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미군정기 혼란속 하이퍼인플레이션
해방후~미군정기 혼란속 하이퍼인플레이션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01.2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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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 무분별한 통화발행, 미군정의 재정적자 충당…물가 고공행진

 

1945815, 일본이 항복하고, 조선은 해방을 맞이 했다. 준비되지 못한 해방은 혼란의 극치였다. 정부도 없었고, 통화를 발행할 주체도 애매했다. 무기력해진 조선총독부는 미군이 들어오기 전에 치안을 맡았다. 그 치안은 본국으로 돌아갈 일본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해방초기에 미군이 들어오기 전까지 일제치하 조선은행이 중앙은행 지위를 유지했고, 조선은행권이 그대로 유통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은행권은 도쿄에 있는 대장성 인쇄국에서 찍어냈다. 패전이 가까워 지면서 조선은행은 서울에서도 지폐를 인쇄했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이 서둘러 귀국을 준비하면서 은행에 저축한 돈을 인출했고, 조선은행은 조선은행권을 대량으로 발행했다. 철수 직전의 조선은행 일본인 간부들은 100원짜리 지폐인쇄 원판을 빼돌렸다. 그들은 그 원판으로 근택인쇄소라는 곳에서 지폐를 몰래 인쇄해 예금을 인출하는 인본인들에게 나눠줬다. 며칠 사이에 100원권이 두배로 발행되었다.

일본강점기에 조선 밖에서 조선은행권의 유통은 금지되었다. 하지만 2차 대전 막바지에 중국내 일본 점령지와 만주국에서 조선은행권이 널리 유통되었다. 그 이유는 중국내 괴뢰정부가 남발한 지폐보다 조선은행권의 신용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대륙에서 빠져나오는 일본인도 조선은행권을 요구했다.

해방직후 20여일간 조선총독부 손아귀에 있는 조선은행은 미친 듯이 돈을 찍어 냈다. 지폐 용지가 모자라 모조지에다가 지폐를 찍어냈다. 용지 부족에 시달리자 조선은행 다나카 데쓰사부로(田中三) 총재는 오사카에 있던 구용서 대리에게 조선은행권 3억원을 서울로 급히 공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3억원은 해방직전인 814일 현재 남조선 화폐발행액의 15%를 웃도는 물량이었다.

98일 구용서는 항공기와 열차를 갈아 싣고 그 돈을 서울에 가져왔다. 그날 미군이 서울에 입성했다.

미군은 당초 조선은행권을 폐기하고 미군 군표를 법정화폐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 의해 미국 군표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남한에 온 미군 책임자 존 하지 중장은 일본에서 온 뭉치 지폐를 보고 조선은행 창고에 쌓여 있는 돈을 파악한 이후 꿔 미군 군표 대신에 조선은행권을 계속사용하기로 했다. 새 돈을 찍어 내는데 필요한 인쇄기와 지폐를 사야하는 비용과 수고를 덜자는 손쉬운 생각이었다. 1)

미군은 뒤늦게 925일에 적산에 관한 건을 포고하고, 일본인 재산을 동결했다. 이때 일본인들은 예금 43억원 가운데 28억원이 인출되었다. 그들은 가마니에 돈을 싸놓고 귀국을 기다렸다. 2)

 

통화량 증가율과 소비자물가 상승률 /한국경제학회
통화량 증가율과 소비자물가 상승률 /한국경제학회

 

해방 직후 남한의 경제는 거의 해체되다시피 했다. 일본 경제와의 관계가 끊어진데다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된 게 주요 이유다.

당시 통계에 따르면 1946년 남한 제조업체수는 1944년 대비 43%, 제조업 고용자수는 59.4% 각각 감소했다. 그 후에도 회복이 지연되어 1948년 남한 제조업 총생산액은 1940년대의 5분의1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인구는 급증했다. 일본과 해외에 나갔던 인구가 귀환하고 북한 공산치하에서 살기 싫은 사람들이 대거 남한으로 이주했다. 1946년에서 1948년 사이에 230만명의 인구가 증가했다. 당시 인구로 10%의 증가에 해당한다.

생활필수품이 극도로 부족했고, 미국의 원조로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식량부족은 극심했다.

미군정당국은 재정적자분을 통화 발행으로 메웠다. 한국은행 경제연감에 따르면, 조선은행권 발행고는 연말기준으로 19451,100만원에서 19462,500만원, 19475,000만원, 19487,000만원으로 불어났다.

