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 된 ‘말뫼의 눈물’…IT도시 탈바꿈
전화위복 된 ‘말뫼의 눈물’…IT도시 탈바꿈
  • 아틀라스
  • 승인 2019.05.1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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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갠트리 크레인, 한국으로 이전…그들은 새로운 도시를 재건했다

 

스웨덴 남쪽 발틱해 연안에 말뫼(Malmö)라는 도시가 있다. 그 도시에는 코쿰스(Kockums) 조선소가 있었는데, 20세기말에 유럽 최대였다.

이 조선소에는 갠트리 크레인(gantry crane)이 있었다. 1973~74년에 지어진 이 거대한 철골구조물은 그동안 75척의 대형 선박을 건조하는데 사용되었다. 자체 총 중량은 7,560, 폭은 165m에 이른다. 높이는 45층 빌딩과 맞먹는 138m이다. 상판의 폭은 13m로 버스 4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있다. 이 크레인이 한 번에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는 무려 1,500톤으로 세계 최대였다. 레일 폭은 175m이고 말뫼에서 사용될 당시의 레일 길이는 710m나 됐다. 말 그대로 골리앗이다.

코쿰스 크레인은 유럽 조선경기의 번영을 상징했다. 100년전에 설립된 코쿰스 조선소는 세계 최초로 LNG선을 건조하는 등 북유럽 최대의 규모와 기술력을 자랑했다. 이 회사가 건조한 선박은 세계 해운시장에서 명품이라고 불릴 만큼 우수했다.

하지만 코쿰스 크레인은 1997년을 끝으로 선박 수주물량이 끊기는 바람에 용도 폐기가 되어 버렸다. 처음엔 이읏 덴마크 회사에 매각하려고 협상이 진행되었으나, 그 회사가 파산하는 바람에 물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때 한국의 현대중공업이 나타났다. 현대중공업은 공짜로 이 크레인을 가져가기로 하고 법률상의 효력을 위해 ‘1달러 계약서를 작성했다.

현대중공업은 이 크레인을 해체, 선적, 설치, 개조, 시운전 등에 총 220억 원을 들였다.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지만 그래도 남는 장사였다. 현대중공업은 코쿰스 조선소에서 1개월에 걸쳐 레그(지지대) 두 개와 상판을 절단한 뒤 2개월간에 걸쳐 울산만 해양공장으로 이 크레인을 옮겨왔다.

코쿰스의 갠트리 크레인을 유럽에서 한국으로 옮겨 왔다는 것은 조선산업의 중심이 유럽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스웨덴인에겐 슬픔의 날이었다. 세계 최대를 자랑하며 말뫼의 상징이었던 갠트리크레인을 보내는 시민들의 마음은 서글펐다.

2002925, 스웨덴 제3의 도시 말뫼에서 이 크레인을 한국행 선박에 선적하던 날, 말뫼 시민들로 말뫼부두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스웨덴 국영방송은 장송곡을 내보냈고, 신문들은 말뫼가 울었다는 제목을 달았다. 스웨덴은 눈물과 인연이 많다. 추워서 울고, 사랑에 울고, 스웨덴의 대표 산업이 흔들려 눈물을 흘린다. 그후 말뫼의 눈물’(Tears of Malmö)’이라는 말이 생겼다.

 

1970년대 코쿰스 조선소의 갠트리 크레인 /위키피디아
1970년대 코쿰스 조선소의 갠트리 크레인 /위키피디아

 

말뫼의 갠트리 크레인을 뜯어 한국에 옮긴지, 27년이 되었다. 우리 조선업계는 수주량이 줄어들면서 일감이 떨어지는 상황을 맞았다. 대규모 합병과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중소조선소인 성동조선에선 이미 갠트리 크레인이 뜯겨 나갔다. 조선산업 본고장인 울산과 거제를 잇는 남해안 벨트가 가난해졌다. 조선산업이 무너진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앞길이 캄캄하다.

 

스웨덴 코쿰스 크레인을 뜯어 옮긴 현대중공업의 갠트리크레인 /현대중공업
스웨덴 코쿰스 크레인을 뜯어 옮긴 현대중공업의 갠트리크레인 /현대중공업

 

그 해답을 다시 갠트리 크레인을 한국에 떠나보낸 말뫼가 던져 주고 있다.

터닝토르소(Turning Torso) 빌딩 /위키피디아
터닝토르소(Turning Torso) 빌딩 /위키피디아

 

1980년대 스웨덴 조선산업이 불황에 빠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말뫼를 떠냈다. 1990~1995년 사이에 말뫼에서 27,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실업자가 넘치고 범죄가 들끓었다. 말뫼의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때 말뫼시에는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났다. 1994년에 사회민주당 소속 일마르 레팔루(Ilmar Reepalu)가 시장이 됐다. 그는 2013년까지 19년간 말뫼 시장을 맡았다.

