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베 철권통치가 초래한 짐바브웨 화폐폭락
무가베 철권통치가 초래한 짐바브웨 화폐폭락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01.2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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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형 인플레이션①…세계 두 번째 하이퍼인플레이션, 2019년 이후 재연

 

짐바브웨 달러는 국제적인 놀림감이었다. 100만 달러를 줄게, 하고는 짐바브웨 돈을 주는 코미디가 유행했고, 우리나라에서도 그 돈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짐바브웨 돈 100만 달러는 미국 돈으로 1센트도 되지 않는다.

짐바브웨(Zimbabwe)는 영국인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Cecil John Rhodes)의 이름을 따 로디지아(Rhodesia)라 불렸던 곳으로, 1980년 영국에서 독립했다. 면적은 39으로 한반도의 2배쯤 되고, 인구는 1,400만에 달한다. 1인당 GDP2,600 달러로 최빈 국가에 포함된다.

짐바브웨는 15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위대한 석조문화로 유명하고, 또 유명한 것이 독립한 이래 37년간 장기집권한 무가베(Robert Mugabe) 대통령이다. 하이퍼인플레이션도 이 독재자가 이뤄낸 업적(?)의 하나다.

 

짐바브웨 위치 /위키피디아
짐바브웨 위치 /위키피디아

 

짐바브웨는 세 차례 화폐개혁(redenomination)을 단행했다. 20068월에 중앙은행은 기존에 유통 중인 짐바브웨 달러에 0을 세 개 지워 새 지폐를 발행한데 이어 20087월에 010개 지워 또다른 지폐를 발행했고, 20092월에 012개 지운 새로운 지폐를 발행했다. 세차례에 걸쳐 3년 사이에 원래 화폐의 가치가 103×1010×1012=1025배만큼 절하된 것이다. 짐바브웨 정부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20088월 한달간 인플레이션은 11,250,000%이었고, 7월의 연간 인플레이션은 231,000,000%이었다. 그후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발표하지 않았다.

미국의 경제학자 스티브 한케(Steve H. Hanke) 교수가 여러 지표를 통해 조사한 결과, 200811월에 인플레이션이 극에 달했고, 그때 인플레이션율이 8.97×1022%였다고 발표했다. 이 조사를 토대로 피크기의 한달 인플레이션은 796%(7.96×1010%)였고, 하루 상승률이 98%였다. 물가가 두배 오르는데 걸린 시간은 24.7시간으로, 하루에 물가가 두배씩 오른 것이다.

이 기록은 인류역사상 최고의 기록은 아니다. 헝가리 펭괴(pengő)화가 1차 대전직후인 19467월에 기록한 4.19×1016%를 뛰어넘지 못해 역사상 두 번째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기록했다.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2011) /위키피디아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2011) /위키피디아

 

무가베는 영국 제국주의에 대항한 독립투사로서의 리더십을 기반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경제를 몰랐고, 서방의 압력을 피해 소련, 쿠바, 북한등과 손잡았다.

집권 초기에는 식민지 화폐였던 로디지아 달러와 등가로 짐바브웨 달러를 발행했는데 이 돈은 곧바로 절하되기 시작했다. 독립 10년후 영국과의 조약에 따라 백인 소유 토지를 흑인들에게 분배했는데, 여기서부터 사단이 벌어졌다. 백인 토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돈을 찍어 냈고, 그 땅을 소유한 흑인들은 농업기술이 부족해 경작에 실패했다. 농업 생산력이 1999년부터 연간 30% 정도 급감했다. 실업률은 80%에 달했다.

무가베의 독단 정치는 부족간 갈등을 키웠고, 이 과정에서 그는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은데벨레(Ndebele) 부족에 수만명에 달하는 대량의 살육을 저질렀다. 이웃 콩고 내전에도 개입했다. 유엔과 EU는 무가베 정권 핵심에 대해 금융제재를 단행했다. 가난한 나라가 내전과 전쟁을 치르면서 전쟁비용을 화폐발행으로 충당했다.

무가베 정권은 부패했다. 당시 짐바브웨의 국가투명도는 177개국 중 157위를 했다.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은 집권당과 독재정권에 흘러들어갔다. 정권에 대한 불신은 통화가치 하락을 부채질했다.

중앙은행은 무가베 정권의 꼭두각시였다. 중앙은행 총재 기든 고노(Gideon Gono)는 더 많은 돈을 찍어 내라고 독려했다. 새 돈을 찍으면 중앙은행이 가장 먼저 외화로 바꾸었다. 기든 고노 총재는 부하들에게 고액권 가방을 들고 외환거래소로 뛰어가게 했다고 한다..

