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길 가는 차베스 포퓰리즘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길 가는 차베스 포퓰리즘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03.2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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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의 실패한 실험⑧…마두로, 국민들에게 쓰레기통 뒤지게 했다

 

우고 차베스가 201335일에 사망한 후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보궐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마두로는 1962년 노동운동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니콜라스 가르시아(Nicolás Maduro García)는 유명한 노조 지도자였다. 마두로는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마을에서 자라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그는 수도 카라카스에서 버스 기사로 일하면서 비공식 노조활동에 참여, 정치운동에 발을 디뎠다. 그후 좌파정치인으로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호세 랑겔(José Vicente Rangel)의 경호원으로 일했다. 24살이 되었을 때에 쿠바 하바나로 가 공산주의 사상교육을 1년간 받았다. 귀국한 후 쿠바의 정보요원으로 활동하다가 우고 차베스가 군부내 조직한 지하단체 MBR-200에 가입했다. 그후 차베스가 1992년 쿠데타에 실패해 투옥되었을 때 그의 석방운동을 벌였으며, 1998년 차베스가 만든 제5공화국당에 가입했다.

애초에 마두로는 차베스의 핵심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조직, 특히 차베스에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보였고, 그 덕분에 빠르게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 나갔다. 2000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외국어도 모르는데 2006~2012년 사이 6년간이나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2011년 차베스는 폐암 수술을 받으면서 후계자를 물색할 때 다른 혁명동지를 제치고 마두로를 선택, 20121012일 부통령에 지명했다. 차베스는 그 해말 뇌사상태에 빠졌고, 이후 마두로는 차베스를 대행하며 정부를 이끌었다.

201335일 차베스가 사망하자, 그는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었고, 414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엔리케 카프릴레스(Henrique Capriles)50.6% 49.1%의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13년 4월 19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취임 선서 /위키피디아
2013년 4월 19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취임 선서 /위키피디아

 

마두로가 집권했을 때, 차베스기 누리던 시류의 방향이 바뀌었다. 국제유가는 2014년 배럴당 100달러에서 50달러로 급락했다. 미국에서 셰일가스 채굴기술이 개발되어 원유를 양산하자, 사우디아라비아가 OPEC를 주도하며 미국 셰일석유산업을 죽이기 위해 원유양산체제에 돌입한 게 유가하락의 원인이었다.

베네수엘라 GDP에 석유산업이 GDP48%였고, 수출의 95%가 석유대금이었다. 베네수엘라는 땅에서 나는 기름으로 사는 일종의 불로소득 경제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차베스는 비싼 값에 기름을 팔아 그 돈으로 인민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집도 지어 주고 의료혜택을 베풀수 있었다.

그러나 차베스 말기에 이미 경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무리한 국영화 정책은 베네수엘라에 투자한 외국자본의 탈출을 자극했다. 자본이탈(capital flight)은 통화 가치하락으로 이어졌고, 수입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다. 전적으로 석유에 의존하다보니 국내제조업은 육성되지 않았다. 생활필수품은 거의 외국산에 의존했는데 통화절하로 가격이 급등했다. 게다가 차베스가 말기에 돈을 찍어내면서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들었다.

 

재정수입이 줄어들면 정부의 씀씀이와 복지혜택을 줄이는 긴축재정을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차베스의 머리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그는 차베스 시절의 복지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수입이 주는데 지출이 그대로면 재정 적자가 커져 간다. 국제유가는 반등의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하락은 장기추세를 보였다. 셰일가스 생산은 미국을 세계 제1의 산유국으로 부상시켰고, 2등국으로 쳐진 사우디의 양산 공세는 2010년대를 관통했다.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의 또다른 문제는 원유의 질이 나쁘다는데 있었다. 베네주엘라산 원유는 중질유로, 정제하는 과정에서 경질유를 섞어야 한다. 베네수엘라는 원유를 정제하기 위해 외국에서 경질유를 수입해야 한다. 게다가 채굴과정에 비용이 많이 든다. 유가가 하락할 경우 베네수엘라 석유의 채산성이 낮아진다.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이하로 내려가면 거의 채산성이 없다.

