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인플레②…쓰레기 취급 당한 헝가리 펭괴
현대 인플레②…쓰레기 취급 당한 헝가리 펭괴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01.1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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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말기 친나치 정부가 세수 확보 위해 지폐 남발…물물교환 시대로

 

돈 있는 자가 대중들 앞에 돈을 뿌리며 허세를 부리는 장면이 종종 영화에 등장한다. 그런데 길거리에 돈이 낙엽처럼 쌓여 있어도 아무도 줍지 않고 청소부가 쓰레기 치우듯 쓸어담는 실제의 사진도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1946년 헝가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돈 값이 종이값 이하로 떨어져 쓰레기로 취급된 것이다. 그 통화가 헝가리의 펭괴(pengő).

인류 역사에 최고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기록한 통화가 1945~1946년 헝가리 펭괴다. 이후 2008년에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지만, 헝가리의 수준을 넘진 못했다.

돈의 양을 셀 때 억, , 경을 세면 감각이 사라진다. 조 다음의 단계가 해()라는 단위다. ‘0’이 무려 20(1x1020)를 써야 한다. 헝가리에선 해 단위의 지폐가 발행될 정도로 통화가 남발되었다.

 

길거리에 떨어진 헝가리 펭괴 지폐를 청소하고 있는 모습 /Daily News Hungary
길거리에 떨어진 헝가리 펭괴 지폐를 청소하고 있는 모습 /Daily News Hungary

 

헝가리의 인플레이션을 이해하려면 이 나라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1차 대전 이전까지 헝가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소속되어 있었다. 헝가리는 독자적인 의회와 총리를 두었지만 오스트리아 황제의 지배하에 있었다. 일종의 국가연합 상태에서 자치권을 갖는 나라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차 대전에서 패한후 트리아농 조약(Treaty of Trianon)에 의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로 분리되었다.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카를 4세를 국왕으로 옹립해 입헌군주제를 채택했으나, 국왕은 합스부르크가의 부활을 우려하는 연합국의 거부로 국내에 들어오지 못했다. 대신에 해군제독 출신인 미클로시 호르티(Miklós Horthy)가 섭정을 맡아 통치하는 국왕이 없는 왕국의 특이한 체제를 유지했다.

헝가리는 패전국으로 간주되어 국토의 3분의2를 잃었고, 승전국에 전쟁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제국이 무너지면서 수출대상국도 잃었다. 세원이 크게 준 상태에서 정부는 세입의 두배나 되는 지출을 메우기 위해 코로나(korona) 지폐를 발행해 재정을 메웠다. 인플레이션을 통해 세수를 메우는 이른바 인플레이션 과세(inflation tax)를 시행한 것이다.

1차 대전 직후에 발생한 인플레이션은 국제연맹에서 25,000만 골드 크라운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빠르게 안정되었다. 덕분에 1924~1925년 사이에 재정은 균형을 잡았고, 경제는 회복했다. 헝가리 분지에서 생산되는 밀은 안정적으로 수출되었다.

이에 힘입어 헝가리 정부는 1925년 코로나 통화를 폐기하고 펭괴(pengő)를 도입했다. 1펭괴는 12,500 코로나로 교환되어 유통되었고, 1kg에 대해 3,800 펭괴를 고정시켰다. 펭괴는 당시 유럽에서 상당히 안정된 통화로 인정받았다.

1929년 국제밀 가격이 폭락하며 헝가리 경제가 기우뚱하더니 곧이어 미국발 대공황의 여파가 밀려왔다. 정부는 또다시 지폐를 발행해 세수 부족분을 메웠고, 금에 대한 펭괴의 가치는 절반으로 떨어졌다. 대공황기의 위기는 1937년대에 극복되었고, 이후 경제는 다시 기력을 회복했다.

 

1차 대전 후 헝가리의 분할 /위키피디아
1차 대전 후 헝가리의 분할 /위키피디아

 

문제는 2차 세계대전이었다.

헝가리는 1차와 2차 대전 사이에 경제를 회복시키는 과정에서 이웃 독일과의 경제 교류를 활성화했다. 내륙국이라는 지정학적 한계로 인해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독일과의 교역이 경제에 치명적으로 중요했다. 섭정 호르티는 아돌프 히틀러와 교섭을 통해 독일에 밀을 수출하고 생활필수품을 사들였다. 독일과의 경제적 종속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2차 대전이 벌어진 후 헝가리는 독일의 편에 섰다.

