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②…네로, 재정 메우려 통화 변조
인플레이션②…네로, 재정 메우려 통화 변조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01.0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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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상시적 통화 확대…네로 시기에 첫 통화절하, 시장교란

 

고대 로마제국은 인플레이션으로 시작해서 인플레이션으로 끝났다. 숱하게 치르는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통치자의 허영을 위해, 제국의 재건을 위해 돈이 풀려 나갔다. 로마제국이 인플레이션에 의해 멸망했다는 분석도 있을 정도다.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 통치기(BC 27~AD 14)에 전쟁으로 얻은 노획물과 각지에서 들어오는 공물이 로마로 흘러 넘쳤다. 로마의 상점에는 이집트산 장식타일과 그리스산 호두, 누비아산 흑단, 달마치아산 도자가, 갈리아산 섬유, 중국산 비단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값비싸고 진귀한 상품들은 일반 시민들이 접근조차 못했고, 귀족들의 향유물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제국의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제국의 전역에 가도가 포장되고, 항만시설과 다리, 수도(水道)가 건설되었다. 수많은 원형경기장과 광장이 수리되고, 85개 사원이 새로 건축되었다. 그는 벽돌로 만들어진 로마를 대리석으로 재구성했다. 카이사르 사원, 아그리파 목욕탕, 아우구스투스 포룸, 발부스 극장, 판테온 신전을 조성했다.

평민들은 이러한 건축물 조성에 동원되었다. 평민의 급료는 오르지 않았다. 노예가 충분히 공급되었기 때문에 평민들은 상시 실업예비군으로 전락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재건 사업의 비용 조달을 위해 통화를 한껏 공급했다. 초대황제는 집권 초기 20년 동안에 금화를 80번이나 발행했다. 통화를 찍어내기 위해 프랑스와 스페인에 있는 광산은 하루 24시간 풀가동되었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에 대한 통계는 없다. 다만 여러 유물과 유적지를 관찰할 때 그의 초기 재위 10년 동안에 화폐발행량이 과거에 비해 10배 이상 되었다는 추산이 나온다.

화폐 발행 증가는 고대에도 인플레이션을 자극했다. BC 27년에서 BC 6년 사이, 즉 아우구스투스 재위 초기에 주곡인 밀과 돼지고기 가격이 두 배 오른 것으로 추산된다. 같은 기간에 이자율은 12%에서 4%로 떨어졌다. 통화 완화 정책이 낳은 결과다.

아우구스투스는 통화 팽창이 물가를 자극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BC 6년 이후 화폐발행을 억제했다. 그 후 물가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었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 포룸 /위키피디아
아우구스투스 포룸 /위키피디아

 

아우구스투스의 후임인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는 통화발행에 소극적이었다. 티베리우스 시기에 화폐발행 규모는 전임자의 10%도 되지 않았다. 티베리우스는 후반부에 카프리(Capri) 섬에 은둔해 있었기 때문에 황실 금고가 넘쳐 났다. 그가 죽을 때(AD 37), 황실 금고에는 7억 데나리우스(denarius)나 축적되어 있었다. 이는 전임 아우구스투스가 남긴 2,000만 데나리우스의 30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티베리우스에 이어 칼리굴라(Caligula, 37~41), 클라우디우스(Claudius, 41~54), 네로(Nero, 54~68)의 악명 높은 황제들이 제위를 이어받았다. 세 황제는 미친 듯이 재정을 갉아 먹었다.

칼리굴라는 자신이 최고의 신 유피테르(Jupiter)와 동급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국고를 탕진하고 재정을 파탄시켰다. 칼리굴라는 재위 2년만에 티베리우스가 남긴 국고를 소진해 버렸다.

국고가 비자 그는 부유한 귀족들에게 죄를 조작해 그들의 재산을 몰수했다. 그것도 모자라 화폐를 주조했는데, 그 양이 티베리우스 시기의 8배에 이르렀다.

티베리우스는 한 연극에 참석했다가 최측근 근위대장 카이레아(Cassius Chaerea)에 의해 살해되었다. 근위대는 칼리굴라의 삼촌인 클라우디우스를 차기 황제로 추대했다.

 

클라우디우스의 낭비벽은 칼리굴라보다 더 했다. 클라디우스는 자신을 황제에 올려준 친위대에 아낌 없이 선물을 주었다. 로마 빈민들에게 식량 배급을 두배로 늘리고, 토목사업을 일으켰다.

