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코란과 에티오피아 버전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코란과 에티오피아 버전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2.23 1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멘 지역의 여왕…에티오피아에선 솔로몬 후손이 2천년간 지배

 

솔로몬왕과 시바 여왕의 스토리는 구약성서는 물론 코란, 에티오피아의 전설에도 동시에 등장한다. 세가지 버전은 대상 인물이 동일하다는 것을 빼면 내용은 각각 달리 전개된다. 에티오피아에선 솔로몬왕과 시바 여왕이 낳은 후손들이 오랫동안 왕조를 이어 나갔다.

시바(Sheba)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아라비아 남부 예멘과 홍해 건너편 에티오피아를 다스리던 고대 왕국의 이름이다. 사바 왕국(kingdom of Saba)이라고도 한다.

시바 또는 사바 왕국은 홍해를 중심으로 한 무역국가였다. 시바의 여왕의 이스라엘 방문은 무역 활동을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솔로몬과 시바 여왕 (Giovanni De Min) /위키피디아
솔로몬과 시바 여왕 (Giovanni De Min) /위키피디아

 

코란 버전

코란에서 솔로몬왕은 술라이만(Sulayman)이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은후 예멘 일대에 또다른 성전을 짓기 위해 물줄기를 찾았다. 그때 후투티(Hud-hud)라는 새가 사바(Saba) 지역에 한 여왕이 통치하고 있는데, 그곳에는 없는 물건이 없고, 거대한 옥좌도 있다. 그런데 여왕은 알라를 숭배하지 않고 태양을 숭배하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코란에서 솔로몬은 동물들의 말도 이해하는 능력을 기잔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솔로몬은 후투티 새에게 사바의 여왕에게 전달할 편지를 주었다. 그 편지에는 너희들은 오만하고 무례하게 행동하지 말고 나를 찾아와 명을 따르라고 쓰여 있었다.

솔로몬의 편지를 받고 사바의 왕족과 대신들 사이에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자는 주장이 강하게 나왔다. 하지만 여왕은 솔로몬이 이성과 지혜를 지낸 사람이므로, 화해를 하는 것이 옳다고 결정했다.

여왕은 사신을 솔로몬왕에게 파견했다. 사신은 솔로몬왕에게 공몰로 바칠 진귀한 물건을 가지가 예루살렘에 왔다. 사신들은 솔로몬왕의 궁전의 장엄함에 놀라면서 솔로몬의 인자한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여왕의 사신이 공물을 바치자 솔로몬은 공물을 물리치며 다시 가져가라고 했다.

사신이 왕국으로 돌아가 여왕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하니, 여왕은 솔로몬을 예방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여왕은 수행단을 이끌고 이스라엘로 떠났다.

여왕이 출발한 직후 솔로몬은 신령들에게 여왕의 옥좌를 가져오게 했다. 옥좌가 도착하자 솔로몬은 옥좌의 모양을 바꾸고 훌륭하게 치장했다.

여왕이 솔로몬왕을 접견할 때 솔로몬은 새로 단장한 옥좌에 앉게 했다. 여왕은 솔로몬의 배려에 감복하고, 궁전의 화려함에 다시 놀랐다.

여왕은 이스라엘에 귀순하고 태양신을 버리고 알라신은 믿게 되었다.

 

솔로몬과 시바 여왕 (Piero della Francesca) /위키피디아
솔로몬과 시바 여왕 (Piero della Francesca) /위키피디아

 

구약성서

구약성서 열왕기와 역대지에 나오는 스토리로, 한글판에는 스바 여왕으로 번역되어 있다.

구약성서에는 시바 여왕이 솔로몬이 명성을 듣고 여러 가지 어려운 질문으로 시험해 보려고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솔로몬은 여왕이 묻는 온갖 물음에 척척 대답하자 시바 여왕은 솔로몬이 온갖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여왕은 솔로몬의 궁정을 두루 살펴보고 넋을 잃었다.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 왕에게 황금 120 달란트와 많은 향료와 보석을 솔로몬에게 선사했다. 이에 솔로몬은 답례물을 주고, 여왕이 요구하는 대로 가지고 싶어 하는 대로 모두 줬다고 한다.

