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이세벨 왕비와 아달랴 여왕의 모전여전
구약성서 이세벨 왕비와 아달랴 여왕의 모전여전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2.28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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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 모두 바알 신앙자, 유대 종교와 갈등으로 살해되는 비운의 주인공

 

구약성서 열왕기와 역대지에 수많은 왕들이 나오는데 유독 여왕이 한 명 등장한다. 그녀는 바로 유다 왕국의 여왕 아달랴(Athaliah).

아달랴 /위키피디아
아달랴 /위키피디아

 

당시 가나안의 유대인들은 북쪽에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에 유다 왕국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아달랴는 북국 이스라엘 왕국의 공주였다. 아버지는 아합(Ahab) 왕이고, 어머니는 왕비 이세벨(Jezebel)이었다.

아합 왕이 죽고 아들 아하시야(Ahaziah)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서쪽의 강력한 시리아 왕국에 맞서기 위해 유다의 여호사밧(Jehoshphat) 왕과 전략적 동맹을 맺었다. 이스라엘의 아하시야는 남북 동맹조약을 강화하기 위해 누이 이세벨을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Jehoram)에게 시집보냈다. 이후 이스라엘 왕국의 공주는 남편 여호람이 왕이 되면서 유다 왕국의 왕비가 되었다.

 

아달랴와 그녀의 아버지 아합, 어머니 이세벨 모두가 야훼를 따르지 않고 이교도의 신 바알(Baal)을 추종했다. 아합 왕은 수도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과 짓고 제단을 쌓았으며, 바알 종교의 여신인 아세라(Asherah) 목상도 만들어 세웠다.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은 페니키아의 도시국가 두로(Tyre)의 왕 엣바알(Ethobaal)의 공주로, 바알 신앙자였다. (열왕기상 16:31~33)

아합 왕이 페니키아에서 이세벨을 아내로 맞으면서 바알 신앙도 들여온 것이다. 이런 일로 아합 왕은 야훼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의 따돌림을 받는다. 구약성서는 아합 왕이 그 이전의 이스라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진노케 했다고 썼다. (열왕기상 16:33)

 

이세벨과 아달랴의 계보 /위키피디아
이세벨과 아달랴의 계보 /위키피디아

 

구약성서에는 이세벨과 아달랴를 마녀처럼 묘사되어 있다. 구약성서의 남성 중심주의에서 나온 편견일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야훼 신앙이 바알 신앙을 폄훼하면서 빚어진 결과로 보인다.

나봇이라는 농민이 포도농장을 갖고 있었는데 아합 왕이 그 농장을 갖고 싶어했다. 나봇은 야훼 신앙자일 가능성이 크다. 아합은 나봇에게 그 땅을 팔라고 하니, 나봇은 조상의 유산을 팔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에 이세벨이 마을 장로들을 부추겨 나봇을 죽이게 하고, 아합 왕으로 하여금 그 포도농장을 소유케 한다. (열왕기상 21:1~16)

야훼의 예언자 엘리야는 이세벨에 대해 개들이 이스르엘 성밖에서 이세벨의 주검을 찢어 먹을 것이다고 저주를 퍼붓는다. (열왕기상 21:21)

 

아합 왕이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 아하시야가 2년간 짧게 통치한 후에 죽으니, 그의 동생 여호람이 왕이 되었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에 아하시야와 여호람이라는 동명의 왕이 등장한다. 이스라엘왕 여호람은 요람(Joram)이라 부리기도 한다.)

 

유다 왕국에서 여호람 왕이 에돔과의 전투에서 패배한데다 지병으로 8년만에 사망하고,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된다. 아달랴는 왕의 어머니로 이스라엘의 아하시야에게 바알 신앙을 가르쳤다. (역대지하 22:3)

BC 841년에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에서 이세벨과 아달랴의 모녀가 모두 대비로 군림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스라엘엔 이세벨의 아들 요하람이, 유다에선 아달랴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고, 두 여인은 아들을 통해 두 왕국을 바알 신앙으로 물들이려 한다.

 

이러한 상황을 유대종교가 두고보지는 않았다.

북부 이스라엘에서 야훼의 예언자 엘리샤(Elisha)가 대장군인 예후(Jehu)에게 쿠데타를 부추긴다. 예후 장군은 유대종교의 신봉자였다.