조선은행권 발행고는 19457~12월 사이에 거의 배로 증가했다. 본원통화량은 미군정기인 1946년과 1947년에 각각 100% 이상 증가했다.

 

이 와중에 위조지폐 사건도 발생했다. 일본인들이 철수과정에서 급하게 찍던 인쇄 원판을 회수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의 재산(敵産)을 불하하는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지폐를 인쇄하던 근택인쇄소가 조선공산당 남조선분국(남로당)에게 넘어갔다. 거기에 지폐인쇄 원판도 남아 있었다. 당시 공산당은 합법 정당이었다. 조선공산당은 근택인쇄소를 조선정판사(朝鮮精版社)로 개명하고 원판을 이용해 100원권을 대량으로 찍어냈다. 그들은 그 돈을 공산당 공작금으로 활용했다. 그들 10명은 19465월에 검거되었고, 이 사건은 남한에서 공산당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3)

 

1945~1953년 통화량과 서울 도매물가지수 연간변동률 /한국개발연구원
1945~1953년 통화량과 서울 도매물가지수 연간변동률 /한국개발연구원

 

물품 부족에다 통화량 확대는 필연적으로 물가 상승을 유발했다. 1947년을 100으로 계산했을 때 도매물가지수(WPI)194511.7, 194655.0, 1947100, 1948162.9로 뛰어 올랐다.

서울 도매물가지수로 측정한 인플레이션율은 해방이 되던 19458월 중에 2,364%로 급격하게 상승했다. 물가 상승은 이듬해도 이어져 19464분기 서울 도매물가지수는 전년동기비 370% 상승했다. 4)

 

미군정은 초기에 미국식 자유시장경제제도를 도입했다. 1945105, 미군정은 미곡의 자유가격제를 고시했다. 하지만 미군정당국이 남한의 경제구조와 실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제압하지 못하는 바람에 시장경제는 왜곡되어갔다. 극심한 물자부족에 조선은행권을 소지한 사람도 물자를 구입할수 없었다. 군정 초기에 주식인 쌀은 이미 100배 가격으로 암시장에 유통되었으며, 잡곡과 밀가루등 대체 곡물도 적게는 20배에서 많게는 80배까지 치솟았다.

물가가 치솟자 미군정은 1946528일 군정법령으로 통제경제령을 공포, 물자의 배급과 가격통제를 시행했다. 그 결과로 암시장은 더 성행했다.

군정은 쌀 1포대당 180원으로 구매하고, 최고가격제를 공표했다. 하지만 쌀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암시장에서만 거래되었다. 도시민의 쌀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하루 2홉의 배급제가 실시되었다. 그것으로 부족한 가정은 암시장에서 쌀을 구해야 했다.

194710월 기준으로 서울에선 회현동 인현동 방산동 낙원동 청계천 남대문 충무로 영등포 등 14곳에 암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암시장 상인들은 관할 경찰서에 후원금을 상압하고 경찰이 임시장을 보호해준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5)

 

1945년 12월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 인쇄한 100원권 앞뒤 /화폐박물관
1945년 12월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 인쇄한 100원권 앞뒤 /화폐박물관

 

19488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물가 상승은 여전했다. 1947100으로 할 때 서울도매물가지수는 1949222.8, 1950348.0으로 올라갔고, 통화발행액도 194912,100만원에서 195028,399만원으로 증가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 통화증가분의 99%를 정부 부분에서 소화했다. 즉 재정적자를 인플레이션 조세(inflation tax)로 해결한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 숫치는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했다. 전쟁비용을 통화발행으로 충당했다.

1945년 해방에서 1953년 한국전쟁 종전까지 9년 동안 서울 도매물가지수는 약 509배 상승했고, 연평균 증가율은 118%에 달했다. 이 기간에 곡물 물가지수는 509, 건축자재의 물가지수는 1,707배 증가했다. 이는 외국 원조로 곡물 수요를 다소 충당한데 비해 전쟁복구용 물가가 많이 뛰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1) 한국은행, 중앙은행 오디세이 <26> 해방 후 건국까지

2) 문답으로 읽는 20세기 한국경제사, 일본인의 통화남발, 불법대출과 예금인출

3) 한국은행, 중앙은행 오디세이 해방 직후 벌어진 위폐 사건

4) 김광석, 한국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그 영향, 1973, 한국개발연구원

5) 박광명, 미군정기 경제통제정책의 시행과 암거래 실태, 2019, 한국민족운동사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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