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사냥은 임금님의 스포츠…신라에서 조선까지
매 사냥은 임금님의 스포츠…신라에서 조선까지
  • 아틀라스
  • 승인 2019.05.13 12: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려 때 응방이란 관청 만들어…지금은 문화재로 보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우리나라에서 매 사냥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인의 수렵활동이었던 매사냥은 황해도의 안악 1호분고구려 고분 벽화와 중국에 있는 삼실총’, ‘각저총’, ‘장천 1호분등의 고구려 고분 벽화에 매사냥 장면이 등장하는 것을 통해 삼국시대에 매사냥이 이미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시대에 매사냥이 유행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남아있다.

 

정홍래 작 욱일호취(旭日豪鷲)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우측은 매 부분 확대 /문화재청
정홍래 작 욱일호취(旭日豪鷲)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우측은 매 부분 확대 /문화재청

 

매 사냥은 왕실의 스포츠였다. 특히 역대 임금들이 좋아했다.

삼국사기에 신라 제26대 왕인 진평왕(眞平王)이 매로 사냥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진평왕은 당시 충신 김후직이 길을 막고 간언을 올릴 정도로 매사 냥에 흠뻑 빠져 있었다. 김후직이 옛날의 왕은 하루에도 만 가지 일을 깊이 걱정하며 좌우의 바른 선비 들의 직간을 받아들이고, 부지런히 힘써 편한 생활을 하지 않은 후에야 덕정(德政)이 순조롭고 아름다워져 국가가 보전되었습니다. 그런데 지 금 전하께서는 광부(狂夫), 엽사(獵士)와 더불어 날마다 매와 개를 풀어 토끼와 꿩을 쫓아 산야로 달림을 그칠 줄 모르십니다.”고 간했다.

또한 일본의 역사서 서기(書紀)에는 백제의 귀족 주군(酒君)이 일본 왕실에 매사냥을 전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매사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시기는 고려시대이고, 귀족층 사이에서 매 사냥이 성행했다.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가 최고의 전성기였다. 충렬왕은 매의 사육과 매사냥을 담당하는 관청인 응방(鷹坊)을 두었고, 이때 직업으로 매를 기르고 훈련시키는 응사도 등장했다. 특히 간도(間島) 와 북한지방에서는 해동청(海東靑, 송골매)’이라는 우수한 매가 산출 되어 중국과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 고려 후기 이조년(李兆年)이 쓴 응골방’(鷹鶻方)에는 매사냥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책에는 매의 생김새, 훈련법, 치료법, 관리 등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매사냥은 조선 시대에도 이어졌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즉위 4, 서울 성동구에 자리한 응봉산에 응방을 설치했다. 이 일대가 왕실 전용 매 사냥터였던 셈이다. 길들인 매를 날려 꿩 같은 조류나 들짐승을 잡는 매사냥. 조선시대 매 사냥은 왕과 귀족들이 즐기던 고급 스포츠였다.

그중 최고의 매사냥 애호가는 태종이었다. 태종실록에는 태종이 7 일 동안 매사냥을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매사냥에 가장 자주 나섰던 왕은 세종인데, 사냥에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선왕인 태종을 모시고 관람하는 일이 잦았다.

조선에서 임금이 매 사냥을 즐긴다는 소식이 중국에 전해지면서 명나라는 매를 조공으로 보내라고 요구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조선 왕실의 매사냥이 쇠퇴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매사냥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참매 /문화재청
참매 /문화재청

 

매는 하늘의 강자로, 작은 조류들과 육상 동물들을 표적으로 하는 맹금류다. 시력이 뛰어나거나 관찰력이 좋아 빈틈없는 사람을 지칭할 때 매의 눈이라고 하는데, 매가 하늘 높이 날면서도 작은 동물들의 움직임을 잘 관찰한다는 뜻이다.

참매는 눈 위의 흰색 눈썹선이 뚜렷하고 어른 새는 등이 회색이며 목 아래를 비롯한 몸의 아래는 흰색바탕에 적갈색의 가로줄무늬가 있다. 어린 새는 전체적으로 갈색을 띠며 등과 날개는 더욱 진한 색을 띠고 있다. 시베리아 지방과 중국 동북지방(만주), 중국 서부에서 히말라야까지 분포되었으며 사할린과 일본에서도 기록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각종 협약을 마련하여 보호하고 있을 정도로 희귀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 제323-1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매류는 전 세계에서 58종이 알려져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6종이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황조롱이와 매의 2종과 수리류 중 참매, 붉은배새매, 새매, 개구리매 등 4종을 한데 묶어 매류로 취급하여 1982년 천연기념물 제323-1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매는 예로부터 꿩 사냥에 사용해왔다.

참매는 나이나 조련 유무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진다. 일반적으로 1년 미만의 매를 보라매라 하고 1~2년 사이의 매를 초진이라 한다. 3년째 되는 매를 재진이라 하며 야생의 매를 산진이라 부르고 매사냥꾼에게 훈련받은 매를 수진이라고 한다. 이를 조선 후 기 사설시조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바람도 쉬여 넘는 고개, 구름이라도 쉬여 넘는 고개 /山陣(산진), 水眞(수진), 海東靑(해동청), 보라매도 다 쉬여 넘는 高峯(고봉) 長城嶺(장성령)고개 /그 너머 님이 왓다 하면 나는 아니 한 번도 쉬여 넘어가리라.”

 

매와 관련된 관용구로 사람들이 흔히 쓰는 시치미 떼다라는 말이 있다. ‘시치미는 얇게 깎은 네모꼴의 뿔이다. 여기에다가 매의 이름, 종류, 나이, 빛깔, 주인 이름 등을 기록한 뒤 매의 꽁지 위 털 속에 매단다. 시치미는 매의 주민등록증인 셈이다. 시치미만 보면 그 매가 길들여진 매임을 알 수 있고, 또 누구 소유의 매인지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성질 고약한 사냥꾼이 시치미가 달린 매를 잡아 시치미를 떼버린다. 시치미를 떼면 매는 본래 주인을 잃게 된다.

그 매의 주인이 자기의 매라고 주장하면, 훔친 사냥꾼은 마치 자기의 것인양 행동한다. 그것을 시치미를 뗀다고 한다.

 

매 사냥 하는 모습 /문화재청
매 사냥 하는 모습 /문화재청
매 사냥 하는 모습 /문화재청
매 사냥 하는 모습 /문화재청

 

매사냥은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전통적 가치와 희귀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국전통매사냥보전회(회장 박용순)는 매사냥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시를 오는 17일부터 19일까지 천연기념물센터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전통 매사냥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냥매가 전시된다.

전시에서는 매사냥(대전무형문화재 제8) 보유자인 박용순 응사(鷹師)의 전승 활동 체험, 대표적인 사냥매인 참매(천연기념물 제323-1), 황조롱이(천연기념물 제323-8) 등의 사냥 모습 관람, 매사냥의 변천사와 도구, 고서와 도화, 영상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응사는 조선 시대 응방에 속해 매를 부려 꿩을 잡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로, 오늘날에는 사냥에 쓰는 매를 맡아 기르고 부리는 사람을 뜻한다.)

행사에는 맹금(猛禽)의 보존전략 등에 대해 소개하는 특별강연과 매 훈련법인 사냥매 줄밥 부르기, 매 꼬리에 다는 시미치 만들기 체험도 준비되었다. 참가비는 무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