섭정 호르티는 전쟁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히틀러는 헝가리가 군대를 동원해줄 것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할 때 헝가리는 일부 병력을 지원하기도 했으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이 패배한 이후 헝가리군은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연합국과 비밀 협상을 벌였다. 작은 나라가 취할 태도이긴 했지만, 히틀러는 헝가리의 이런 이중적 태도를 보아 넘기지 않았다.

19443월 히틀러는 나치군에 헝가리 국경을 넘으라고 명령했다. 나치는 헝가리를 접수하고 호르티를 가택에 연금시키고 친나치 정부를 수립했다. 이에 섭정 호르티는 8월에 친나치 정부를 전복하고 반나치 정권을 세웠다.

19449월 소련군이 헝가리 국경을 넘어왔다. 호르티는 소련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선언했지만, 군대는 호르티의 명령을 거부하고 소련군과 전투를 계속했다. 히틀러는 군대를 동원해 친나치 정부를 구성했다. 친나치와 반나치 정부가 서로 적법 정부라고 주장했다. 헝가리가 반으로 쪼개져 친나치와 반나치로 싸우는 동안에 소련군과 나치군은 부다페스트에서 대회전을 벌였다. 19452월 부다페스트는 소련군에 함락되고 반나치 인사들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1해 펭괴 지폐 /위키피디아
1해 펭괴 지폐 /위키피디아

 

2차 대전 막바지 1년 동안 헝가리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다. 통화발행권은 친나치 정부가 가지고 있었다. 나치의 앞잡이 되메 스토여이(Döme Sztójay) 총리는 발행권을 남발했다. 국토는 파괴되고 반쪽은 소련군에 점령되어 있는 상태에서 나치정부는 약탈적 세수정책을 취했으니, 바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이었다.

1944년초반까지 지폐의 가장 큰 단위는 1,000 펭괴였다. 1945년말에는 1,000만 펭괴 화폐가 나왔고, 1946년 중반엔 1() 짜리 지폐가 나왔다. 020개 붙는 숫자다. 숫자를 읽기 힘들어 100만 펭괴는 밀펭괴(milpengő, million pengő)라 했고, 1조 팽괴는 빌펭괴(bilpengő, one trillion pengő)라고 불렀다.

 

펭괴 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는 모습 /Daily News Hungary
펭괴 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는 모습 /Daily News Hungary

 

산업시설이 40% 이상 파괴되었고, 철도를 비롯해 운반시설은 마비가 되었다. 수도 부다페스트엔 물자가 극심하게 부족했다. 1945년초 빵 1kg6팽괴였다. 그해 5월에 같은 양의 빵은 800만 팽괴로 올랐고, 다음달엔 585,000만 팽괴로 뛰었다.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다. 도시인들은 농촌으로 가서 코트와 부츠, 도자기를 주고 밀을 구해와야 했다.

 

1천만 아도펭괴(1946) /위키피디아
1천만 아도펭괴(1946) /위키피디아

 

2차 대전이 끝나고 헝가리에 소련이 후원하는 인민정부가 수립되었다. 새 정부는 19461월에 세금을 걷는 단위로 아도펭괴(adópengő)를 도입했다. 아도펭괴의 교환비율은 정부가 정했는데, 매일 아침 방송에 발표되었다. 1946111아도펭괴는 1펭괴로 출발했으나, 그해 72x1021(20)로 폭락했다.

인플레이션은 19467월에 정점에 이르렀는데, 물가상승률은 1,3x1016%였고, 이 무렵 가격은 15.5시간에 두배나 뛰었다고 한다.

 

헝가리 인민정부는 194681일에 화페개혁을 단행해 포린트(forint)라는 통화단위를 도입했다. 교환비율은 400,000,000,000,000,000,000,000,000,000(4×1029) 펭괴가 1포린트였다. 이 숫자를 우리식으로 읽으려면 40()이고, 영어로는 400옥틸리언(octillion)이다.

헝가리 정부는 또 신통화 포린트를 금으로 태환하는 조건을 법제화했다. 1g13.31 포린트를 고정시켰다. 이후 헝가리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수습하게 된다.

헝가리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안정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일단 전쟁이 끝나 생산이 회복되었다. 농업 생산이 늘고 제조업에서 생활필수품이 공급되었다. 물자 부족으로 인한 인플레 요소는 제거되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으로 이익을 보려는 세력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헝가리의 새 정부는 세수로 재정을 충당하는 원론으로 돌아갔다.

 


<참고자료>

Peter Z. Grossman, The Dynamics of the Hungarian Hyperinflflation, 1945-6: A New Perspective

Daily News Hungary, When one bread cost 5.85 billion pengő the Hungarian hyperinflation

Wikipedia, Hungarian pengő

Wikipedia, Hungarian interwar economy

Wikipedia, Hungary in World War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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