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독립전쟁에 컨티넨털 지폐 남발…인플레 초래
美 독립전쟁에 컨티넨털 지폐 남발…인플레 초래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02.0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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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 이모저모④…전쟁비용 조달, 영국의 위폐 배포로 공세

 

미국 독립전쟁(1775~1783)에서 아메리카군은 홈그라운드에서 싸웠고, 영국군은 5,000km나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치러야 했다. 영국은 본국과 연락하는데 3개월이나 걸렸다. 독립군은 지형지물을 충분히 활용할수 있었다. 전투에서는 독립군이 유리했다.

하지만 전쟁을 치르는데는 비용이 필요했다. 영국은 당시 세계 최강의 나라로 재정적으로 아메리카 정부에 비해 월등히 유리했다.

독립전쟁 당시 13개 주는 제각기 독자적인 정부를 구성했다. 13개 나라로 구성된 아메리카 연방정부는 세금을 징수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세수를 조달하는 길이 막혀 있었다. 각 주정부에게 일정 금액을 할당해 충당했는데 세수는 세출의 60%에 불과했다. 이 돈으로 전쟁을 치르는데 한계가 있었다.

연방정부는 해외에서 차입을 했다. 영국과 적대적인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식민지 정부에 차관을 빌려주고, 탄약과 총기류도 지원했다.

연방정부는 차관으로도 부족한 부분은 지폐 발행을 통해 조달했다. 그때 발행한 지폐가 컨티넨털 지폐’(Continental currency banknotes)였다.

 

1779년에 발행된 55달러 컨티넨털 지폐 /위키피디아
1779년에 발행된 55달러 컨티넨털 지폐 /위키피디아

 

컨티넨탈 통화는 1775년부터 1779년까지 발행되었다. 발행지폐는 1/8 달러 짜리에서 80달러 짜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발행총액의 액면가는 24,1552,780 달러였다. 이 금액은 당시 미국 경제 규모로는 엄청난 액수였다.

컨티넨털 지폐는 금이나 은으로 교환되지도 않는 불환지폐였다. 게다가 연방정부 뿐 아니라 각 주정부도 경쟁적으로 지폐를 찍어 내는 바람에 통화가 남발되었다.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대륙군은 전략전술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지만, 연방정부는 돈을 만들어내는데는 미숙했다. 이 틈을 이용해 영국은 위조지폐를 남발했다. 인쇄술은 영국이 탁월했다. 영국군은 점령지 뉴욕서 컨티넨탈 위조지폐를 찍어 유통시켰다. 미국의 건국 지도자 벤자민 프랭클린은 영국이 미술가를 고용해 막대한 양의 위조지폐를 뉴욕에서 찍어내 유통시켰다, “이 사실을 나중에 적발했지만, 그땐 상당한 양의 지폐가 각 주에 유통되었고, 돈의 가치는 떨어졌다고 술회했다.

연방정부나 각 주정부는 지폐를 받아들이는데 인색했다. 세금으로라도 지폐를 수용했으면 어느정도 가치를 보전할수 있었을 것이다.

 

1달러 짜리 컨티넨털 지폐 /위키피디아
1달러 짜리 컨티넨털 지폐 /위키피디아

 

돈의 가치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1778년말 컨티넨털 지폐의 가치는 액면가의 5분의1 내지 7분의1로 떨어졌고, 1780년에는 40분의1로 하락했다. 연방의회는 구지폐를 폐기하고 신지폐를 발행하려 했지만, 그나마 실패했다. 1781년 컨티넨털 지폐는 완전히 가치를 상실했다. 연방의회는 증서의 가치를 액면가의 2.5%로 떨어뜨렸지만, 아예 유통되지 않았다. 1790년대 미국 의회는 컨테넨털 지폐를 국채로 바꿔 주었는데, 액면가의 1%만 인정했다.

그렇다고 이 지폐의 역할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컨티넨탈 지폐는 소지자들로 하여금 강제적으로 전쟁비용을 납부케 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신생 국가의 국민들은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헌금을 낸 셈이다.

퀘이커 교도들은 평화주의자였기 때문에 전쟁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총회에서 컨티넨털 지폐를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컨티넨털 화폐의 실패는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냈다. ‘not worth a Continental’이란 관용구가 미국인의 사전에 등장했는데, "한 푼의 값어치도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1804년 미국의 은화 달러 /위키피디아
1804년 미국의 은화 달러 /위키피디아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헌의회는 금과 은에 관한 규정을 헌법에 삽입했는데, 이 규정에 따라 주 정부의 지폐발행이 금지되었다. 1792년 주화법(Coinage Act)에 의해 미국은 금본위제도로 이행한다.

 

초대 재무장관에 취임한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의 통화 단위를 어떻게 표시할지를 논의했다. 초기의 건국지도자들은 영국 파운드를 사용할 것인지, 새로운 통화단위를 채택할 것인지를 검토했다. 독립 이전까지 사용하던 파운드, 스페인 달러 등 다양한 통화단위를 놓고 최대공약수를 찾아낸 것이 달러였다.

달러란 단위는 합스부르크 영지였던 보헤미아(체코)의 요아힘스탈 은광에서 은화를 주조하면서 그곳의 지형인 계곡(thal)에서 기원한다. 합스부르크가가 스페인을 통치하면서 스페인이 은화 단위로 탈러(thaler)를 사용했다. 당시 스페인과 합스부르크가 세계 패권국이었기 때문에 탈러는 국제통화였고,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통용되었다. 탈러는 영어로 달러(dollar)로 표기되었다.

1785년 미국 연방의회는 미국의 화폐단위를 달러라고 선언했다.

건국지도자 토머스 제퍼슨은 돈을 편리하게 쓰기 위해 십진법으로 하위 단위를 만들어야 한다며, 달러의 10분의1 단위로 다임(dime), 100분의1 단위로 센트(cent)를 입안했다. 스페인 달러는 8진법을 썼는데, 하위단위가 8분의1, 4분의1, 2분의1 단위의 단위로 지칭되었다. 신생 미국은 스페인 달러에서 통화단위를 채택하면서도 운용에서는 십진법이라는 보다 효율적인 단위를 선택한 것이다.

 


<참고자료>

Wikipedia, Early American currency

Wikipedia,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do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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