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함반토타 항의 슬픈 운명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의 슬픈 운명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3.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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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고려로 건설, 부채 갚지 못해 중국에 99년간 조차…경제 종속 심화

 

인도 남쪽에 스리랑카란 섬나라가 있다. 이 나라 남쪽에 함반토타(Hambantota) 항구가 건설되었는데, 항만건설에 소요된 부채 112,000만 달러를 갚지 못해 2017에 중국의 국영항만기업 자오상쥐(招商局)에게 부채를 정리하는 조건으로 99년간 항만 사용권을 주어야 했다.

중국이 19세기 중엽에 아편전쟁에 패해 홍콩을 영국에 조차해 준 것과 반대의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스리랑카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다. 과거 영국은 무력으로 홍콩을 조차했다면, 현대의 중국은 돈으로 스리랑카 항만을 조차한 것이다.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한 나라를 종속시키려면 칼이나 돈을 통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영국의 칼이 중국에겐 돈으로 대체된 것이다.

 

컬럼니스트 리사 콘클린(Lisa Conklin)211일자 타이완타임스에 기고한 논평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중국은 수년동안 인도양 지역에서 진주목걸이(string of pearls) 전략을 통해 경제 발전을 미끼로 군사적, 전략적 이해를 확장해 왔다. 중국은 해양실크로드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스리랑카를 비롯해 남아시아 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금융종속을 유발하고 있다. 특히 스리랑카 투자에서 중국의 고전적인 제국주의적 전략이 적용되었다.”

 

함반토타의 위치 /위키피디아
함반토타의 위치 /위키피디아

 

스리랑카는 면적 65,000으로, 우리나라의 3분의2쯤 되고, 인구는 2,180만명이며, 1인당 GDP 1,400 달러로 가난한 나라다. 하지만 인도양 한가운데 위치해 중국으로는 중동원유 항로에 접근하는 길목에 있다.

이 나라는 어쩌다가 중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었을까. 그 이유는 다양하다. 스리랑카의 집권세력이 내전이 종식된 후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외자를 중국에서 끌어들였고, 중국도 일대일로 정책의 일환으로 이 섬나라에 달라는 대로 돈을 빌려줘 덫에 걸리게 한 것이다. 이른바 부채의 덫’(debt trap)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에 스리랑카가 희생양이 되었다고 할수 있다.

 

스리랑카는 1948년 영연방 국가로 독립해한 이후 타밀반군에 의한 오랜 내전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스리랑카 정부에 무기를 대주며 지원했다.

2005년에 대통령이 된 마힌다 라자팍사(Mahinda Rajapaksa)2009년에 26년에 걸친 내전이 종식시키고 본격적인 개발에 나섰다. 그의 고향은 섬 남쪽의 함반토타였다.

마힌다가 집권한 이후 그의 형제 3명은 정부의 주요 요직을 모두 차지했고, 그의 아들도 국회에 진출했다. 라자팍사 집안은 고향 함반토타의 침체한 경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원대한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그곳에 대규모 향구를 건설하고 선박을 유치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구상은 사전 경제성 조사에서 실패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이웃 인도에 투자를 요청했지만 인도 자본가들이 거부했다. 그 이유는 수도 콜롬보에 대형 항만이 있고, 여유 공간이 남아 있는데, 또다른 항구를 건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마힌다를 중심으로 라자팍사 가문이 함반토타에 항구 건설을 밀어부친 것은 고향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함반토타 항만 건설에 선뜻 돈을 빌려주겠다고 나선 곳이 있었다.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은 수출입은행을 통해 3700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갰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은 조건을 달았다. 중국 항만회사에 시공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리랑카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자오상쥐에 공사를 주었다. 함반토타 항구는 201011월에 공식 개장했다. 규모는 남아시아 항구중 최대였다.

하지만 항만이 건설된 후 배가 들어오지 않았다. 인도양을 항해하는 선박들은 기존의 콜롬보 항에 접안하고 함반토타에는 중국배만 들어왔다. 2012년에 콜롬보 항에는 3,667척의 배가 접안했지만, 함반토타에는 34척만 들어왔다.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타당성 조사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항만은 적자가 누적되었다.

이런 와중에 라자팍사 정권은 중국에 75,700만 달러의 추가 투자를 요청했다. 중국은 또다시 쾌히 승인했다. 하지만 조건이 까다로워 졌다. 처음 3억 달러는 변동금리 조건으로 이자가 1~2%애 불과했지만 나중 것은 고정금리 6.3%였다. 급한 김에 돈은 빌렸지만 라자팍사 정권으로선 이자도 갚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그래도 투자는 계속되었다.

 

함반타토 항 /위키피디아
함반토타 항 /위키피디아

 

2015년 대선에서 마힌다가 다시 출마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공사관은 마힌다 선거캠프에 자금을 지원하고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지원했다고 한다. 이해 선거에서 마힌다는 낙선하고,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Maithripala Sirisena)가 대통령이 되었다.

시리세나는 선거 기간에 한때 영국의 식민지가 이젠 중국에 잡아먹히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막상 정권을 잡으니 부채를 갚아야 했다. 라자팍사 정권이 친중국적이었는데 시리세나 정권은 중국과 다소 거리를 두었다. 중국은 돌변해 돈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시리세나 정권은 일본과 서방국가에 손을 내밀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중국은 항만을 내놓으라고 했다. 중국의 차관은 이자가 붙어 112,000만 달러가 되었고, 스리랑카는 부채를 터는 조건으로 중국 항만회사에 함반토타 항만회사의 지분 70%99년간 항만조차권을 주는 내용의 항복문서에 조인하게 된다.

 

서방국가들은 중국이 함반토타항을 인민해방군의 군사기지로 사용할 것을 우려했다. 이런 우려를 의식해 중국은 항만을 상업용으로만 사용하고, 항만 경비는 스리랑카 당국에게 위임했다.

하지만 중국 해군은 아무런 경고도 없이 콜롬보항에 잠수함을 기항시킨 선례가 있다. 중국은 아직도 스리랑카에 상당한 규모의 채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유사시 돈을 무기로 중국 함정의 기항을 요구할 경우 스리랑카 정부가 저항할수 없을 거라는 우려는 여전히 남는다.

2019년 동생 고타바야 라자팍사가 대통령에 오르고, 마힌다는 총리가 되어 라자팍사 가문이 다시 정권을 쥐었다.

 

리사 콘클린은 컬럼에서 불행하게도 스리랑카는 부채의 함정갬블에 빠져버렸다면서 이 나라는 항구의 주권을 상실해 주변국가의 안보에 큰 위협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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