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백제 비밀 벗긴다…송산리 고분군 발굴 개시
웅진백제 비밀 벗긴다…송산리 고분군 발굴 개시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1.03.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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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고유제 봉행…백제왕릉의 진정성 회복과 복원 정비안 마련

 

공주 송산리 고분군은 충남 공주시 중심부에서 서북방으로 약 1지점인 금성동과 웅진동에 연접한 송산소라는 지역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13호로 지정되어 있다.

공주는 백제 문주왕이 475년에 한성에서 천도한 이래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이 538년 수도를 사비(부여)로 옮길 때까지 563년간 백제의 수도였다. 송산리 고분군은 웅진 도읍기에 재위했던 백제 왕과 왕족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고분들은 모두가 표고 약120m 정도되는 송산(宋山)을 북쪽의 주산(主山)으로 한 중턱 남쪽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데, 15호분은 모두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무덤 입구에서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널방(현실)에 이르는 널길이 널방 동쪽벽에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4호분은 바닥에 냇자갈을 깔아 널받침(관대)을 만들었는데, 5호분은 벽돌을 이용했다. 이처럼 같은 양식의 무덤이면서 구조와 규모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시기 차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5호분은 원형으로 남아 있으나, 14호분은 조사되기 전에 이미 도굴되었다. 이외에 벽돌무덤(전축분)으로 송산리벽화고분이라고도 불리는 6호분과 무령왕릉이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한 이 일대의 고분들은 모두 7기가 전해지는데, 송산을 주산으로 뻗은 구릉 중턱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수려한 공산성이 건너다 보이고, 서쪽으로는 곰나루의 금강이 아늑하게 감싸돌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충청남도의 명산인 계룡산이 눈앞에 펼쳐져 풍광이 뛰어난 이 곳은 명당으로, 당시에 사신사상에 따라 묘지를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공주 송산리고분군 /문화재청
공주 송산리고분군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송산리 고분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앞서 319일 오후에 고유제를 개최했다.

이번 고유제(告由祭)는 고분에 묻힌 백제왕과 지역주민에게 발굴조사의 시작을 알리고, 조사단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한 행사다. 행사는 국악앙상블 너울의 정읍사 공연을 시작으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송산리 고분군 조사의 경과 보고, 공주시 유림회 집례(集禮)에 따른 고유제 봉행, ·외빈 인사말씀, 시삽, 기념촬영 순서로 진행되었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에 다수의 고분이 발굴조사되었지만, 조사내용은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 이후 19716호분의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무령왕릉이 발견되면서 왕릉원으로서 송산리 고분군의 위상이 높아졌다. 특히, 무령왕릉은 삼국 시대 왕의 무덤 가운데 도굴되지 않고 능의 주인공과 축조연대, 내부구조, 부장유물을 온전하게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무덤으로서 문화재 가치가 뛰어나 발굴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공주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 /문화재청
공주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발굴조사에 앞서 2019년 공주시와 업무협약을 체결, 협업체계를 구축했다. 이후 송산리 고분군 일대의 고분 분포 현황조사, 지하물리탐사, 라이다측량 등 다각적인 조사를 시행했고, 그 결과 기존에 정비된 7기의 고분 이외에도 추가로 고분이 존재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특히 6호분 서쪽에 인접한 것으로 추정되는 29호분의 대략적인 위치를 재확인하는 등 중심 고분군들에 대한 추가 자료도 확보했다.

이번 발굴조사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 중장기 발굴조사의 첫 단계로, 일제강점기에 조사되었지만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29호분을 포함한 남쪽으로 넓게 뻗은 정비구간을 대상으로 한다. 단계별 연차 조사를 통해 송산리고분군의 본모습을 찾아 백제 왕릉의 진정성을 회복하고, 고분의 올바른 복원·정비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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