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잡기 위해 달러 도입한 에콰도르
인플레이션 잡기 위해 달러 도입한 에콰도르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01.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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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인플레⑨…파나마에서 힌트, 국가파산 위기에 달러통용 도입

 

남미의 에콰도르(Equador)는 이 나라를 관통하는 적도(equator)에서 국명을 따온 나라로, 1830년 대콜롬비아(Gran Colombia)에서 분리, 독립했다. 면적은 283,561으로 남북한 합친 한반도의 약 1.3, 인구는 1,600만명쯤 된다. 1인당 GDP6,600달러로 가난한 나라다.

에콰도르는 남미에서 유일하게 미국 달러를 법정통화로 사용하는 나라다. 파나마에 이어 두 번째로 달러를 통화로 받아들였다.

나라는 작지만, 에콰도르가 채택한 달러화(dollarization)는 경제학자들의 관심사다. 자국통화를 버리고 외국통화를 쓰는 것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연구가 많다. 단점은 통화주권을 잃었다는 것이다. 에콰도르는 거시경제를 운용하는 큰 틀인 통화량과 금리정책을 상실하게 되었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물가가 안정된 것이다. 중앙은행이 지폐를 찍어내지 않고 달러 수입에 통화량을 맞추다보니, 에콰도르는 달러 통용 이전에 벌어진 물가 상승을 제압하게 되었다.

 

에콰도르는 새천년이 시작된 20001월 자국 화폐인 수크레(sucre)를 폐기하고 미국 달러를 사용했다. 달러를 통화로 사용하고 있는 파나마에서 물가가 안정되어 있다는 점에 착안해 채택한 정책이다.

에콰도르의 달러라이제이션은 성공했다. 이전에 연간 100%나 치솟았던 물가는 달러통용정책 이후 한자리 대로 낮아졌다. 대신에 중앙은행은 유명무실해졌고, 경제가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비난도 쏟어졌다. 하지만 이 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을 수는 없었다. 에콰도르는 물가라는 한 마리 토끼를 잡은 후에 경제를 다시 세우게 되었다.

 

에콰도르 위치 /위키피디아
에콰도르 위치 /위키피디아

 

에콰도르의 비극은 석유에서 시작한다. 에콰도르에 석유가 생산된 것은 1972년이다.

석유가 나기 이전에 이 나라는 농업국가였다. 바나나, 코코아, 커피가 주산업이었고, 남미 국가들 가운데서도 최빈국에 속해 있었다. 지역적으로 안데스산맥 지역과 해안지역, 아마존지역으로 구분되어 지역 주민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달랐다. 스페인인 후손들과 원주민 사이의 갈등도 내재해 있다.

1960년대말 아마존 지역에 석유탐사가 이뤄지고 그곳에 대량의 원유가 매장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석유생산은 1972년부터 시작되었다. 석유는 곧바로 GDP25%를 차지했고, 1970년대에 두차례 오일쇼크를 거치는 동안에 이 나라는 석유생산국으로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정부는 석유대금에 취해 재정을 확대시켰다. 1970년대에 연평균 GDP 성장률은 8.8%에 이르렀고 1973년에는 무려 25%의 기록적인 성장을 달성했다.

석유가 생산되면서 외국인 투자도 활발해졌다. 외국은행들은 에콰도르에 풍부하게 돈을 빌려줬다. 197124,800만 달러이던 외채가 1981년에 441,600만 달러로 18배나 불어났다. 석유대금과 해외차입금이 들어오면서 물가가 상승했다. 1972~1981년 사이에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13.2%나 되었다. 이 정도의 물가는 감내할만했다. 돈이 흘러넘치면서 안데스산맥의 사람들은 풍요함을 누렸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제유가가 하락하고, 국제금리는 상승하기 시작했다. 검은 황금에 취해 있던 적도의 나라에 위기가 닥쳐왔다. 결국은 IMF에 손을 내밀어 구제금융을 얻고 외채를 구조조정하면서 겨우 안정을 취했다. 이후 국제유가 등락에 따라 에콰도르 경제는 성장과 후퇴를 반복했다.

