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지광국사탑 보존처리 완료…백년만의 귀환
원주 지광국사탑 보존처리 완료…백년만의 귀환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1.01.2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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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출, 전란 폭격, 수십차례 이전…5년여 보전처리. 환지본처 예정

 

국보 101호 지광국사탑은 원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지에 세워졌던 탑으로, 독특한 구조와 화려한 조각, 뛰어난 장엄장식으로 역대 가장 개성 있고 화려한 승탑으로 꼽힌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인 1912년 일본 오사카로 몰래 반출되기도 했고, 한국전쟁 중 폭격을 받았고, 10여차례 해체해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손상이 있었다.

이에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2016년부터 5년여에 걸친 지광국사탑 보존처리를 마쳤다. 이번에 보전처리가 마무리되면서 국보 제101호 지광국사탑이 100년만에 원래 있었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지로 환지본처(還至本處)하게 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전 후 모습(2015년 촬영)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전 후 모습(2015년 촬영) /문화재청

 

지광국사탑은 그간 두 차례에 걸친 기조사(2005, 2010)와 특별 종합점검(2014), 정밀안전진단(2015)을 통해 다수의 균열과 모르타르(mortar)로 복원된 부위에서의 손상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모르타르로 복원된 옥개석(屋蓋石, 지붕돌)과 상륜부는 구조적 불안정까지 더해져 추가 훼손 우려까지 제기되면서 마침내 2015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전면 해체해 보존처리를 하는 것이 결정된 바 있다.

 

이에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2016년 석탑을 완전 해체하고 지금까지 보존처리를 진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해체부재들을 일일이 기록했으며, 모르타르는 걷어냈다. 결실되어 없어진 부재에 대해서는 신석재로 새로 제작했고, 파손부재들은 접착했다.

새로 구해야 하는 신석재들은 산지(産地)를 과학적으로 추정해 가능하면 그 산지에서 구하고자 했다. 전국의 주요 산지를 조사한 결과, 신석재들은 지광국사탑이 있던 원주 귀래면 귀래리 석산에서 채석됐으며, 탑이 조성될 당시에 사용된 석재와 가장 유사한 재질로 구했다.

또 유리건판과 실측도면 등을 바탕으로 도상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결실부분의 도상을 복원하였고, 전통기술과 도구를 사용하여 가공하고 접합했다.

이외에도 추후 탑이 복원될 때 사용될 무기질 결합재 연구 등에서도 학문적 성과를 도출해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보존처리를 통해 전체 29개 부재 중 19개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신석재를 사용했으며, 옥개석과 앙화(仰花), 보륜(寶輪) 등 상륜부 부재는 절반 정도를 신석재로 복원하여 구조적 안정성도 확보했다.

또 탑신석 사리공에서 발견된 옥개석 파손부재 조각과 법천사지에서 발굴된 하층 기단갑석 조각을 과학적 조사와 고증을 거쳐 원래 위치에 복원했고, 1957년 수리 당시 잘못 복원된 옥개석의 방위와 추녀 위치를 바로잡는 등 과학적인문학적 융복합 연구를 통해 지광국사탑의 잃어버렸던 본래의 모습을 최대한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지광국사탑 /문화재청
지광국사탑 /문화재청

 

그동안 보전처리한 지광국사탑을 어디에 놓을 것인지를 놓고 논란을 벌여왔다. 이 탑의 관리권을 갖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외부에 전시할 경우 훼손가능성이 높아 용산 국립박물관에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강원도와 원주시는 탑이 원래 위치한 원주시 법천사 터로 되돌려 달라고 요청하면서 반환운동을 벌여왔다.

이에 문화재청은 2019년에 건축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지광국사탑을 원주시 법천사지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문화재연구소는 지광국사탑 보전과정에서 얻은 연구결과를 담아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보존복원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누리집에 공개해 누구나 열람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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