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섬나라⑤…카고컬트 신앙의 바누아투
태평양 섬나라⑤…카고컬트 신앙의 바누아투
  • 김현민기자
  • 승인 2019.05.1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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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프랑스 공동통치…독립과정에서 코코넛 전쟁 벌이지기도

 

바누아투(Vanuatu)는 호주 동쪽 남태평양에 위치한 섬나라가 있다.

이 섬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자들이 공동통치하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어느날, 존 프럼(John Frum)이란 미국인이 타나(Tanna)라는 섬에 상륙했다. 그는 미군용 비행장을 건설하러 돌아다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원주민들에게 신기한 물건들을 보여주었다. 그중에는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는 축음기도 있었다고 한다. 원주민들은 그를 하늘에서 내려온 메시아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화물 신앙(cargo cult)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원주민들의 전통을 존중했고, 곧이어 미국이라는 나라가 나타나 유럽인들을 몰아내고 주민들을 도울 것이라고 예언했다.

앞서 멜라네시아계 원주민들이 사는 이 섬에 카톨릭계 신부와 프로테스탄트계 목사들이 찾아와 기독교도로 개종시키고, 종교의 원칙을 강요했다. 원시 부족인들에게 유럽인들이 전파하는 기독교 원리가 맞을 리 없다. 서양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고, 원주민들의 전통적 종교를 탄압했다.

그런 와중에 프럼이 구세주처럼 나타난 것이다. 프럼은 신비적 천년왕국을 제시했다. 그는 신이 물자(cargo)를 만들어 원주민들에게 주기로 했는데, 유럽인들이 빼앗았다면서 기도를 열심히 하면 스스로 그 화물을 되찾을 것이라고 했다. 유럽인들에게 억압받던 원주민들은 그의 말을 신봉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그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날이 215일이라고 한다. 그가 떠나고 난 후 원주민들은 그의 가르침을 신앙을 받들고, 정당까지 설립했다. 매년 그날만 되면 프럼 신앙자들은 그가 비행기를 타고 다시 올 것이라며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이 신비주의적인 신앙은 역설적으로 바누아투 원주민들의 자의식을 일깨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더 이상 총과 대포를 갖고 있는 유럽인들에게 굴복할 필요가 없다는 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바누아투 나타섬의 카고 컬트의 십자가 /위키피디아
바누아투 타니섬의 카고 컬트의 십자가 /위키피디아

 

바누아투는 1606년에 포르투갈의 탐험가 페드루 페르난데스 지 케이로스(Pedro Fernandes de Queirós)가 처음 발견했고, 1774년에 영국의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이 섬에 '뉴헤브리디스'(New Hebrides)라는 이름을 붙였다.

1825년에 에로망고 섬에서 약재로 쓰이는 백단향(sandalwood)이 발견되어 유럽인들이 이곳을 몰려 들었다. 백단향은 고급 향수의 원료로 사용되었는데, 이문이 많이 남았다. 호주, 피지, 뉴칼레도니아, 사모아에 있던 유럽인들이 대거 백단향 재배을 위해 이 군도에 이주하면서 노동력이 부족했다. 유럽인들은 인근 섬에서 원주민들을 납치해오다시피 끌고 왔다. 유럽인들은 글자를 모르는 원주민들에게 노동계약서에 서명케 하고, 인간 이하로 노동을 시켰다. 검은 새를 잡듯 원주민을 끌고 왔다고 해서 블랙버딩(blackbirding)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이주 노동자가 가장 많았을 때는 섬의 성년 절반이 외부에서 온 사람으로 채워졌다.

19세기 들어 구교인 카톨릭과 신교인 프로테스탄드 선교사들이 모두 이 섬에 들어와 선교 경쟁을 벌였고, 면화 재배를 시작했다. 면화값이 폭락하자 코코아 재배로 넘어갔다. 프랑스와 영국인들이 떼지어 몰려왔는데, 20세기가 시작할 무렵에 프랑스인들이 영국인보다 두배로 많았다.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이 경쟁적으로 섬을 하나씩 차지하며 원주민들을 착취했다. 그러다 1887년 두나라 이주자들은 양국 국민의 보호를 위한 공동해군협정을 맺었다. 1906년 영국과 프랑스는 이 군도에 대해 공동통치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서 원주민 멜라네시아인들의 시민권은 배제되었다. 유럽인들만의 협약이었다.

 

영국-프랑스 공동통치 시기의 국기 /위키피디아
영국-프랑스 공동통치 시기의 국기 /위키피디아

 

태평양 전쟁 중에 미군이 뉴헤브리디스 군도에 상륙했다. 타나섬에서 번지던 카코 컬트 신앙자들은 미군이 가져온 화력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공수 물자에 놀랐다. 그들은 존 프롬이 예언한 미국과 대량의 물자가 마침내 왔다고 믿게 되었다.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의 힘이 약화되었고, 독립운동의 기운에 높아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1980730일부로 뉴헤브리디스 군도를 독립시키기로 합의했다. 주민들은 독립에 앞서 선거를 실시해 의회를 구성하고, 영어권 출신의 목사 월터 리니(Walter Lini)를 총리로 선출했다.

그런데 예정된 독립일을 두달 앞둔 6월초 프랑스계의 지원을 받는 지미 스티븐스(Jimmy Stevens)가 반란을 일으켜 에스피리투 산토(Espiritu Santo) 섬을 장악하고 베머라나’(State of Vemerana)라는 나라를 세웠다.

이에 임시정부의 총리 당선자 월터 리니가 영국과 프랑스에 병력 동원을 요청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리니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에 월터 리니는 이웃 멜라네시아 국가인 파푸아뉴기니에 병력지원을 요청했다. 파푸아뉴기니는 병력을 투입해 에스피리투 산토 섬으로 진입했다. 이 전쟁을 서방언론에서 코코넛 전쟁’(Coconut War)이라 명명했다.

전쟁은 싱겁게 끝났다. 스티븐스의 반란군은 전통적 활과 돌멩이, 새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래도 파푸아뉴기니군은 총을 보유했다. 8월 하순, 반란군의 수괴 스티븐슨의 아들을 태운 차량이 파푸아뉴기니군의 검문에 걸렸다. 반란자들은 도망가려 했다. 파푸아뉴기니군은 총격을 가해 스티븐슨의 아들을 죽였다. 스티븐슨은 곧바로 자수하고 반란군을 해체했다. 그의 아들 이외에 죽은 자는 없었고, 부상자도 극히 적었다. 스티븐슨은 재판에 넘겨져 14년형을 받았다.

 

전통복을 입은 바누아투인들 /위키피디아
전통복을 입은 바누아투인들 /위키피디아

 

국가 명칭은 바누아투공화국(Republic of Vanuatu)이다. 바누아투는 현지어로 토지라는 의미다.

면적은 12,200, 경기만하다. 80개 이상의 부속 섬이 있으나, 65개가 무인도이다. 인구는 2016년 기준으로 27만명선이다. 수도는 포트빌라(Port Villa).

종족 구성은 멜라네시아인인 니바누아투(Ni-Vanuatu)인이 94%를 차지하고 그 외 유럽인(4%)과 기타 종족이 있다.

국가 형태는 공화국이고 정부 형태는 의원내각제로 단원제 의회다. 국가수반은 의회에서 선출하며, 행정은 총리가 행사한다.

1981년 유엔에 가입했다. 우리나라는 1980115일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주 파푸아뉴기니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1981101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영국-프랑스 공동통치 시기의 국기 /위키피디아
영국-프랑스 공동통치 시기의 국기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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