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상영한 007 시리즈 ‘카지노 로얄’에 첨단금융기법이라는 공매도에 관한 얘기가 등장한다.

악당 르치프레(매즈 미켈슨 역)는 테러리스트로부터 자산을 위탁받아 투자수익을 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는 신을 믿느냐는 테러리스트 두목의 말에 “투자 수익만 믿는다”고 대답한다. 르 치프레는 자금을 받아 스카이플릿 항공사의 주식 100만주를 공매도한다. 주변에선 이 회사의 주가가 앞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증권사 평가를 언급하며 말리지만, 르치프레는 일을 진행한다.

르치프레는 스카이플릿에 주가가 떨어지도록 의도적으로 악재를 만들려고 시도한다. 그는 부하를 시켜 스카이플릿이 신형 항공기를 공개하는 행사장에서 비행기 폭파 사고를 내도록 음모를 꾸민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가 나타나 사고를 방지하고 스카이플릿 주가는 떨어지지 않는다. 르치프레는 1억5,000만 달러의 거액을 잃게 된다. 이 악당은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도박판에 뛰어든다는 내용이다. 영화 속 얘기지만, 비행기를 폭파해 악재를 만드는 스토리가 공매도 세계의 악명을 드러낸다.

 

 

공매도(空賣渡, short selling)는 한자말 그대로 풀이하면 '없는 것을 판다'는 뜻이다.

즉 물건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판다는 의미다. 공매도 투자자는 유가증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낸다. 투자자가 주가하락을 예상할 때 시세차익을 노리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국제유가가 급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원유 선물시장에서 배럴당 30달러에 선물을 빌려 매도한다. 기름값이 27 달러로 떨어지면 선물을 사서 돌려준다. 이 투자자는 30달러에 팔고 27달러에 샀으니, 10% 남짓 차익을 챙기게 된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유가가 33달러로 오르게 되면 그만큼의 손해를 보게 된다. 공짜는 없다. 정교한 판단력과 시장을 주도할 자금력이 있어야 한다.

공매도 세력이 주식을 파는 것을 숏세일(short sale), 사는 것을 숏커버링(short covering)이라고 한다.

 

 

금융당국이 제임스 본드처럼 공매도를 못하게 했다. 제임스 본드가 악재의 소지를 제거한데 비해 금융당국은 공매도 금지를 연장한 것이 다를 뿐이다.

금융위원회는 3일 회의를 열어 3월 15일로 시한이 다가오는 공매도 금지조치를 5월 2일까지 한달반 가량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5월 3일부터 코스피200·코스닥150 지수 구성종목에 한해 공매도 재게를 허용키로 했다.

우리 증시에서 지목되는 잠재적 악당은 외국인 투자자 또는 기관투자자들이다. 동학개미로 일컬어지는 소액투자자들이 거대 기관투자자들의 공매도를 우려하면서 3월 15일 이후에도 공매도 금지조치를 연장해 달라고 요구했고, 표를 의식한 집권여당 의원들도 공매도 금지 연장을 요구했다. 4월 보궐선거가 지나서 해제하겠다는 것이다.

공매도 금지조치는 지난해 3월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증시가 폭락할 때 정부가 6개월간 시행했고, 이후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6개월 더 연장했다. 이 기간 중에 국내 증시는 저점 대비 2배 가까이 올랐다.

이제는 이 금지조치를 풀어야 할 때가 되었다. 공매도를 금지한다고 주가하락을 저지하는 것도 아니고, 공매도를 푼다고 주가를 하락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공매도는 시장을 활성화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뿐이다.

이날 금융위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 가운데 공매도 재개가 불가피하다는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위는 금지조치 연장의 이유를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다만 그 사이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지적에 대해 제도를 개선하겠다고만 했다. 여론에 떠밀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