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말레이시아 단교…국제적 대북제재의 파장
북한-말레이시아 단교…국제적 대북제재의 파장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1.03.2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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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업가, 대북제재 위반…2017년 김정남 암살 이후 양국관계 악화

 

북한과 말레이시아가 1973년 이래 수립한 외교관계를 48년만에 단절했다. 그 직접적인 배경은 말레이시아가 북한 기업인으로 알려진 문명철씨를 미국에 송환한 것이다.

북한 외무성은 319일 성명을 내고 말레이시아와 국교를 단절한다고 밝혔다. 북한 외무성은 성명에서 "말레이시아 당국은 무고한 우리 공민을 범죄자로 매도하여 끝끝내 미국에 강압적으로 인도하는 용납 못할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면서 "이번 사건은 우리 공화국을 고립압살하려는 미국의 극악무도한 적대시책동과 말레이시아당국의 친미굴욕이 빚어낸 반공화국음모결탁의 직접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말레이시아도 국내 북한 외교관과 가족의 철수 명령을 내렸고, 평양의 말레이시아대사관 철수도 공식 발표했다.

 

북한이 언급한 사건은 북한 사업가 문철명씨가 2019년 미국 FBI의 요청으로 말레이시아에 체포된 사건이다. 문씨는 그동안 말레이시아 법원에 신병인도 무효화를 요청했고, 39일 말레이시아 대법원은 문씨의 상고를 기각해 최종적으로 인도가 확정됐다.

미국이 문씨의 신병을 요청한 것은 대북제재의 일환이다. FBI20195월에 문씨가 대북제재를 위반해 술과 시계등 사치품을 북한에 보냈고, 유령회사를 통해 돈 세탁을 했다는 혐의를 잡고 말레이시아에 정부에 그의 신병인도를 요청했다. 말레이상 당국은 그를 쿠알라룸푸르 외곽의 한 아파트에서 체포했다.

이 사건은 북한 국적자가 대북재재 위반으로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되는 첫 케이스로 기록된다. 따라서 이후 북한 국적자가 해외에서 대북제재를 어기고 불법행위를 벌일 경우 해당국의 승인만 있으면, 미국으로 송환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다. 이에 북한이 긴장한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외무부 청사 /위키피디아
말레이시아 외무부 청사 /위키피디아

 

미국의 소리방송(VOA)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와 북한은 1973년 공식 외교관계 수립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 때까지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북한 고려항공이 정기적으로 쿠알라룸푸르에 취항했고, 북한 근로자 수백 명이 말레이시아에 파견돼 광산업과 정보통신 IT 업계에서 일했다. 북한은 쿠알라룸푸르에 관광사무소를 운영했으며, 북한 고위 관리들의 말레이시아 방문, 말레이시아 총리의 평양 방문이 이어지면서 인적 교류도 비교적 활발했다.

2016년말 기준으로 쿠알라룸푸르의 북한대사관 외교관 수가 한국대사관보다 많은 30명에 달해 말레이시아가 북한의 동남아시아 공작과 외화벌이, 불법 활동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정찰총국 산하 기업이 2016년 말레이시아에 세운 위장업체가 군용 통신장비들을 아프리카로 불법 운송하려다 적발됐으며, 말레이시아를 북한 정권의 불법 활동 거점 중 하나로 지목되었다.

말레이시아 외무부의 데니스 이그네이셔스 전 미주담당 차관은 과거 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 관계가 우호적이었지만 양국 교역이 미미한 상황 속에 말레이시아는 얻은 게 거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와 북한 사이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20172월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화학무기로 암살당한 후부터였다. 북한 요원들의 사주를 받은 두 동남아 여성이 김정남을 VX 신경작용제로 암살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북한이 혐의를 부인하면서 양국은 상대국 대사를 맞추방했다. 게다가 북한 정권이 국내 체류 중인 말레이시아인들을 외교 인질로 삼자 말레이시아는 결국 이들의 송환 조건으로 김정남의 시신과 용의자 출국을 허용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외교관계만은 단절하지 않았고, 북한은 대사 없이 소수의 외교관만 주재시키며 업무를 계속 수행해 왔다.

 

말레이시아와 외교관계가 단절되면서 북한의 외교적 고립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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