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를 촉발한 이집트 신정권, 유대인 탄압
출애굽기를 촉발한 이집트 신정권, 유대인 탄압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1.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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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소스 정권 추방하고 신정권 등장…새 수도 건설에 유대인 노역

 

많은 고고학자들이 출애굽기(Book of Exodus)의 역사적 증거를 찾으려고 이집트 땅을 헤맸다. 발굴자들은 나일강 하류에서 시나이 반도에 이르기까지 곳곳을 파헤쳤지만 이스라엘족의 대규모 이동을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 고센(Goshen), 비돔(Pithom), 라암셋(Pi-Ramesses) 등 출애굽기에 거론된 지명들은 위치가 어디인지도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집트에서 발굴되는 여러 유물에서 유대인의 출애급기를 언급하는 것도 없다. 다만 오늘날 전해지는 것은 성경의 내용만 존재할 뿐이다.

고고학과 역사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성경의 출애굽기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다수 이론은 고고학적 증거와 역사적 기록이 없지만 출애굽기의 서술이 유대인의 역사에 실재한 사실이 아니겠느냐 하는 막연한 생각이다. 또다른 주장은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을 떠나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바빌론 유수) 조상들의 신화를 창조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분명한 것은 출애급기 서술 모두를 사실로 믿는 사람은 극히 소수라는 사실이다.

 

람세스와 비돔의 위치(추정) /위키피디아
람세스와 비돔의 위치(추정) /위키피디아

 

어떤 주장에 근거하든 성경의 출애굽기는 역사적 사실과 연결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 근거들을 토대로 접근해볼 수밖에 없다.

성경을 토대로 설명하면, 야곱과 그의 아들, 가족들이 이집트 땅에 와 산지 400년이 넘었다. 요셉을 총리로 발탁했던 이집트에도 정권교체가 있었다. 출애굽기에는 세월이 지나서,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들과 그 시대에 사람들은 다 죽었다. 요셉이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다.”고 쓰여 있다. (출애굽기 1:6~8)

이집트 역사에서 힉소스(Hyksos) 왕조가 남쪽의 테베(Thebes) 왕조의 공격을 받고 가나안으로 쫓겨간 시기와 맞물려 있다고 본다. BC 16세기에 이집트 중부의 세력들은 군대를 이끌고 힉소스 왕조를 공격했다. 힉소스는 수도 아바리스(Avaris)를 내준 후 가나안으로 도망쳤다.

고센 지역에 머물던 유대인들은 이집트의 내란과 정권교체를 불안하게 지켜보았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준 힉소스를 따라 가나안으로 가지 않았다. 이미 그들도 400년 이상 나일강 하류에서 정착생활을 했기 때문에 쉽게 이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새로운 정권이 자기네들을 어떻게 대우해 줄 것을 지켜 보았다.

유대인이 살던 고센의 정확한 위치가 확정짓기 어렵지만 나일강 하류 삼각주였음은 분명했다. 힉소스의 파라오는 야곱의 후손들에게 가장 좋은 곳에서 거주지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는데(창세기 47:6), 그 땅이 고센이었다. 이집트 파피루스에 적혀 있는 글에서 고센을 설명하기를, “물은 고기로 넘치고 하늘에는 새들이 가득차네, 목초지에는 탐스러운 풀이 자라고 들판의 과일은 꿀맛이지, 이곳에 살수 있는 이들은 모두 기뻐하네라고 쓰여 있다. 유대인들은 이집트 땅에서도 알짜배기 땅에 살면서 힉소스 왕조를 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역에 동원된 이스라엘 후손들 (Edward Poynter, 1867) /위키피디아
노역에 동원된 이스라엘 후손들 (Edward Poynter, 1867) /위키피디아

 

유대인들의 기대와 달리, 힉소스를 쫓아낸 이집트의 토착세력들은 유대인들을 전왕조의 부역자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집트의 신왕조는 유대인들을 탄압하는 명분을 이렇게 제시했다. “이 백성 곧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수도 많고 힘도 강하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신중히 대처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수가 더억 불어날 것이고, 도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날에는 그들이 우리의 원수들과 합세하여 우리를 치고, 이 땅에서 떠날 것이다.”

신왕조는 이스라엘 조손들을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는 일터로 끌고 나갔고, 그들의 노역을 감독할 공사감독관을 두어 그들의 노역을 감시케 했다.

람세스(라암셋)는 카이로에서 북쪽 112km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왕조는 람세스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는데 유대인들을 노동력으로 활용키로 작정한 것이다. 비돔은 람세스의 인근에 있는 제2의 도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가들은 이스라엘 후손들을 수도건설의 노역에 동원한 파라오를 람세스 2세 또는 람세스 3세로 추정한다. 파라오들은 자신의 이름을 본딴 수도를 건설한 것이다.

이 때 이스라엘 족을 이끌 신화적 지도자가 등장하는데, 그가 모세(Moses).

 

람세스 2세 석상의 발 /위키피디아
람세스 2세 석상의 발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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