그는 조선업 불황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재건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레팔루 시장은 말뫼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전통적인 공업 도시에서 지식기반 도시로 전환한다는 개념을 설정했다. 그리고 문화와 환경도시로 변모시킨다는 야심찬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말뫼의 정치인들은 1990년대 조선산업이 쇠락한 이후 IT 산업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도록 후원하며, 창업자들에게 저가의 렌트료를 주고 유치했다.

레팔루 시장이 계획한 두가지 프로젝트는 바다 건너 덴마크와 교량을 건설하고 조선소 부지에 초고층 주상복합빌딩을 건축하는 것이다. 지금 덴마크 코펜하겐과 스웨덴 말뫼를 연결하는 외레순 다리{Öresund Bridge}와 옛코쿰스 조선소 자리에 지어진 터닝 토르소(Turning Torso) 빌딩이 그의 치적이다.

레팔루 시장을 중심으로 말뫼시는 한때 도시를 상징하는 코쿰수 크레인을 철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코쿰스 조선소는 덴마크 회사에 인수됐는데, 그 회사의 엔지니어들은 이 크레인을 외레순 다리 교각으로 사용하기로 계획횄다. 하지만 인수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그 계획이 취소됐다. 따라서 누군가 철거 및 운송 비용만 대고 가져가길 바랬고, 현대중공업이 1달러 주고 가져간 것이다.

말뫼 시민들은 코쿰스 크레인이 해체되던 날 흘린 눈물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시 당국과 시민들은 그들은 조선소 터에 버려진 공장지대에 주거와 교육, 비즈니스, 여가 생활이 가능한 환경 친화적인 미래형 도시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중앙 정부에서 25,000만 크로네(340억원)의 지원을 받아 공장부지를 매입해 2002년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그들은 그곳에 친환경 뉴타운을 건설했다.

총면적 180ha에 이르는 친환경도시 프로젝트는 민관 합동프로그램으로 아직도 진행중이다. 크레인이 서 있던 배스타라함넨(western port) 지역엔 주거용 건물이 600개 가까이 건설됐고, 말뫼 대학도 이전시켰다. 뉴타운에 사용하는 에너지는 가정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재활용해 난방용 바이오가스로 변환시켜 사용하고 있다. 저탄소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친환경도시로 바꾼 것이다.

또 크레인이 해체된 자리엔 말뫼의 새로운 상징물로 54층짜리 초대형 건물(터닝 토르소)2005년에 완공됐다.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디자인했으며, 지금도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1층부터 90층까지 정확하게 90% 틀어져 있다고 한다. 북유럽에서 가장 높고 독창적인 이 건물로 인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말뫼로 찾아오고 있다. 뛰어난 작품성의 건축물이 도시를 살리고 있는 것이다.

 

외레순 다리 /위키피디아
외레순 다리 /위키피디아

 

말뫼는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이 바다로 이웃해 있어 다리를 놓으면 두 도시는 하나의 경제권으로 연결된다. 레팔루 시장은 덴마크와 합작으로 두 도시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기로 하고, 2000년에 외레순 다리를 완공한다. 7.8km의 다리가 연결된후 말뫼와 코펜하겐은 상업적으로 연결됐다. 지금은 말뫼 인구의 10%가 매일 이 다리를 건너 코펜하겐에서 근무한다.

말뫼는 1980년대 조선산업 쇠퇴 이후 믿을수 없을 정도의 변화를 겪으면서 환경 친화적 도시, 교육·문화·관광 도시로 재탄생했다. 코쿰스 조선소 자리는 이제 국제도시로 변모해 스웨덴 최초의 환경친화 지구로 설정됐다.

말뫼는 자갈과 모래라는 뜻이다. 13세기에 처음으로 항구도시가 건설될 때 백사장이었다. 16세기 이후 대도시로 확장돼, 지금은 스웨덴 제3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마르 레팔루 시장 /위키피디아
일마르 레팔루 시장 /위키피디아

 

크레인 철거는 한 산업의 종말을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하지만 말뫼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포스트 산업화 시대에 걸맞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크레인은 사라졌지만, 친환경 도시가 재건되면서 부유층과 중산층이 말뫼로 건너왔다. 조선산업 침체 때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말뫼로 몰려오면서 도시 인구가 늘어났다. 말뫼가 부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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