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통령의 배신으로 해산된 미국 첫 중앙은행
부통령의 배신으로 해산된 미국 첫 중앙은행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03.0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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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 이모저모(10)…거부감 팽배, 재인가 표결에서 부통령이 반대표결

 

미국 중앙은행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의 수장이 한 마디 하면 국제금융시장이 출렁거린다. 미국 중앙은행이 돈을 풀고 빨아당기는지 여부가 미국은 물론 세계적인 관심사다.

하지만 건국초기에 미국에선 중앙은행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았다. 경제발전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가 있었는가 하면, 부도덕한 금융인들에게 권력을 줄 수 없다는 부정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독립이후 미국은 두차례나 중앙은행을 설립했으나, 모두 20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은행가가 수전노라는 인식이 두 번의 실패를 초래한 것이다.

 

미국 역사상 첫 번째 중앙은행을 추진한 사람은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이다. 그는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의 기능을 본따 중앙은행이 연방정부의 세수를 관리하고, 연방정부와 시중은행에게 돈을 빌려주며, 통화공급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했다.

해밀턴 스스로가 뉴욕은행(Bank of New York)의 설립자로 중앙은행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당시 연방정부가 지폐를 발행하지 않았다. 은행들이 금과 은을 보유하고, 그 액수만큼 지폐를 발행하는 형태를 취했다. 그 지폐는 지역에서만 발행되어 유통되었는데, 중앙은행이 시중은행들의 지폐를 액면가만큼 받아들이면 전국적으로 지폐가 유통될 것으로 해밀턴을 생각했다.

 

해밀턴이 발의한 중앙은행의 정식명칭은 ‘The President, Directors and Company of the Bank of the United States’, 직역하면 미 합중국은행 주식회사다. 역사적으로는 이를 제1차 합중국 은행(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이라고 표현한다.

첫 번째 중앙은행은 주식을 발행해 자본금을 조성하는 주식회사의 형태였는데, 해밀턴은 자본 총액을 1,000만 달러로 구성하고, 지분의 20%를 연방정부가 소유하도록 했다. 당시 대형 은행 3곳의 자본급 합계가 200만 달러에 불과했으므로, 중앙은행의 자본금은 대단한 규모였다. 지분의 80%는 대형은행에 주식을 매각하거나 해외에서 자본을 유치해서 조성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미국 첫 중앙은행의 옛건물(필라델피아) /위키피디아
미국 첫 중앙은행의 옛건물(필라델피아) /위키피디아

 

해밀턴은 1790년에 합중국은행 설립에 관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남부 출신의 의원들은 북부 상공인과 은행가들을 위한 법안이라고 반대했다.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사람은 독립전쟁의 지도자인 국무장관 토머스 제퍼슨과 하원의원 제임스 매디슨이었다. 둘다 농업 위주의 버니지아 출신으로 은행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제퍼슨은 많은 토지와 노예를 물려받은 부자였지만 은행가들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이익을 보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

반대론자들은 중앙은행이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미국 헌법에 중앙은행을 두라는 규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버지니아 출신의 법무장관 에드먼드 랜돌프도 이런 주장에 합세했다.

남부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부주들은 상업활동을 위해 중앙은행을 지지했다. 덕분에 중앙은행 설립법안은 상원과 하원을 무난히 통과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도 중앙은행 법 서명을 주저했다. 이에 대해 해밀턴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금지 조항이 없는한 통치의 권한으로 중앙은행이 있어야 한다고 대통령을 설득했다. 대통령은 마침내 법안에 서명했다.

미국의 첫 중앙은행은 1781년에 설립되었다. 법안에는 중앙은행이 20년 기한으로 존재하도록 되어 있었다. 만기는 181134일이었다. 본점은 필라델피아에 설립되었다.

 

첫 번째 중앙은행은 나름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합중국은행은 필라델피아 본점에 이어 1년만에 뉴욕, 보스턴, 볼티모어, 찰스턴 등 항구도시에 지점을 냈다. 1810년엔 워싱턴, 뉴올리언스, 사바나, 노퍽에도 지점이 생겼다. 당시 시중은행들은 주 안에서 운영되었기 때문에 주 경계를 허물고 영업을 하는 은행은 중앙은행 밖에 없었다. 합중국은행은 연방정부의 예금을 독점했기 때문에 각주에서 발행되는 은행권을 전국으로 유통시키는 역할을 했다.

 

미국 제1차 중앙은행이 1792년에 발행한 어음 /위키피디아
미국 제1차 중앙은행이 1792년에 발행한 어음 /위키피디아

 

하지만 재인가일이 다가오자 적들이 노골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토머스 제퍼슨의 추종자들이 재인가를 반대했다. 주 은행들도 합중국은행의 연방정부 예산독점을 철폐하라고 주장했다. 특히 켄터키와 같은 서부의 신생주들이 동부 상업중심지에 심리적 저항감이 컸다.

또 합중국은행의 주주 가운데 영국인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미국은 당시 영국과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영감정이 격화되고 있었다.

당시 대통령은 제임스 매디슨이었다. 매디슨은 하원의원 시절에 중앙은행 설립에 적극적으로 반대했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니 중앙은행이 효율적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디슨 대통령은 합중국은행의 수명을 20년 늘리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배신자는 대통령의 바로 턱밑에 있었다. 은행재인가 법안에 대한 상원 표결에서 찬성과 반대의 수가 같게 나왔다. 상원에서 동수의 표결이 나롤 땐 상원의장을 맡는 부통령이 한표를 행사한다. 부통령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은 대통령의 뜻을 거역하고 부결에 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합중국은행 재허가법안은 부결되었다.

미국 역사상 부통령이 대통령의 정치노선에 반대한 유일한 케이스로 기록된다.

 

이렇게 해서 미국 첫 번째 중앙은행은 설립 20년만에 기능을 상실하고 정리되었다. 필라델피아의 본점은 연방법에 의해 정리되고, 지점은 각 주의 재허가를 받아 운용되었다. 필라델피아의 본점 은행의 동산과 부동산 등 자산은 프랑스 출신의 금융인 스티븐 지라드(Stephen Girard)에게 115,000 달러에 매각되었다.

 


<참고자료>

Wikipedia, 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

Wikipedia, Alexander Hamilton

Wikipedia, George Clinton (vice pres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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