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에 종속되는 베네수엘라 인플레의 패러독스
달러에 종속되는 베네수엘라 인플레의 패러독스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1.23 14:3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행형 인플레②…자원의 저주, 무분별한 포퓰리즘이 낳은 결과

 

남미 베네수엘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나라의 인플레이션은 2016800%, 20174,000%, 2018170%로 정점에 달했다. 그후 정부가 통계를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나라의 경제파탄에 관해 우리나라에도 많이 소개되었다. 방송사들이 현지 르포를 통해 실상을 보도했고, 많은 저널리즘의 소재가 되었다. 생활물자가 극히 부족하고, 식량을 실은 차량이 습격을 받고 화장지가 없어 지폐로 대신한다는 얘기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300만명이 이웃 나라로 이주했다. 나라는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정권과 의회의 지지를 얻은 후앙 과이도(Juan Guaidó) 정부로 갈라져 있다.

 

돈을 세는 베네수엘라 노점상 /위키피디아
돈을 세는 베네수엘라 노점상 /위키피디아

 

이 비극의 시초는 석유의 저주(curse of oil)에서 비롯된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매장국이다. 원유가 수출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재정의 절반 이상을 석유에 의존한다. 국영석유회사 PDVSA가 석유를 독점생산하고, 그 수입이 곧 재정의 원천이다.

1999년 우고 차베스Hugo Chavez)가 대선에서 승리해 베네수엘라에 사회주의 노선을 도입했다. 차베스는 남미 독립운동의 지도자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본따 볼리바르 혁명을 선포했다. 그는 수백여개의 민간기업을 국영화하고, 엑손모빌, 코노코필립스 등 해외메이저들이 운영하는 자산을 몰수했다.

차베스의 사회주의 노선은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빈민들에게 의료혜택을 베풀었고 집을 지어줬다. 차베스의 포퓰리즘은 원유에서 충분한 수입이 나왔기 때문에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국제유가 흐름에 따라 세수 부족분이 발생하면 통화량을 늘려 충당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199835.8%, 200112.5%, 200331.1%, 차베스 시기의 인플레이션은 남미 국가 가운데서 비교적 양호한 상태를 보였다.

차베스 정권 때에는 외환보유액도 비교적 넉넉해 대량을 금을 확보하고 있었다. 차베스는 반미노선을 추구했기 때문에 달러 대신에 외환보유액의 60%를 금으로 비축했다. 그는 런던에 비축해 두었던 비축금을 국내로 들여와 야금야금 써버리다가 2013년 그가 죽을 때 그 금을 거의 다 써버렸다. 차베스에 이어 마두로가 1913년 정권을 잡았다.

차베스의 후임 마두로는 외환 곳간이 텅 빈 상태에서 집권했다. 그는 불행하게도 집권 초기에 국제유가 급락이란 악재에 직면했다. 2014년 배럴당 100달러 하던 국제유가가 1년반 사이에 배럴당 40달러까지 떨어졌다. 그 배경은 미국의 셰일가스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을 견제하기 위해 원유증산에 돌입하고 국제 기름값이 반도막 난 것이다.

그 유탄을 베네수엘라가 고스란히 맞았다. 게다가 전임 차베스 정권이 2002~2003 국영석유회사 PDVSA의 노동자가 파업을 하자, 2만여명에 가까운 직원들을 해고해 핵심적인 석유기술자들이 해외로 떠나버렸다. 원유채굴 기술의 부족으로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은 하루 300만 배럴에서 100만 배럴로 줄어들었다.

국제유가 하락에 원유생산 위축는 베네수엘라에 치명적이었다. 마두로 정권은 원유수입 감소에서 나오는 재정 부족을 화폐 발행으로 채웠다.

 

볼리바르 가치가 90% 하락하는 시간 /위키피디아
볼리바르 가치가 90% 하락하는 시간 /위키피디아

 

화폐발행 증가는 곧바로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다. 2014년 인플레이션은 69%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어 2015년에 181%로 세계 1위와 베네수엘라 역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2015~2018년의 인플레이션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다.