조공과 하사라는 형태로 일종의 관무역(官貿易)을 행한 것이다.

 

시바 여왕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 /위키피디아
시바 여왕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 /위키피디아

 

에티오피아 전승

에티오피아 고대왕국의 전설을 모은 왕의 연대기’(Kebra Nagast)는 왕국의 시조를 솔로몬왕과 시바의 아들로 설정한다.

여왕의 이름은 마케다(Makeda). 여왕은 어느날 상인으로부터 솔로몬왕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 솔로몬왕을 만났다. 여왕은 솔로몬이 지혜와 학식에 탄복하고, 이제부터 더 이상 태양신을 믿지 않고 태양을 만든 이스라엘의 신을 믿기로 했다. 여왕이 귀국하려는데, 솔로몬이 그녀를 붙잡아 하룻밤을 같이 했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면 주라고 금반지를 선물했다.

여왕은 귀국한 후 메넬리크(Menelik)를 낳았다. 메넬리크는 22살이 되던 해 이스라엘로 가 솔로몬왕을 방문했다. 메넬리크는 반지를 보여 주며 마케다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솔로몬은 아들이 온 것을 기뻐하며 자신의 후계자로 삼겠다고 했다. 메넬리크는 어머니와 살겠다며 되돌아 가겠다고 고집했다.

아들은 언약궤를 보고 언약궤를 덮은 보자기의 자락 한술만 잘라 달라고 했다. 솔로몬은 보자기 전체를 주었다.

솔로몬은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돌려보내면서 여러 가정에서 맏아들을 뽑아 호위병으로 붙여 주었다. 이스라엘의 자식들은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을 못내 서운하며 언약궤를 훔쳐 가지고 갔다. 메넬리크는 언약궤를 훔친 사실을 모른채 귀국길에 올랐다. 도중에 그는 언약궤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언약궤를 잃어버린 솔로몬은 메넬리크를 추격했다. 하지만 신은 메넬리크의 편이었다. 메넬리크 일행은 솔로몬의 추격을 따돌리고 날라서 예멘으로 돌아갔다.

메넬리크가 도착하자 어머니 마케다는 왕위를 아들에게 넘겨줬다. 메넬리크는 언약궤를 앞세워 정복전쟁에 나서 예멘과 에티오피아 일대를 정복했다.

 

악숨 왕국의 범위 /위키피디아
악숨 왕국의 범위 /위키피디아

 

이 메넬리크가 에티오피아 악숨(Axum) 왕조의 건국자 메넬리크 1세다. 악숨 왕조는 BC 80년에서 서기 940년까지 1천년 이상 에티오피아와 예멘 일대를 지배한다. 메넬리크의 후손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여 에티오피아 고원에 기독교 왕국을 건설했다.

에티오피아는 악숨 왕조 붕괴후 혼란기를 거치다가 1270년에 메넬리크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예쿠노 암락(Yekuno Amlak)이 권력을 장악하며 솔로몬 왕조를 열었다. 먼 조상이 이스라엘의 솔로몬왕이라는 것이다. 1974년 공산혁명을 에티오피아에서 제정이 붕괴할 때 강제퇴위한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 황제가 솔로몬 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다. 솔로몬의 후예는 에티오피아를 2천년 가까이 지배한 것이다.

15~16세기초 유럽에 동방에 프레스터 존(Prester John)이라는 기독교 왕국의 왕이 있다는 신화가 퍼졌을 때 그 프레스터 존은 솔로몬 왕조를 일컫는 말이었다. 에티오피아 정교(Ethiopian Orthodox Church)는 오늘날까지 기독교의 한 종파를 유지하고 있고, 에티오피아 인구의 43.5%를 확보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교는 아직도 구약성서의 언약궤를 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