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왕국의 분열…북부, 부역 과세에 반발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북부, 부역 과세에 반발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2.2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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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10개 지파, 이스라엘 왕국으로 독립…유다와 베냐민만 유다왕국

 

솔로몬왕은 무려 700명의 후궁과 300명의 첩을 두었다고 한다. (열왕기상 11:3) 약간은 과장이 있을 것이다.

솔로몬의 아내 중 한 사람이 이집트 파라오의 딸이었다. 이집트 역사와 대조해 보면 솔로몬을 사위로 맞은 파라오가 아멘호텝 3(Amenhotep III) 또는 싯아문(Sitamun)으로 추정된다. 솔로몬이 이집트 공주를 아내로 맞은 것은 이집트와의 우호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파라오는 게셀(Gezer)을 점령한 적이 있는데 딸의 지참금으로 그 땅을 솔로몬에게 돌려 주었다. 솔로몬은 전쟁을 치르지 않고 결혼을 통해 땅을 수복한 것이다.

 

솔로몬왕과 파라오의 딸 /위키피디아
솔로몬왕과 파라오의 딸 /위키피디아

 

구약성서 열왕기에 솔로몬은 외국 여자들을 좋아했다고 쓰여 있다. 파라오의 공주와 결혼했듯이 주변국들과 결혼정책을 통해 우호관계를 맺은 것이다. 그가 왕비를 데려온 족속은 모압(Moab), 암몬(Ammon), 에돔(Edom), 시돈(Sidon), (Hittites) 등이라고 열왕기에 나열되어 있다. 모두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부족국가다.

솔로몬왕 시절의 이스라엘은 제국적 팽창을 하고 있었다. 다윗은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다면 솔로몬은 교역을 통해 국가의 역량을 키워 나갔다. 그 방편으로 결혼정책을 채택했다고 볼수 있다.

솔로몬의 시대는 BC 1000년경, 즉 지금부터 3천년전이다. 그때 세계는 종교의 시대였다. 각 나라와 부족은 종교를 중심으로 통치를 했고, 종교가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솔로몬이 다른 나라와 교역하고 우호관계를 맺기 위해 결혼정책만으로는 부족해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너그러웠다. 이웃 나라의 종교와 타협하지 않으면 전쟁이 날 수밖에 없다.

 

솔로몬왕과 부인들 (Giovanni Battista Venanzi, 1668) /위키피디아
솔로몬왕과 부인들 (Giovanni Battista Venanzi, 1668) /위키피디아

 

후대의 구약성서 저술자들은 정통유대교도이자 야훼 신봉자들이었다. 그들의 눈엔 솔로몬이 다른 종교를 허용하는 것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유대 저술자들은 구약성서에 솔로몬을 이렇게 비판했다.

솔로몬이 늙으니, 그 아내들이 솔로몬을 꾀어서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다. 그래서 솔로몬은 자기의 주 하나님께 그의 아버지 다윗만큼 완전하지 못하였다.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암몬 사람의 우상 밀곰을 따라가서 주님 앞에서 악행하였다. 그는 그의 외국인 아내들이 하자는 대로, 그들의 신에게 향을 피우며 제사를 지냈다. 이와 같이, 솔로몬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떠났으므로,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다.” (열왕기상 11:4~6)

구약성서 저술자의 해석은 솔로몬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왕국을 떼어서 신하들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북부 이스라엘 왕국과 남부 유다왕국 /위키피디아
북부 이스라엘 왕국과 남부 유다왕국 /위키피디아

 

솔로몬이 죽은 후 이스라엘 왕국은 북부와 남부로 분열된다. 성서 저술자들은 솔로몬이 이국의 신을 따랐기 때문에 왕국이 분열되었다고 규정했다. 이러한 해석은 다분히 종교적인 견해일 뿐, 실제의 세계에선 지파의 대립에서 왕국이 분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파간 대립의 흔적이 성서에도 발견된다.

 

솔로몬이 성전과 궁궐, 예루살렘 성벽, 지역의 요새를 건설할 때 부역을 시켰다. 열왕기엔 솔로몬이 아모리, ,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들을 부역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누구도 노예로 삼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솔로몬은 유다 지파 이외의 이스라엘 사람도 부역에 동원했다는 게 구약성서에 나온다. 공사감독관인 에브라임 지파 출신인 여로보암(Jeroboam)이 솔로몬 사후에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Rehoboam)에게 이렇게 말한다.

임금님의 아버지(솔로몬)께서는 우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셨습니다. 우제 임금님께서는 임금님이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지워 주신 중노동과 그가 우리에게 메워 주신 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주십시오.” (열왕기 12:4)

결론적으로 솔로몬이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주변 국가와 유화적 관계를 맺고 내부적으로는 유다 이외의 지파에 대해 강압적 통치를 한 것이 왕국 분열의 원인이다.

여로보암은 북부 10개 지파를 대변해서 부역과 세금의 경감을 요구했고, 솔로몬을 이은 르호보암은 그 요구를 거절한다. 결국 조세문제로 인해 왕국이 분열되는 것이다.

 

솔로몬의 후계자 르호보암의 어머니도 암몬 여인 나아마(Naamah). 아마도 암몬의 공주였을 것이다. 다윗에 이어 솔로몬, 르호보암에 이르기까지 유다 지파만의 왕위 세습에 다른 지파들이 반발하며 왕국이 분열된다.

10개 지파는 이렇게 외친다.

우리가 다윗에게 받을 몫이 무엇인가. 이세의 이들에게서는 받을 유산이 없다. 이스라엘아, 저마다 자기의 장막에 돌아가라. 다윗아 너는 네 집단이나 돌보아라.” (열왕기 12:16)

북부의 10개 지파가 단결해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고, 남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등 2개 지파가 유다왕국으로 남게 된다.

북부 이스라엘 왕국은 여로보암을 시작으로 200년간 존속하고, 남부 유다왕국은 르호보암을 시작으로 350년간 명맥을 이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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