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허약한 왕권, 사무엘에 견제당하다.
사울의 허약한 왕권, 사무엘에 견제당하다.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2.1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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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 없이 번제 지낸 일, 아말렉 왕을 살려준 일로 위기

 

사울(Saul)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이스라엘 왕국 최초의 국왕이다. 하지만 성서 이외에 고고학적 증거나 문헌적 자료에 사울이 확인되지 않는다. 이슬람의 코란에는 탈루트(Tālūt)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사울은 유대인의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성서 저술자들의 윤색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인물로 파악된다.

구약성서는 사울이 어느날 갑자기 왕이 되는 것으로 서술한다. 사울은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다니다가 사사(판관)인 사무엘을 만난다. 사무엘은 사울이 야훼가 정한 이스라엘 왕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왕으로 추대한다. 그는 길갈(Gilgal)에서 즉위식을 갖는다.

사무엘기에 사울의 즉위식 장면이 나온다. “온 백성이 길갈에 가서 그곳에 계시는 주님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세웠다. 그들은 거기서 짐승을 잡아서 주님께 화목제물로 바쳤다. 거기에서 사울과 모든 이사엘 사람들이 함께 크게 기뻐하였다.” (사무엘상 11:15)

 

사울은 외적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했다. 암몬(Ammon)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블레셋을 쳐부수었다. 모압(Moab), 에돔(Edom)과 아말렉(Amalekites)도 제압했다.

그런데 사울은 두가지 잘못을 저지른다.

첫 번째로,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왔을 때 사울은 신의 대리인 사무엘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자 사람들을 시켜 자신이 직접 번제를 올렸다. 나중에 사무엘이 와서 사울을 꾸짖으며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면서 야훼가 명한 것을 왕이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사무엘상 13:8~14)

번제와 같은 제사는 제사장이 할 일인데 국왕이 지냈다는 것이다. 사무엘은 이 사건을 이유로 사무엘의 자손에게 왕위계승권을 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사울의 왕권이 아직도 제사장의 신권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두 번째로 사울이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아말렉의 왕 아각(Agag)을 살려주고 아말렉의 짐승과 양들 가운데 기름지고 좋은 것들을 죽이지 않았다. 사울의 조치는 전략전술일수도 있다. 상대방 왕을 살려주는 것은 적국에 대한 유화정책의 일종이요, 전리품인 가축을 가져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사울의 행동에 야훼를 거역했다고 사무엘이 꾸짖는다. 야훼는 아말렉 사람들과 가축을 모두 죽이라고 했는데 사울이 살려주었다는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을 비난하며 야훼가 이스라엘을 당신보다 더 낳은 사람에게 주셨다고 말했다. 왕위 교체를 선언한 것이다. (사무엘상 15)

초대 왕 사울의 권력은 허약했다. 제사장이 왕의 머리위에 있었던 것이다. 제사장이 없는 틈에 번제를 지낸 것도 죄이고, 전리품을 살려둔 것도 죄가 되었다.

특히 후자, 즉 아말렉의 왕과 가축을 살려준 것이 왕위 교체의 명분이 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일부 성경 연구자들은 사울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완승을 하지 못해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신권 대리인들이 반발한 것으로 해석한다.

 

사울왕 곁에서 하프를 타는 다윗 (Ernst Josephson) /위키피디아
사울왕 곁에서 하프를 타는 다윗 (Ernst Josephson) /위키피디아

 

사무엘은 사울을 대체할 왕을 찾는다. 그 왕이 다윗(David)이다. 사울이 베냐민 지파 소속인데 비해 다윗은 유다 지파 소속이다. 성서는 사울의 거역을 왕권 교체의 이유로 설명하지만, 현실의 세계에서는 지파간 대립이 왕권투쟁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다 지파는 남쪽의 종주국이고, 베냐민 지파는 북쪽의 종주국 역할을 했는데, 전쟁을 치르면서 지파간 분열이 생긴 것이다.

성서에 다윗은 총명하고 지혜로운 인물로 묘사된다. 사울과 다윗의 인연은 두 가지로 설명된다.

사울은 음악을 좋아했고, 골치가 아프면 음악을 들었다. 다윗은 하프(harp)를 잘 탔다. 사울이 하프를 잘 타는 사람을 천거해 올리라고 해 다윗이 뽑혀 사울 왕의 측근이 되었다.

또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Goliath)과의 전투에서 다윗이 승리하면서 사울의 사위가 된다. 다윗과 골리앗 전투는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다윗이 칼도 갑옷도 없이 무릿매(sling)로 돌을 날려 골리앗의 눈을 맞춰 쓰려뜨렸다는 내용은 많은 사람들을 흥분케 했다.

 

다윗과 골리앗 (Osmar Schindler, 1888) /위키피디아
다윗과 골리앗 (Osmar Schindler, 1888) /위키피디아

 

사울은 패전 왕이 되었고 다윗은 승전장군이 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울은 수천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명을 죽였다고 노래했다. 시기심에 불탄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로 한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기로 한 것을 사울의 아들 요나단(Jonathan)이 가르쳐줘 다윗은 도망간다. 코란에는 사울의 딸이자 아내인 미갈(Michal)이 아버지의 박해를 몰래 알려주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다윗을 위협하는 사울왕 (José Leonardo) /위키피디아
다윗을 위협하는 사울왕 (José Leonardo)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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