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권력승계 중에 생긴 북한 초인플레이션
김정은 권력승계 중에 생긴 북한 초인플레이션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01.2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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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011.1. 통화증발로 발생…달러라이제이션 가속화

 

북한은 200912월에서 20111월까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북한이 김정은 권력 승계과정에서 통화량을 늘려 인민들의 선심을 쓰려다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다는 것이 한국 경제학자들의 분석이다. 그 결과로 북한 원화는 구매력을 상실하게 되고 중국 위안화나 미국 달러화가 거래되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북한은 인플레이션을 발표하지 않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구체적 정보가 취약하지만, 한국의 경제학자들이 쌀값과 환율 등 접근가능한 기초자료를 토대로 북한의 인플레이션율을 추출했다.

북한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200912월 원화를 1:100으로 교환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SK경영경제연구소 이영훈의 연구에 따르면. 화폐개혁 직후 200912월의 쌀값은 1kg25, 미국 1달러당 환율은 38원이었다. 이후 20129월말 쌀값은 1kg6,500, 달러 환율은 6,450원을 기록했다. 3년이 되지 않은 시기에 환율은 쌀값은 260, 달러환듈은 170배 상승한 것이다.

이영훈은 김정일 정권이 근로자의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통화공급을 대폭 확대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월별 인플레이션 /Steve Hanke
북한의 월별 인플레이션 /Steve Hanke

 

북한의 인플레이션은 2009년말에 갑자기 촉발된 것은 아니다. 그 뿌리를 찾자면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4~1998년 북한은 소련 해체와 동구권 붕괴의 시기에 대기근을 직면해 수십만명의 아사자를 냈다.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이 기간에 북한에선 최소 24, 최대 350만명이 식량부족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주민들은 자구책의 일환으로 장마당을 열었고, 이 비공식시장이 초기적 시장메커니즘을 형성해 나갔다.

북한 정권은 공산권 붕괴로 대외교역이 축소된 가운데 선군정책을 추진하면서 재정이 바닥났다. 근로자 임금이 체불되는 현상도 빚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정일 정권은 200271, 이른바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시행했다. 7.1 조치는 주민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시장메커니즘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조치로 해석되었다.

7.1 조치의 골격은 국영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폐지해 재정 부담을 줄이는 것이었다. 가격보조금 폐지는 상품가격 상승을 유발했고, 이에 따라 주민의 생활비가 인상될 수밖에 없었다. 김정일 정권은 국정가격(고시가격)을 평균 25배 올리는 대신에 근로자 기준임금을 평균 18배 인상했다. 동시에 환율을 70배 올려 1달러당 환율이 2.2원에서 153원으로 상승했다.

이 조치는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지만 주민들에겐 임금상승폭보다 높은 물가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정권은 18배로 늘어난 근로자 임금 상승분을 통화증발로 해결했다는 게 국내 학자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국채를 발행할 능력이 되지 못하고 세금을 늘릴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통화발행을 통해 근로자 임금상승분을 충족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임금상승-통화발행-물가상승의 악순환이었다. 이영훈의 분석에 따르면 20027.1 조치 이후 쌀값은 1kg45원에서 200992,400원으로 53배 상승했고, 이 기간에 미국 달러 환율은 150원에서 3,825원으로 26배 상승했다.

 

북한의 분기별 시장 달러환율과 쌀값 변동(2003.3~2009.12) /이영훈 논문 캡쳐
북한의 분기별 시장 달러환율과 쌀값 변동(2003.3~2009.12) /이영훈 논문 캡쳐

 

김정일 정권은 통화가치 하락과 물가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20091130일 전격적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구권과 신권의 교환비율은 100;1이었다. 교환기간은 122일부터 6일까지 1주일이었고, 신권의 전면유통은 127일부터 시작되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은 그동안 다섯차례의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1차는 1947년 정권수립후 조선중앙은행권을 발행하기 위해 구화폐와 11로 교환했으며, 2차는 한국전쟁후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해 1959년 구화폐와의 교환비율 100:1로 신권을 발행했다. 3(1979)4(1992)는 저축을 강제하기 위해 1;1로 신권을 발행했고, 2009년 화폐개혁은 다섯 번째이지만 화폐단위 조정으로는 두 번째였다.

 

북한의 5차화폐개혁 내용 /현대경제연구원
북한의 5차화폐개혁 내용 /현대경제연구원

 

2009년 화폐개혁은 20027.1조치의 반동으로 추진된 것으로 해석된다. 7.1 조치로 시장메커니즘의 틈새가 열리자 정부는 적자인데 비해 민간에서 부가 형성되었고, 공산당 보수파들에게 힘이 실려 부의 재편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즉 민간에 형성된 부를 정부가 강탈하는 조치가 5차 화폐개혁의 단행이라는 분석이다.

