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혁명③] 사우디와 가격 전쟁에서 승리
[셰일혁명③] 사우디와 가격 전쟁에서 승리
  • 아틀라스
  • 승인 2019.05.0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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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산업 2차혁명…원가 절감과 신기술 개발로 OPEC 견제 돌파

 

2010년대 초반, 미국에서 셰일 오일이 본격적으로 양산되는 가운데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2011년부터 2014년 어느 시점까지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130 달러의 박스권을 유지했다.

셰일오일 생산 초기만 해도 미국산 원유가 국제시장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이 원유 수입을 줄이면서 세계시장에 원유가 남게 되고 가격이 하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46월 배럴당 114달러를 짝은 국제유가는 곤두박질쳐 70달러대로 떨어졌다.

그해 1128OPEC 회의가 열렸다. 많은 석유전문가들은 지난 15년 동안 그러했듯이 OPEC이 석유가격을 올리기 위해 생산량 억제(감산)를 결정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OPEC의 헤게머니를 쥔 사우디아라비아는 다른 생산국(미국)들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유가전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사우디는 조여 놓았던 석유채굴 밸브를 풀어 생산량을 늘리고, 기름 값을 떨어뜨림으로써 신규로 시장에 참여한 미국 셰일 사업자를 죽여 버리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당시 미국 셰일 채굴업자의 손익분기 비용은 배럴당 75달러였다. 중동 산유국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30달러, 사우디는 25달러였다. 이미 국제유가는 셰일 산업의 손익분기점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미국 셰일오일 생산설비 /위키피디아
미국 셰일오일 생산설비 /위키피디아

 

그후 국제유가는 급락해 2015년에 배럴당 30달러까지 떨어졌다. 국제원유시장에 치킨게임(chicken game)이 벌어졌다. 최악의 조건까지 떨어져 누가 먼저 죽는지 여부를 가리는 죽음의 게임이 시작되었다. 총만 들지 않았을뿐, 산업 분야에서 가격 경쟁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 대로 떨어지자 채산성이 가장 좋은 사우디마저 힘들었다. 사우디의 재정은 주로 석유판매대금으로 충당하는데, 유가 하락으로 재정이 바닥났다. IMF 분석에 따르면, 2015년 사우디의 재정적자 비율이 GDP20%에 이른 것으로 관측되었다. 사우디는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그해 국채를 100억 달러 정도 발행했다. 오일달러가 넘쳐나던 사우디가 채권시장에 문을 두드린 것은 8년만의 일이었다. 사우디는 하는수 없이 재정을 10%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셰일산업의 타격은 더 컸다. 당시 미국에선 셰일 산업에 사망선고가 내려졌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201411월 이후 1년 사이에 가동중이던 시추장비의 수가 80%나 급감했다. 흥청거리던 텍사스, 펜실베이니아, 노스다코타의 셰일산지는 종말론적 분위기에 묻혔다. 파산하는 석유업자들이 속출했다.

 

전쟁은 죽은자와 산자를 걸러 낸다. OPEC과의 가격전쟁에서 많은 셰일 사업자들이 파산하고, 통폐합(M&A)이 이뤄졌다. 강한 생존력을 가진 사업자는 살아 남았다. 미국의 원유생산은 치킨게임이 벌어진지 2년후에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우디가 미국 셰일업자와 공존을 결정하고 가격 상승을 도모한 것일까. 그건 아니다. 살아남은 셰일업자들이 생산 원가를 낮추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사우디를 비롯, OPEC 회원국들은 국가가 나서 전쟁을 벌였지만, 미국의 사업자들은 정부의 도움 없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한 생존법을 찾은 것이다.

미국의 시사평론가 피터 자이한(Peter Zeihan)은 미국 셰일사업자들의 수압파쇄공법 개발이 1차 셰일혁명이라면, OPEC 산유국과의 가격전쟁에서 원가 절감과 신기술 개발을 2차 셰일혁명이라고 평가했다.

 

그래픽= EnergyIn Depth 캡쳐
그래픽= EnergyIn Depth 캡쳐

 

원가 절감은 곧 효율성 제고다. 미국의 셰일 사업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생산 효율성을 높였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 달러가 넘었을 때 셰일 산업은 돈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은행들이 쉽게 대출을 내주었고, 펀딩도 쉬웠다. 셰일오일 생산 초기에 손익분기점이 배럴당 90 달러였지만, 1배럴 생산하면 10달러가 남았기 때문에 제조업 평균 수익률을 넘었다. 셰일오일이 대량생산되면서 손익분기점 75달러가 되었을 때 OPEC이 더 이상 셰일 산업을 두고볼수 없다며 생사를 가르는 전쟁을 걸었다.

셰일사업자들은 허리띠 졸라메기에 나섰다.

일단 물부터 절약했다. 노스다코타 등지는 수자원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물을 재활용했다.

셰일 기업들 사이에 통폐합과 결합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미국 자본주의가 갖는 장점이다.

효율성이 높은 신기술이 개발되었다. 처음엔 작업대 하나에 유정 하나씩 팠는데, 생존조건이 어렵다보니 작업대 하나에 여러 개의 유정을 시추하는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한 번 파쇄(fraction)한 곳에서 다시 파쇄하는 재파쇄(re-fraction) 방법도 알게 되었다. 유정에 물을 채워 석유를 뽑아내는 수공(waterflooding) 기법도 개발되었다. 물 대신에 이산화탄소나 메탄을 주입하는 독특한 방법도 시도되었다. 그 결과 설비 투자 비용이 크게 절감되었다.

셰일 사업자들의 효율성 절감은 생산성을 높여 손익 분기점을 떨어뜨리게 되었다. 셰일산업 손익분기점이 20158월에 배럴당 50달러, 20161140달러로 떨어졌다. 이만 하면 OPEC와 경쟁할만 했다.

 

2014~2015년 국제석유산업에서 벌어진 가격경젱의 최종 승자는 미국 셰일산업이다. 오히려 싸움을 걸었던 산유국들이 위태로워졌다.

OPEC 회원국 가운데 가장 약한 고리였던 베네수엘라가 나가 떨어졌다. 경제가 파탄나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고 볼리바르 지폐는 휴지조각이 되었다.

OPEC 내에서도 사우디에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알제리와 베네수엘라는 감산을 하자고 주장했다. 사우디도 못이기는척, 어느 시점부터 슬그머니 가격지지 정책으로 방향을 돌렸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OPEC과 미국 셰일 사업자와의 가격전쟁에서 한국은 피해자였다. 국제유가가 떨어지니,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입장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 하지만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튀었다. 현대·대우·삼성등 중공업 회사들이 조선 경기가 침체하자 해상유전 시추플랜트들을 많이 수주받았는데, 해외 발주처들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게 된 것이다. 해상유전 사업의 손익분기점은 육상유전에 비해 크게 높은데, 이 사업자들이 원가경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한국의 중공업회사에 발주한 설비에 하자를 걸어온 것이다. 우리나라 굴지의 중공업 회사들은 수조원의 손실을 내게 된다. 그 여파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이제 미국은 사우디와 중동 산유국들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다. 2015년 사우디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을 융숭하게 대접하고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홀대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사우디는 미국의 제1 원유수입국의 지위를 잃었다. 미국이 중동산 원유 수입을 줄이면서 수송비가 싼 캐나다로 수입선을 돌렸다. 2017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 무려 3,80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받아 냈다. 여기에 1,100억 달러의 무기구매도 포함되어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은 그의 허풍에서 나온 게 아니다. 국내에서 충분한 원유가 생산되므로, 너희 기름 더 이상 쓰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이런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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