엘리샤의 지시를 받은 수련생들은 예후를 찾아가 주가 말한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다..”고 말하고, 그의 머리에 왕위를 상징하는 기름을 붓는다. 예후는 유대종교의 지지를 얻어 장군들을 규합한다. (열왕기 9:1~12)

예후의 쿠데타가 시작된다. 당시 이스라엘의 여호람(요람) 왕은 시리아와의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은 이스라엘 왕을 문병하러 와 있었다.

예후는 한꺼번에 남과 북의 두 왕을 죽일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포착했다. 예후의 군대는 왕의 군대를 후방에서 쳤다. 예후가 쏜 화살이 여호람 왕의 가슴을 꿰뚤고 나갔고, 왕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함께 있던 유다의 아하시야 왕은 도주했다. 예후의 부하들은 유다의 아하시야 왕을 추격해 죽였다.

 

이세벨이 창문에서 던져지고 있다. (Gustave Doré) /위키피디아
이세벨이 창문에서 던져지고 있다. (Gustave Doré) /위키피디아

 

남과 북의 두 왕이 동시에 예후의 공격에 죽었다. 예후는 유대종교를 대변하며 잔혹하게 바알신앙자들을 처단했다. 그는 여호람 왕의 어머니 이세벨이 머물고 있는 이스르엘로 쳐들어갔다. 이세벨이 성의 창문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예후가 소리쳤다. “그 여자를 아래로 내던져라.” 시종들이 이세벨을 창문으로 내던지고, 예후는 말발굽으로 그녀를 밟아 죽였다.

예후는 이스라엘 아합왕의 아들 70명을 모두 죽여버렸다. 또 이스라엘에 살고 있거나 방문한 유다의 아하시아 왕의 친족들을 대량으로 학살했다.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이었다.

예후는 이어 바알 신앙자들의 집회를 연다는 명분으로 신도들을 강제로 불러 모아 호위병들로 하여금 학살하도록 명령했다. 이어 바알 신앙의 신전과 우상들을 모두 불태웠다. 예후는 이스라엘 왕국 제10대 왕이 되었다.

 

아달랴가 왕족을 살해하는 가운데 여호세바가 요아스를 구출하고 있다. (Harmen Jansz Muller, 1565–69) /위키피디아
아달랴가 왕족을 살해하는 가운데 여호세바가 요아스를 구출하고 있다. (Harmen Jansz Muller, 1565–69) /위키피디아

 

북부 이스라엘에서 바알 신앙이 예후에 의해 탄압받을 때, 남부 유다왕국에선 아달랴가 아들 아하시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여왕이 되었다. 그녀가 왕실 남자 가운데서 후계자를 모색하지 않은 것은 왕족 대다수가 유대종교 신앙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아달랴는 왕족 모두를 죽이려고 했다. 왕자들이 살해되는 가운데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Jehosheba)가 거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Joash)를 몰래 빼돌렸다. 여호세바는 제사장 여호야다(Jehoiada)의 아내로, 조카를 남편이 지키는 성전에서 보호했다.

아달랴는 여왕으로 6년간 집권했다. 그녀의 집권기에 유다 왕국에서는 바알 신앙이 보호되었다.

 

아달랴가 살해되고 있다. (Gustave Doré) /위키피디아
아달랴가 살해되고 있다. (Gustave Doré) /위키피디아

 

아달랴 집권 7년째 되던해 BC 836년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장로들과 성전의 신자들을 조직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으로 옹립하는 쿠데타를 벌인다. 구약성서 열왕기와 역대지는 여호야다의 쿠데타 과정을 상세하기 서술한다. 쿠데타군은 왕궁으로 들어가 아달랴를 처형했다.

유대종교 제사장이 이끄는 쿠데타군은 아달랴의 손자인 요아스를 왕으로 옹립한다. 요아스가 왕이 될 때 나이는 7살이었다. 실권은 제사장이 쥐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바알신전을 허물고 제단을 뒤엎고 신상들을 부수어 버렸다. 쿠데타 세력은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고, 유다 왕국을 다시 유대종교의 나라로 바꾸었다.

기독교적 해석자들은 이세벨과 아달랴가 악독한 면에서 모전여전이라고 평가한다. 기독교적 시각에선 그렇게 볼수 있다. 하지만 한발 떨어져 보면, 두 모녀는 종교갈등의 희생자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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