지폐를 찍어내는데도 돈이 들었다. 국내의 인쇄기술이 뒤떨어져 독일 회사에서 지폐를 찍어 공수해 왔다.

인플레이션 기계가 작동했다. 2000년 이전까지는 두자리 숫자를 유지했다. 2001년부터 인플레이션은 세자리 숫자로 진입했고, 2005586%, 20061,281%, 20076.62×105%에 달했다. 20087월엔 2.315×109%, 11월 중반에 7.96×1010%였다.

이 단계에선 숫자의 의미는 없다. 무가베 정권은 돈의 단위가 너무 커 컴퓨터에 입력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세 차례 화폐단위를 조정했다. 세차례 개혁으로도 모자라 고액권을 발행해 최고 고액권으로 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가 발행되었다.

 

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 /위키피디아
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 /위키피디아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무가베 정부는 2007년에 물가를 동결하고 물가를 올리는 자를 체포한다고 발표했다. 수많은 사업자가 가격을 올렸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런 폭압적인 탄압에도 암시장은 형성되었다. 암시장에선 짐바브웨 통화는 사용되지 않고 미국 달러, 유로, 랜드(남아공 화폐)가 교환수단이 되었다.

버스 요금은 짐바브웨 지폐로 결제되었는데, 아침의 요금과 저녁의 요금이 달랐다. 운전수는 하루에 세 번씩 암시장에서 달러로 교환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지폐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었다. 식당에서도 현지 화폐로 주문을 받았는데, 하루에 몇차례 가격을 변경했다. 빵이나 비누, 야채는 암시장에서 거래되었다. 가격도 지역마다 제각각이었다. 빵 한덩어리가 한 곳에선 5억 달러인데 비해 다른 곳에선 100억 달러에 팔렸다.

 

짐바브웨 통화와 미국 달러와의 교환비율 추이 /위키피디아
짐바브웨 통화와 미국 달러와의 교환비율 추이 /위키피디아

 

사람들은 더 이상 현지통화를 쓰지 않게 되었다. 상점들은 외국 돈으로 가격표를 붙였고, 정부도 하는수 없이 200812월에 1,000개의 점포에 외국환 표시 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무허가 점포도 외국 화폐, 특히 미국 달러로 거래했다.

해를 넘겨 20091월 무가베 정권은 외국환의 사용을 허용했다. 그렇지만 교사봉급과 공무원들은 현지화폐로 봉급을 받았다. 그들은 달에 수조 달러의 봉급을 받았지만, 버스 편도 요금도 되지 않았다.

정부는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는 것을 제한했다. 인출한도는 50만 짐바브웨 달러였는데, 미국돈으로 25센트였다. 의미없는 조치였다.

결국 무가베 정권이 시장의 힘에 굴복했다. 2009년 정부는 더 이상 짐바브웨 달러의 인쇄를 중단하고, 외국환으로 거래할 것을 허용했다. 미국 달러든, 유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랜드든 마음대로 쓰라고 했다. 80%의 거래는 미국 달러로 이뤄졌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이후 물가는 한자리대로 억제되었다. 2015년 무가베 정권은 공식적으로 짐바브웨 달러를 폐기했다. 폐기당시 짐바브웨 달러 최종 공식 환율은 미화 1달러 당 35,000,000,000,000,000(3.5×1016)였다.

 

짐바브웨 지폐 /위키피디아
짐바브웨 지폐 /위키피디아

 

201711월 군부 쿠데타가 발생해 무가베의 37년 장기집권이 종식되고 부통령이자 오랜 동지였던 에머슨 음낭가과(Emmerson Mnangagwa)가 대통령이 되었다. 무가베는 20191195세의 나이로 숨졌다.

 

새 정권도 통화 발행의 유혹을 떨쳐 내지 못했다. 2019년 짐바브웨 정부는 달러에 고정시킨 동전과 지폐를 발행했다. 달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란 명분을 댔지만,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짐바브웨인들은 정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해 6월 국내에서 외국환의 거래를 금지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음낭가과 정권도 새 지폐를 찍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새 정부도 인플레이션율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지만, IMF2019년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이 300%라고 밝혔다. 트레이딩 이코노믹스(Trading Economics)란 기관의 분석에 의하면, 2020년 짐바브웨의 연간 인플레이션이 540%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된 가운데 다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Wikipedia, Hyperinflation in Zimbabwe

Wikipedia, Hyperinflation

Wikipedia, Real Time Gross Settlement do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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