2009년 화폐개혁에서 구화폐 교환한도를 처음에는 가구당 10만원(26 달러)으로 정했다가 주민의 반발이 심해지자 50만원(130 달러)으로 늘렸다. 그 이상의 돈은 신권으로 교환하지 않고 강제로 저축하게 했다. 이에 비해 저축소(은행)에 보관한 돈은 101로 교환했다. 돈을 은행에 모이게 하고 정부가 컨트롤하려는 의도였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화폐개혁을 통해 북한의 재정은 2009366,000만 달러에서 2011584,000만 달러로 2년 사이에 60% 가량 증가했다.

화폐 단위가 100분의1로 떨어지면서 200912월 쌀값은 1kg25, 미 달러 환율은 38원으로 조정되었다.

하지만 이후 물가는 과거에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고공행진했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쌀값은 3년 사이에 260, 달러 환율은 170배 상승하며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스티브 한케(Steve Hanke)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0912~20111월 사이에 하루 인플레이션율은 8.07%였고, 물가가 두배로 뛰는 시간은 9.1일로 계산되었다. 월간 최고인플레이션은 926%.

 

북한의 시장 달러환율과 쌀값 변동(2010.1~2012.9) /이영훈 논문 캡쳐
북한의 시장 달러환율과 쌀값 변동(2010.1~2012.9) /이영훈 논문 캡쳐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영훈은 화폐개혁으로 물가의 단위는 100분의1로 낮아졌지만, 임금은 과거 통화의 금액으로 유지함으로써, 높아진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통화공급을 확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인플레이션을 통해 정부가 세수를 확대하는 인플레이션 조세(inflation tax)의 결과라는 것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20107월과 12월에 북한은 후계자인 김정은의 배려 등 정치저 고려에서 체불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통화공급을 확대했으며, 20118월엔 평양시 10만호 건설공사가 본격화되면서 인력과 자제 종원을 위해 통화공급을 크게 늘렸다고 한다.

김정일은 201112월 사망하기 직전에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2009~2011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경제적 이유보다 김정은 권력승계라는 정치적 이유가 강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이영훈) 새로운 화폐가 새로운 경제와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이미지를 연출하고, 시장가격을 100분의1로 하락시킨 상태에서 임금과 현물 분배를 과거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인민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려 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배려금 명목으로 1인당 500원의 선심을 쓴 것도 그 일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화폐개혁은 본래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북한 원화는 구축되고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화 등 외화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데일리NK에 따르면 이 시기에 중국 접경지대에선 거래의 80%가 위안화로 이뤄졌고, 국경에서 먼 지역에선 50% 정도가 미국 달러화로 상품이 교환되었다고 한다. 한케 교수는 북한 원회의 가치하락은 자연스럽게 달러리제이션 현상을 가속화했다고 평가했다.

김정일 사망과 동시에 2012년 김정은 체제가 수립되었다. 김정은 정권은 북한 경제의 달러화 또는 위안화를 저지하기 위해 통화 증발을 중단했다. 베네수엘라와 짐바브웨의 경우 현지통화가 무력화되면서 외국환이 주도화폐로 된 것을 인식했다는 해석이다.

2014년 이후 북한 원화는 부분적으로 복구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에선 달러 또는 위안화로 표시된 가격표가 등장하고 있다.

북한에선 내화가격이 존재한다. 내화가격은 북한 원화로 표시하고 실제로는 외국환으로 거래되는 가격표시다.

 

2017년 북한 평양 맥주행사장 가격표 /정연욱 논문 캡쳐
2017년 북한 평양 맥주행사장 가격표 /정연욱 논문 캡쳐

 

위의 그림 아래에는 협동화페거래소 환율에 따르는 내화가격으로 봉사하여 드립니다고 쓰여 있다.

2017년 생맥주 500cc의 가격은 250원인데, 2017년 환율 1달러당 8,000원을 기준으로 하면 3센트에 불과하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 가격표의 원은 미화 센트다. 즉 맥주 500cc2달러50센트 정도 한다는 얘기다. 내화 가격이란 국내에서 쓰는 외국화폐 기준 가격이란 뜻이다. 북한식 달러라이제이션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참고자료>

이영훈, 북한의 하이퍼인플레이션과 개혁개방 전망, 2012, 북한연구학회보

임수호외 2, 북한 경제개혁의 재평가와 전망, 2015,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용화, 북한 2009 화폐개혁 3년 평가, 2013, 현대경제연구원

정연욱, 북한 인플레이션 연구, 2019, 북한대학원대학교

Steve H. Hanke, North Korea: From Hyperinflation to Dollarization?,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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