그도 전임 칼리굴라의 방법을 재활용했다. 귀족들을 공격해 재산을 빼앗았다. 그의 재위 기간에 원로원 의원 35명을 포함해 금융인, 세금징수원 등 300명 이상이 주살되었다. 그들의 재산은 국고로 환수되었다. 그도 역시 새로운 통화를 발행했다. 그는 결국 독살되었다.

 

네로 황제가 새겨진 동전 /위키피디아
네로 황제가 새겨진 동전 /위키피디아

 

클라우디우스 사후에 그 유명한 네로가 5대 황제에 오른다. 네로의 정신병은 즉위 5년차에 도졌다. 그는 자신을 황제로 만들어준 어머니 아그리피나(Agrippina)를 살해한 이후 그 죄악을 감추기 위한 듯 재정을 물쓰듯이 썼다. 은으로 만든 자신의 동상을 제국의 여러 도시에 설립하고 시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경기장, 목욕탕을 건설하는데 돈을 지출했다. 황제는 친구들에게 8억 대니라의 선물을 했다고 한다. 그 돈은 로마 재정을 8년간 버틸 액수였다.

그는 정신병자처럼 세금을 걷었다. 당대 기록에 의하면, 네로는 세금을 걷고 또 걷자, 아무도 아무 것을 갖지 못하도록 하자고 떠들었다고 한다. 모든 음식물에 세금을 물리고 송사에 걸린 액수에 40분의1을 세금으로 걷고, 짐꾼에게는 벌이의 8분의1, 매춘부에겐 화대를 몰수했다.

네로는 세금 징수를 업자에게 맡겼다. 세금징수업자들에게 세수 목표를 입찰에 붙여 높은 액수를 써 넣은 사람이 낙찰하게 했다. 징수업자들이 목표를 넘게 징수할 경우 잉여분은 업자의 이익으로 가져가도록 했다. 이런 제도는 당연히 가혹한 세금징수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여러 도시에서 세금 저항이 발생했다.

 

네로 황제 재위기의 로마 화재 (Hubert Robert) /위키피디아
네로 황제 재위기의 로마 화재 (Hubert Robert) /위키피디아

 

세금으로도 재정을 메우지 못하자, 네로는 통화 변조에 손을 댔다. 이른바 통화절하(debasement). 명분은 대화재로 소실된 로마를 재건하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제국의 통화는 금과 은에 불순물을 섞지 않고 본래의 무게와 크기를 유지했다. 돈의 재료로 사용된 귀금속 그 자체가 가치를 지녔다. 네로가 통화 가치에 손을 댄 것이다.

당시 금 1파운드로 41개의 금화 아우레우스(Aureus)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서기 64년 네로는 1파운드로 45개의 아우레우스를 만들도록 했다. 은화 데나리우스(Denarius)12% 가벼워졌다.

명목상 통화가격과 실질적 가치 사이에 차이가 발생했다. 새 통화는 기존의 통화보다 가치는 떨어졌는데 동등한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영리한 시민들은 이 사실을 알고 새 주화를 재래 주화에 비해 할인해 유통했다. 금값은 올라갔다. 은화에는 구리를 섞었기 때문에 금화보다 가치 하락이 심했다. 금화는 12% 하락한데 비해 은화는 25% 절하되었다.

통화유통에 교란이 발생하자 네로는 기존에 유통되는 모든 주회를 회수해서 새로운 통화로 주조하라고 명령했다. 사람들은 기존의 통화를 감추고 은행에 맡겨둔 경우 돈을 되찾았다. 옛 통화는 장롱 속으로 숨어 버렸고, 일부 사람들은 헌 돈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도망가 버렸다. 이른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 나타난 것이다.

네로는 친위대를 풀어 부잣집을 수색케 하고 재래 통화를 몰수했다. 네로는 재산을 뺏긴 사람들에게서 원성을 사게 되었다.

 

새 통화는 광범위하게 사용되지 못했다. 세금징수용으로 사용되었을 뿐 구매력을 증대시키지 못했다. 네로의 화폐 절하는 황제에 대한 신뢰와 영향력을 급격하게 떨어뜨렸다. 그는 재위 후반기에 기독교도를 무참하게 살해하고 의심증이 번지면서 친구들을 처형했다.

갈리아의 총독 줄리우스 빈덱스(Gaius Julius Vindex)와 스페인 총독 갈바(Galba)가 반란을 일으켰다. 두 반군이 로마로 진군하자 원로원은 네로를 폐위시켰다. 네로는 자살함으로써 자신의 광기를 멈추었다.

 


<참고도서>

Wikipedia, Nero

맥스 샤피로, 인플레로 돈버는 사람들, 1991, 도서출판 한울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7-악명높은 황제들, 1998,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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