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의 만행…동남아 점령지에서 지폐 남발
일본군의 만행…동남아 점령지에서 지폐 남발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1.01.1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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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인플레⑤…전쟁 비용 조달 위해 현지서 발행, 인플레이션 유발

 

일본군이 2차 대전에서 저지른 만행 가운데 점령지에서 저지른 지폐 남발도 포함된다.

194111월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을 공급하고 동시에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공격했다. 그들은 이를 대동아전쟁이라고 했다.

일본군은 필리핀, 말레이시아(싱가포르 포함), 인도네시아, 버마(미얀마), 태평양 군도를 점령하고, 그곳에서 금과 외국환, 현지화폐 등 쓸만한 경화(hard currency)를 몰수했다. 그 돈으로 군인들의 식량과 무기 조달에 사용했다.

그리고는 점령지에 새 통화를 발행했다. 필리핀에서는 페소, 말레시아에서는 달러, 인도네시아에선 굴덴, 버마에서는 루피, 오세아니아에선 파운드의 명칭이 붙은 현지 지폐를 발행해 현지에서 각각 통용했다. 이들 통화는 일본어로 대동아전쟁군표(大東亜戦争軍票)라 했다. 서구에서는 일본군이 동남아에서 발행한 군표를 일본 달러(Japanese Dollar)라 부른다.

 

버마(미얀마) 랑군에서 연합군 사진사가 일본이 찍어낸 군표를 줍고 있다. /위키피디아
버마(미얀마) 랑군에서 연합군 사진사가 일본이 찍어낸 군표를 줍고 있다. /위키피디아

 

일본군의 군표 발행은 청일전쟁(1894~1895)부터 시작되었다. 군부가 현지에서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군표를 발행했는데, 러시아 혁명기의 시베리아 출병 시에도 군표를 발행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정부는 군표를 정화로 교환해주었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 이후부터는 현지 군표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군이 동남아 점령지에서 발행한 군표는 일본 화폐는 물론 금으로 교환되지 않고, 현지에서만 통용되는 지폐였다.

 

일본은 동남아 점령지를 통치하기 위해 남방개발금고(南方開発金庫)를 설립했다. 본국에서 다방면의 전쟁비용을 지원할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현지 주둔군은 남방개발금고를 통해 현지 지폐를 발행해 전쟁 비용을 치렀다. 연합국의 반격으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남방개발금고의 지폐 발행량도 폭주했다. 1942년 발행량이 47,000만이었으나, 19453월에 130억으로 늘어났다.

초기에 일부 동전을 발행했지만 전쟁물자가 궁핍해 지면서 일본은 금속화폐를 발행하지 않고 지폐만 찍어 냈다. 지폐 표면엔 영어로 되어 있지만, 발행처만은 대일본제국이라고 한자로 인쇄되어 있다.

 

일본군이 말레이시아에서 발행한 10달러 화폐. 바나나 나무가 그려져 있다. /위키피디아
일본군이 말레이시아에서 발행한 10달러 화폐. 바나나 나무가 그려져 있다. /위키피디아

 

말레이시아에서 발행된 일본 군표는 바나나 지폐(banana notes)라 불렸다. 10달러 지폐에 바나나 나무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침공 이전에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말레이 연합, 싱가포르, 브루네이, 북보르네오, 사라와크로 분리되어 영국의 통치를 받았는데, 영국은 싱가포르에서 발행한 스트레이츠 달러(Straits dollar)를 통용했다.

일본은 이들 지역을 통합해 바나나 지폐를 동시에 통용했다. 처음에는 100 스트레이츠 달러를 100 일본 달러로 교환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본군은 대량으로 지폐를 찍어냈다. 1942년에 초기 100 일본 달러의 가치는 194312월엔 385 달러로, 194412월에 1,850 달러로 폭락했고, 전쟁 막바지인 194581일엔 1500 달러로 폭락했다. 항복 직전인 1945811일엔 95,000 달러로 떨어졌고, 항복 이후엔 말레이시아에서 발행한 일본 달러는 그나마 가치를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일본군이 필리핀에서 발행한 500페소 군표 /위키피디아
일본군이 필리핀에서 발행한 500페소 군표 /위키피디아

 

필리핀에서 일본군은 1942년 점령과 동시에 미화와 현지 통화를 합쳐 2,050만 달러와 금괴를 압수했다. 곧이어 일본 페소를 발행했다. 처음에는 10페소가 최대의 발행 단위였다. 지폐플 찍어내면서 1944년엔 100페소권이 등장했고, 곧이어 500페소권, 종전직전엔 1,000페소 지폐가 발행되었다. 일본은 미국이 진주할 때까지 1,000페소권을 양산하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일본 페소는 미키마우스 머니’(Mickey Mouse money)라 불렸다. 그 이유는 돈의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증언자들에 따르면, 시장에 물건을 사러갈 때에 일본 군표 한 광주리를 들고갔다고 한다. 1944년에 성냥 1곽이 100 미키마우스 페소에 달했다고 한다.

 

일본군이 버마에서 발행한 10루피 지폐 /위키피디아
일본군이 버마에서 발행한 10루피 지폐 /위키피디아

 

미국은 일본군이 군표를 통해 군비를 조달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일본 달러를 교란시키기 위해 위조지폐를 제작해 공급했다. 태평양전쟁을 이끈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에 위조 지폐를 찍어 필리핀에 투입했다. 연합군이 동남아의 일본 점령지를 되찾은 이후 일본이 찍은 지폐(군표)는 휴지조각이 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발행된 일본군의 10굴덴 지폐 /위키피디아
인도네시아에서 발행된 일본군의 10굴덴 지폐 /위키피디아

 

 


<참고자료>

Yuichiro Sakamoto, War Finance (Japan)

Wikipedia, Japanese invasion money

Wikipedia, 大東亜戦争軍票(일본어판)

Wikipedia, Japanese government-issued dollar in Malaya and Born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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