 

1990년대초 신자유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금융시장을 개방했다. 금융분야의 규제를 허물고 외국은행의 설립을 허용했다. 금융개혁 이후에 외국자본이 유입되면서 정부는 재정을 또 확장했다. 금융자유화 조치로 국내은행들은 리스크가 높은 해외자금을 차입하게 되었고, 그렇게 조달된 자금은 여과 없이 국내 대출자금으로 활용되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에 에콰도르는 퍼텍트스톰을 맞게 된다. 여러 불행이 한꺼번에 닥쳐왔다.

첫 번째가 기후재앙이었다. 1997~1998년에 엘니뇨 현상이 에콰도르에 덥쳐 곳곳에 홍수가 나고 농경지가 침수되었다. 농업 생산이 격감하고 사회기반시설이 붕괴되었다. 이때 손실은 GDP13%에 해당했다. 그 와중에 진도 7.2의 지진도 발생했다.

두 번째는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에 이어 1999년에는 남미 경제위기가 에콰도르에 덥쳐왔다. 국제자본들은 신흥시장에 대한 자금대출을 줄였고, 빌려준 돈은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았다. 에콰도르도 예외는 아니었다.

 

에콰도르 인플레이션 추이 /Statista
에콰도르 인플레이션 추이 /Statista

 

돈줄이 막힌데다 대출회수가 어려워지면서 은행 위기가 발생했다. 1999년에 에콰도르는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았다. 이 해에 GDP7% 하락하고, 은행의 절반이 문을 닫았다. 정부 자체가 파산할 지경이었고, 은행을 구제할 자금이 없었다. 정부가 할수 있는 조치는 중앙은행을 통해 돈을 찍어는 것이었다. 수크레 통화의 가치는 1999년에 180%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은 67%에 이르렀다.

은행들의 집단도산이 이어지자 예금자들은 은행으로 달려가 예금을 빼내는 뱅크런(bank run)이 일어났다. 에콰도르 정부는 유례 없는 조치를 취했다. 199938일부터 12일까지 은행 업무를 1주일간 휴뮤시키는 조치(bank holiday)를 취했다. 다시 은행 문을 여니, 뱅크런이 더 심각하게 나왔다. 결국 은행 예금을 1년간 동결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예금자의 돈을 꽁꽁 묶어 놓으니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은행 파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예금자에겐 1년 동안 예금을 꺼내지 못하도록 한 조치는 시스템 붕괴를 의미했다.

 

이때 정책 당국자들은 슬그머니 파나마를 들여다 보았다. 파나마는 1903년 독립한 이래로 미국 달러를 썼다. 자국 통화로 발보아(Balboa)가 있지만, 달러와 11로 교환하고 있다. 파나마의 인플레이션은 2%대로 남미 국가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에콰도르 정부는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래리 서머스 재무장관에게 달러리제이션을 협의했다. 미국은 반겨하지 않았지만, 거부하지도 않았다. 미국 중앙은행(Fed)와 협의해 달러가 공수되었다.

 

2000년 이전에 유통된 에콰도르의 수크레 지폐 /위키피디아
2000년 이전에 유통된 에콰도르의 수크레 지폐 /위키피디아

 

200019일 자밀 마후아드(Jamil Mahuad)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달러리제이션을 발표했다. 반대 여론이 격하게 일어났다. 중앙은행이 반발하자 대통령은 중앙은행 총재를 경질했다. 남아 있는 중앙은행 이사들은 달러 통용을 공식 인정하게 된다. 달러 통용은 정권을 위태롭게 했다. 자밀 마후아드의 지지도는 199860%에서 2000년초 6%로 가라 앉았고, 곧이어 121일 발생한 군부 쿠데타에 의해 실각했다.

하지만 쿠데타 후에 집권한 구스타보 노보아(Gustavo Noboa) 대통령은 다른 대안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후임 정권도 달러 통용을 받아들였다. 구통화 수크레와 달러의 교환비율은 25,0001이었다. 2001330일까지 구화폐 정산 기간을 두어 수크레 보유자에게 달러로 교환해 주었다.

달러 통용을 실시한지 20여년이 지난 지금, 에콰도르엔 과거 수크레로 돌아가지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의 악몽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 주장에 선뜻 찬성하지 않고 있다.

 


<참고자료>

NPR, Why Ecuador Uses The Dollar?

Simón Cueva and Julián P. Díaz, The Case of Ecuador

Luis I. Jacome H., The Late 1990s Financial Crisis in Ecuador

Maria Laura Patino L, Lessons of the Financial Crisis in Ecuador 1999

Wikipedia, 199899 Ecuador financial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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