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북미식민지의 통화 대립, 독립운동 비화
영국과 북미식민지의 통화 대립, 독립운동 비화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02.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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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 이모저모③…식민지 초기에 담배, 왐펌 등이 교환수단

 

미국 동부 지역은 유럽 국가의 회사에 의해 건설되었다. 버지니아는 영국의 버지니아 회사(Virginia Company), 매사추세츠주는 플리머스 회사(Plymouth Company), 뉴욕은 네덜란드의 서인도회사(Dutch West India Company)에 의해 개척되었다. 뉴욕은 버지니아(1607)와 매사추세츠(1621)과 비슷한 시기인 1624년에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개척되었다.

영국은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허리를 자른 네덜란드 식민지에 경제적, 군사적 압박을 가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651년 항해조례다. 영국은 이 조례를 통해 자국 식민지에서 영국 배에만 화물을 싣고, 영국으로만 수송하며, 영국 세관을 통과하도록 했다. 항해조례는 결국 전쟁을 유발했는데, 1664년 영국은 마침내 뉴욕을 점령하게 된다. 뉴욕은 네덜란드인들이 40년간 통치하다가 빼앗겼다. 이로써 북쪽 메인에서 남쪽 조지아까지 13개 주가 영국의 식민지로 떨어진다.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는 스페인의 식민지와 달리 약탈보다는 이민과 경제적 이득을 위해 건설되었다. 이민자들은 초기 생존의 위기에서 벗어난 후 교역을 통해 이득을 챙기고 부를 획득해 나갔다. 교역은 화폐를 동반했다. 하지만 영국은 식민지를 통제하기 위해 식민지에 은행 설립을 제한하고 화폐의 수출을 금지했다. 이런 제한 속에서 교역은 이뤄졌고, 식민지인들은 인디언의 화폐 또는 상품을 교환수단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왐펌 /위키피디아
왐펌 /위키피디아

 

초기 아메리카 식민지의 화폐는 상품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뉴암스테르담(뉴욕)에서 인디언 원주민들과 거래하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조개화폐 왐펌(wampum)을 사용했다. 검정색 조개껍질이 흰색보다 비쌌다. 흰색 왐펌 8개는 검은색 왐펌 4개와 같은 가격으로, 네덜란드 화폐 1스투이베르(Stuiver)로 교환되었다. 약삭빠른 사람은 흰색 조개를 검게 물들여 속이기도 했다. 뉴잉글랜드에서도 1637~1661년 사이에 왐펌이 법정통화로 인정되었고, 뉴저지, 델라웨어, 버지니아에서도 왐펌이 교환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왐펌은 해안지역에서만 생산되었다. 인디언들은 석기를 사용해 힘들게 왐펌을 채취했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었다. 인디언들은 날카로운 송곳으로 왐펌에 구멍을 뚫어 줄에 꿰어 이용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인들이 위조 웜펌을 만드는 공장을 건설하면서 왐펌의 가치는 하락하고, 일종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이후 식민지에서 새로운 교환수단이 대체되면서 왐펌은 화폐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남부 버지니아에선 주력 생산품인 담배가 화폐로 사용되었다. 담배는 운송하기 어려워 교환수단으로는 불편했다. 게다가 시세가 자주 변하기 때문에 교환가치도 변동했다. 1680년대에 세계적인 과잉생산으로 담배 가격이 폭락하는 바람에 가치를 상실하기도 했다. 이후 식민당국이 품질기준을 까다롭게 규제하는 바람에 가격이 상승하고, 담배가 다시 교환수단으로 활용되었다. 1696년에 버지니아의 성직자는 1년에 급료로 담배 7,300kg을 받았다. 버지니아 의회는 1700년대초에 담배로 세금을 내고, 공채를 상환하는 법정통화로 공인했다.

1730년 버지니아 주는 농장주가 생산한 담배를 수매해 창고에 저장한 후 창고증권을 발행했다. 이 창고증권이 은행권 역할을 했다. 메릴랜드도 버지니아의 사례를 따라 창고증권을 발행해 통화로 대용했다.

인디언들과 거래하는 지역에서는 비버(beaver) 가죽을 교환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당시 비버 가죽은 모피의 소재였고, 유럽인들이 선호하는 제품이었다.

