 철학을 배웠지만 당시 경제학은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대왕은 재정담당자들의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전쟁 비용 이외에는 통화를 주조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본국의 시민들은 아우성이었다. 그 많은 금을 얻어 왜 나눠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알렉산더 대왕 모자이크(이탈리아 폼페이) /위키피디아
알렉산더 대왕 모자이크(이탈리아 폼페이) /위키피디아

 

문제는 알렉산더 대왕이 그 뒤 전쟁비용을 흥청망청 썼다는 것이었다. 마케도니아 군은 페르시아를 정복한 이후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공격했는데 군사비를 물 쓰듯 썼다. 군인들의 사기를 고양시키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곳간지기들도 인플레이션이란 개념이 없었다. 불요불급한 곳에 돈을 마구 써댔고, 일부 그 금을 횡령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다가 약탈한 금의 상당수가 소비되었다. 그런 소식에 불만을 품은 본국 시민들은 빨리 금을 가져오라고 목청을 돋우었다. 알렉산더도 그런 불만을 이해해 금을 마케도니아로 보냈다.

알렉산더는 나름 통화를 조절한다고 했지만 국가든 개인이든 공짜 돈이 생기면 아껴 쓰지 않는다. 페르시아의 엄청난 부가 통화로 흘러들어가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을 무렵에 5만 탤런트의 금화가 유통되었는데, 대부분 페르세폴리스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공격로와 점령지 /위키피디아
알렉산더 대왕의 공격로와 점령지 /위키피디아

 

BC 323년 바빌론으로 돌아가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에 알렉산더는 말라리아에 걸려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알렉산더는 20살의 젊은 나이에 왕이 되어 25세에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대제국을 형성한 군주다. 그의 군사적 천재성과 용맹은 후대에 길이 남는다.

하지만 그가 얻은 페르시아의 금은 인류 역사상 첫 하이퍼인플리이션(hyper inflation)을 유발시켰다. 그가 죽은 후 4명의 장군들이 나라를 분할하면서 서로 그 금을 흥청망청 써댔다. 장군들은 그 돈으로 군대를 양성해 각자의 영토 확대에 사용했다. 조국인 보리와 밀, 향료의 가격이 폭등했다. 가난한 시민들은 돈이 있어도 식량을 구하지 못했고, 고통을 겪어야 했다.

 

고대 바빌론의 보리가격 추이 /MIT Economics
고대 바빌론의 보리가격 추이 /MIT Economics

 

고대 중동의 중심지는 현재 이라크의 바빌론(Babylon)이었다. 바빌론의 서기들은 점토판에 천체의 기록과 물가동향을 낱낱이 기록했다.

미국 MIT의 피터 테민(Peter Temin) 교수가 고대 바빌론의 기록물 가운데 물가과 관련 있는 3,000 점을 분석해 BC 464~72년 사이의 물가를 비교, 분석했다. 피터 테민의 조사에서 알렉산더 대왕 사후 20년 동안 바빌론의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플레이션이 역사에 기록되기는 처음이다..

 


<참고자료>

Independent, How Alexander caused a great Babylon inflation

MIT Economics, Price Behavior in Ancient Babylon

Nature, Ancient traders suffered boom and bust

맥스 사피로, 인플레로 돈버는 사람들, 1991, 도서출판 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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