문재는 재정수입이 줄어들 때 예산을 줄이는 고통을 수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마두로는 차베스에 이어 포퓰리즘 정책을 취했고, 세수가 줄어도 빈민들에게 주는 복지혜택을 조금도 줄이려 하지 않았다. 대안은 없었다. 돈을 찍어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통화량 확대는 돈의 가치를 떨어뜨렸고, 사람들은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해 미국 달러로 바꿨다. 차베스 정권 때에 이미 통화 통제가 단행되어 고시환율제가 채택되었다. 20091월 고시환율은 1달러당 2.15 볼라바르에서 2.60 볼리바르로 올랐고, 2011년에 4.30 볼리바르, 2013년에 6.30 볼리바르로 치솟았다. 마두로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통화발행 속도가 가팔라지자 20149월에 1달러당 100 볼리바르로 고공행진을 시작했다. 20155월에 300 볼리바르, 그해 7월에 500, 20161월에 1,000, 201611212,000, 같은달 29일에 3,000으로 수직상승했다. 2018810일 공식환율은 1달러당 248,832이었다.

암시장의 환율은 고시환율보다 높았다. 정부가 은행을 통제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암시장을 이용하거나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에서 달러를 구했다.

 

볼리바르의 달러 환율 추이(2018년 이전 볼리바르 푸에르테 기준) /위키피디아
볼리바르의 달러 환율 추이(2018년 이전 볼리바르 푸에르테 기준) /위키피디아

 

돈의 가치가 떨어지자 중앙은행은 화폐개혁을 단행하고, 화폐단위를 올렸다.

화폐개혁은 차베스 정권 때부터 진행되었다. 20073월 기존의 볼리바르는 1,0001로 새 통화와 교환되었다. 새 통화는 볼리바르 푸에르테(Bolívar fuerte)인데 푸에르테는 스페인어로 강하다’(strong)는 의미다. 그런데 새 돈은 결코 강한 통화가 되지 못했다. 새 통화는 100 볼리바르 짜리가 최고권이었는데, 2016년에 암시장에서 미국 돈으로 23센트에 거래되었다. 그해 11월 중앙은행은 500, 1,000, 2,000, 5,000, 1, 2만 볼리바르권을 발행했다.

이어 마두로 정권은 100 볼리바르 지폐를 폐기했다. 당시 100 단위 지폐는 60억 장이 유통되어 전체통화량의 60%를 차지했는데, 정부가 이 지폐를 72시간만에 폐기한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대혼란이 빚어졌고,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201712월 마두로 정권은 암호통화로 페트로(petro)를 발행했다. 페트로는 이 나라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금, 다이아몬드를 담보로 발행되었다. 마두로 정권은 1페두로를 60달러로 책정해 60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 통화의 사용을 금지하면서 자금조달에 실패했다.

20185월 베네수엘라는 볼리바르 푸에르테를 폐기하고 볼리바르 소베라노(Bolívar soberano)를 발행했다. 소베라노는 스페인어로 주권(sovereign)이란 뜻이다. 구통화와 신통화의 교환비율은 10만대1이었다.

 

화폐개혁을 하고 지폐단위를 올려도 대중들은 볼리바르 지폐를 사용하지 않고 대체통화를 구하려 했다. 심지어 룬스케이프(RuneScape0라는 게임에 뛰어 들어 게임 화폐로 달러를 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몇 달러를 얻으면, 봉급쟁이 한달치 급여만큼 얻었다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물가기 치솟자 2017년 크리스마스에 상점들이 가격표를 달지 않았다.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점원에게 가격을 물었는데, 시시각각 가격이 달랐다. 베네수엘라에선 이미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미국 달러가 거래단위로 형성되고 있다.

 

길거리에 뒹구는 볼리바르 지폐 /위키피디아
길거리에 뒹구는 볼리바르 지폐 /위키피디아

 

2018년 중반 이후 베네수엘라 정부는 인플레이션 통계를 발표하지 않았다. IMF의 발표로는 2008년 인플레이션이 100%인데,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스티브 한케(Steve H. Hanke) 교수는 이 수치도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2018년 실제 인플레이션은 1,698,488%이란 계산이 나온다.

이후 인플레이션율은 추정이다. IMF20194월에 베네수엘라의 2019년 인플레이션이 1천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스티브 한케 교수에 따르면 현재 베네수엘라의 상업 거래는 80% 이상이 미국 달러로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볼리바르화가 맥을 쓰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차베스에 이어 마두로는 반미 운동의 선봉에 섰는데, 그들의 정책실패는 결국 미국 화폐에 의한 종속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The Conversation, What caused hyperinflation in Venezuela

NationalReview, Hanke’s Inflation Dashboard: Venezuela Still Leads

Wikipedia, Hyperinflation in Venezuela

Wikipedia, Hyperinflation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마두로 2022-06-14 00:32:59
쉽고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