 

1652년 발행한 소나무 실링 /위키피디아
1652년 발행한 소나무 실링 /위키피디아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최초로 주화를 발행한 곳은 다른 지역보다 제조업과 상업이 발달한 매사추세츠였다.

1652년 매사추세츠만 식민당국은 은세공업자인 존 헐(John Hull)을 재무관으로 초빙하고 은을 녹여 동전을 만들게 했는데, 이를 소나무 실링(Pine tree shilling)이라고 불렀다. 3펜스와 6펜스 짜리가 발행되었고, 영국 스털링 동전보다는 20% 정도 작았다. 그 안에는 소나무를 그렸다.

영국 정부는 처음엔 식민지의 동전발행을 묵인했고, 소나무 실링은 30년간 통용되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1682년에 매사추세츠의 조폐 금지령을 내렸다.

본국이 식민지에 대한 통화정책을 강화하자 아메리카에선 스페인 달러를 도입했다. 17세기에 스페인이 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 해상패권을 주고 있었고, 스페인 달러는 사실상 국제통화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스페인 달러는 당시 캐다다 달러, 일본 엔, 중국 위안, 필리펜 페소가 기준통화로 삼고 있었는데,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도 스페인의 통화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스페인 달러는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유통되는 화폐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식민지는 영국과의 교역에서 무역적자를 냈기 때문에 정화(正貨)였던 스페인 달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미국이 독립한 이후 영국의 파운드를 통화단위로 사용하지 않고 달러를 채택한 것은 스페인 달러의 영향이다.

 

1764년 벤자민 프랭클린이 인쇄한 펜실베이니아주 3펜스 지폐 /위키피디아
1764년 벤자민 프랭클린이 인쇄한 펜실베이니아주 3펜스 지폐 /위키피디아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최초의 지폐가 발행된 시기는 1690년이었다. 9년 전쟁 또는 윌리엄 왕의 전쟁(1688~1697)은 북아메리카의 영국과 프랑스 식민지에서 전개되었다. 영국은 매사추세츠에서 군대를 징발하면서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매사추세츠 식민지에 나중에 군대 급료를 약속하는 신용증서의 발행을 허용했다. 매사추세츠 식민지는 화폐와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증서를 발행했는데, 이 증서로 공공요금을 납부할수 있었고 뉴잉글랜드 재무국에서 법정화폐로 인정되었다. 이 증서는 서양 최초의 지폐로 기록된다.

이후 북아메리카 식민주들은 각기 지폐를 발행했다. 불환지폐였기 때문에 금이나 은으로 교환되지 않았다. 통화단위는 파운드로 발행되었지만, 각주별로 파운드의 가치가 달랐다. 북부 뉴잉글랜드의 파운드 가치가 남부주들보다 높았다.

각주는 필요 이상으로 지폐를 발행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지폐의 가치가 떨어졌다. 그나마 펜실베이니아주만이 토지를 담보로 지폐를 발행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했다. 매사추세츠는 지폐 가치가 떨어지자 다시 스페인 달러를 수입해 통용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선 1730년대에 무려 17종의 법정통화가 유통되었다. 영국 통화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영국이 국외반출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경제는 본국을 닮아갔다. 사는 곳이 달랐기 때문에 그들은 영국인이라기보다 아메리카인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1700년대 중반에 식민지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자체 금융질서와 통화를 필요로 했다. 영국 상인과 아메리카 상인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영국 상인들은 아메리카에 대출한 돈에 식민지 지폐로 상환받기를 거부했다.

이에 런던의 의회는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1751년 통화법(Currency Act)을 제정했다. 이 법안에 의해 북부 뉴잉글랜드 식민지의 지폐발행이 금지되었다. 기존에 유통되는 지폐는 세금납부 등 공적인 목적에는 사용할수 있지만, 사인간 거래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어 1764년에 영국의회는 2차 통화법을 의결, 남부 식민주에대해서도 지폐발행을 금지했다.

본국과 식민지간 통화를 둘러싼 대립이 격화되었다. 그런 가운데 아메리카 식민지의 인구는 급팽창했다. 1750년 인구는 117만명이었는데, 20년 후인 1770년엔 213만명으로 갑절로 늘어났다. 영국 본국과 식민지 아메리카의 대치는 결국 독립운동으로 확대된다.

 


<참고자료>

Wikipedia, Early American currency

Wikipedia, Wampum

Wikipedia, Pine tree shilling

Wikipedia, Spanish do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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