게다가 202~2003년 석유산업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단행했을 때 차베스 정권이 2만명에 가까운 기술자들을 해고하는 바람에 산유설비의 경쟁력이 떨어져 있었다. 원유채굴 기술의 부족으로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은 하루 300만 배럴에서 100만 배럴로 줄어들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로 떨어지면서 베네수엘라의 석유산업은 마비상태가 되었다. 베네수엘라 경제가 유가 급락의 직격탄을 입어 2014-3.9%, 2015-5.7%에 이어 20168.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베네수엘라 볼리바르화의 환율 추이 /위키피디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화의 환율 추이 /위키피디아

 

마두로 정권은 원유수입 감소에 따른 부족한 재정을 화폐 발행으로 채웠다. 화폐발행 증가는 곧바로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다. 2014년 인플레이션은 69%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어 2015년에 181%로 세계 1위와 베네수엘라 역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2015~2018년의 인플레이션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다.

문재는 재정수입이 줄어들 때 예산을 줄이는 고통을 수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마두로는 차베스에 이어 포퓰리즘 정책을 취했고, 세수가 줄어도 빈민들에게 주는 복지혜택을 조금도 줄이려 하지 않았다. 대안은 없었다. 돈을 찍어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얼마나 돈을 찍어 냈는지, 볼리바르화는 휴지조각이 되었다.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물을 찾는 베네수엘라인들. /위키피디아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물을 찾는 베네수엘라인들. /위키피디아

 

돈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극심한 물자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석유대금이 줄어 외국산 생활물자 수입이 줄어들었다. 2014년 물자부족율은 28%에 달했다. 정권은 물자부족율 통계를 더 이상 발표하지 않았다. 정부가 운영하는 식료품 가게의 선반이 텅 비어버렸다. 2015년말 베네수엘라의 생활필수품 부족률은 75%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2016년부터 베네수엘라는 대기근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20165월 마두로 대통령은 경제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좌파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했다. 생활필수품이 모자라 군중들이 밀가루와 닭고기, 속옷까지 약탈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경찰과 군이 출동해도 이를 저지하지 못했다. 전력이 모자라 한밤엔 불을 끄고 살아야 했다. 대통령을 소환하자는 국민운동이 일어났다. 음식물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국민들의 모습은 외신들에 의해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살기 힘든 국민들은 국경을 넘어갔다. 콜롬비아, 브라질로 넘어 가는 국경에는 군중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빵과 치킨, 세탁비누, , 화장지등 부족한 생활플수품을 구하러 국경을 넘었다. 그 이후엔 아예 베네수엘라를 떠나버렸다.

 

2016년 베네수엘라 시민들의 항의 시위 /위키피디아
2016년 베네수엘라 시민들의 항의 시위 /위키피디아

 

마두로 정권에 대한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저항시위는 2014년부터 시작되었다. 201512월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연합 라운드테이블이 56.2%의 득표율로 승리해 의회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1999년 차베스의 대통령 당선 이후 좌파진영의 첫 패배였다.

이후 베네수엘라는 정치적·경제적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마두로 정권의 지지기반은 대법원, 선거관리위원회, 군부였다.

2016년 야당은 마두로 대통령의 소환을 국민투표에 부치려 했지만, 선거관리위원회가 반대했다. 또 대법원은 야당의원 3명에 대해 선거법 위반혐의로 자격정지처분을 내렸다.

2017년 의회는 마두로 대통령에 대해 불신임안을 결의했다. 이에 대법원은 의회의 입법권과 면책특권을 박탈하는 판결을 내렸다. 마침내 20191월 후안 과이도(Juan Guaidó) 의회 의장이 임시 대통령을 선언하면서 2개의 정권이 탄생했다.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 뿌리는 차베스의 대중주의, 즉 포퓰리즘에 있다. 베네수엘라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차베스에서 시작한 포퓰리즘은 이 나라를 인류역사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길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Wikipedia, Nicolás Maduro

Wikipedia, 2013present economic crisis in Venezuela

Wikipedia, Crisis in Venezu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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