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포퓰리즘 정권 20여년 지속한 비밀
베네수엘라 포퓰리즘 정권 20여년 지속한 비밀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1.03.2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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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견제장치 무력화, 극렬 지지층의 테러화, 언론과 대기업 장악

 

우고 차베스 14(1999~2013), 니콜라스 마두로 8(2013~), 베네수엘라에서에선 도합 22년간 포퓰리즘 정권이 유지되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매장국인 이 나라에선 땅속의 자원에서 지대(地代)를 걷어 국민들에게 나눠 주며 포퓰리즘을 시행한지 20여년 동안에 경제는 거덜이 났다. 지폐는 휴지조각이 되었고, 대중은 가난해져 음식물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고, 인구의 10%가 생존을 위해 이웃나라로 밀입국했다.

궁금한 것은 이런 나라에서 어찌 정권이 교체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베네수엘라는 남미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 민주화 요구가 강한 나라다. 그런 나라에 독재적 장기집권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창업자 격인 차베스는 부패한 독재정권과 싸워 인민에게 빵과 자유를 준 혁명가였고, 대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었다. 그도 권력에 맛을 들이며 서서히 독재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의 후계자 마두로는 대중적 지지도 떨어졌고, 권력이 분산된 상태에서 권좌에 올랐다. 마두로 시기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인민은 나락에 떨어졌다. 그럼에도 마두로는 권력을 유지했다. 그 배경은 뭘까.

서양의 학자와 언론들은 실패한 포퓰리즘의 대표적인 나라로 베네수엘라를 꼽는다. 연구자들은 베네수엘라 포퓰리즘 정권의 장기집권에 관한 배경에 대해 많은 논문을 쏟아냈다. 이들 연구의 대체적인 일치점은 포퓰리즘 정권이 국가 제도를 변경시켜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차베스와 마두로의 두 정권은 사법제도, 선거관리위원회, 국영석유회사, 군부, 언론을 장악하면서 민주적 요구와 야당의 정권교체 가능성을 봉쇄했다. 게다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지역단위 조직을 강화해 콘크리트와 같은 지지기반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을 정리한다.

 

2017년 베네수엘라의 헌법수호 시위 /위키피디아
2017년 베네수엘라의 헌법수호 시위 /위키피디아

 

헌법 개정사법부 무력화

우고 차베스는 집권 첫해인 1999년 헌법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의 정당성에 대한 지지를 얻고, 곧이어 총선을 통해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야당이 장악하고 있는 합법적 의회와 대치했다.

두 의회의 정통성에 대한 분쟁은 대법원에 올라갔다. 차베스는 대법원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동원했다. 그는 8명의 대법관을 쫓아내고, 제헌의회가 유일한 의회라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 냈다. 여기서부터 베네수엘라의 대법원은 독립성을 잃게 된다. 당시 남미 최초의 여성 대법원장이었던 세실리아 소사(Cecilia Sosa)법원이 제헌의회의 사형집행에 앞서 자결을 선택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제헌의회는 5년 단임의 대통령 임기를 6년 연임으로 하는 내용으로 헌법을 개정, 차베스의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 주었다.

 

대기업 장악복지재원 확보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1976년 석유산업 국영화 조치로 베네수엘라의 석유산업을 총괄하는 단일 회사로, 국가 GDP의 절반, 수출의 95%를 차지한다. 차베스 정권은 2003년 파업을 제압하고 노동자 18,000명을 무더기로 해고했다. 차베스는 또 이사진을 친정부 인사로 교체해 경영권을 장악하고, 회사의 이익금을 재정으로 전환했다. 포퓰리즘의 재원을 석유에서 마련한 것이다.

 

2017년 콜렉티보들의 시위 /위키피디아
2017년 콜렉티보들의 시위 /위키피디아

 

정치집단의 무장화

경제위기와 독재에 항거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도 차베스와 마두로 정권은 끄덕하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민간으로 구성된 준군사조직이 활동하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에는 콜렉티보(Colectivo)라는 좌파 조직이 수십개 있다. 콜렉티보는 버스조합, 택시조합과 같은 동업조합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데, 도시빈민가와 농촌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나라의 사설 무장조직은 차베스가 볼리바르 서클(Bolivarian Circle)이라는 친위대를 조직하면서 시작되었다. 2002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서클 회원들은 대통령군을 에워싸고 차베스를 복귀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 친위대가 확대되면서 마두로 정권에서 60여개의 콜렉티보가 조직되었다. 이들은 정권에 반대하는 인사에 대해 테러를 가하거나 집단적 린치를 자행한다.

이들은 민주화 시위대를 저지하는 결사대 역할도 한다. 정권을 이 조직을 조국을 수호하는 근간이라 치켜세우고 있다. 대학에서 시위가 일어나면 총을 쏘아 학생들을 겁을 주고 약탈하는 일도 이들의 행위였다. 2019년 전기회사의 태업으로 정전소동이 벌어졌을 때 마두로는 이제 평화를 위해 적극적인 저항에 나서야 할 때라며 콜렉티보의 집단행동을 부추기기도 했다.

 

2007년 6월 1일 대학생들이 RCTV 면허 취소 결정에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위키피디아
2007년 6월 1일 대학생들이 RCTV 면허 취소 결정에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위키피디아

 

언론장악

RCTV(Radio Caracas Televisión)1953년 라디오 방송을 시작으로 TV방송에 진출한 민영방송이었다. 20075월 차베스 정권은 RCTV의 재면허를 인가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2002년 반차베스 쿠데타 때 차베스의 건재함을 보도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차베스는 복귀후 이 방송을 파시스트라고 욕을 하며 쿠데타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했다.

200612월 방송면허 재심의 과정에서 차베스는 RCTV의 면허를 연장하지 않을 것임을 공언했다. 대법원은 방송통신위원회의 결정을 합법적이라고 동조했다. RCTV2007527일부로 54년의 전파송출을 마감했다.

RCTV는 시범케이스였다. 정권에 반대하는 언론은 폐쇄를 각오해야 했다. 이후 베네수엘라 언론들은 완전히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도만 했다. 2015년 국경 없는 기자회는 베네수엘라의 언론자유도를 180개국 중 137위로 분류했다.

 

 

권력 견제장치 상실

마두로 정권은 차베스의 지병이 악화되면서 갑작스럽게 권좌에 오른 인물이다. 지도자가 사라진 이후 그는 차베스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비판을 받을 정도로 약체로 출발했다. 그는 2013년 보궐선거에서 1.5%의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쉽게 권력을 장악했다. 형식적으로 독립된 각 기관의 수장 자리가 볼리바르주의자에 의해 채워졌기 때문이다. 대법원, 선거관리위원회, 감사원, 검찰청 등 헌법상 독립기관은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대중주의에 부합했고 야당의 공세를 막아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201512월 총선에서 야당연합이 109, 마두로 지지 여당이 55석을 얻어 집권여당이 완패했다. 1999년 차베스 집권 이래 16년만에 이뤄진 첫 야당의 승리였다.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표가 야당으로 쏠린 것이다.

이듬해인 20165월 야당은 마두로 소환을 위해 필요한 수의 서명을 받아 선거관리위원회에 국민투표 실시요구안을 제출했다. 선관위 위원들은 대부분 마두로가 심어 놓은 사람들이었다. 선관위는 야당 요구의 적법성은 인정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마두로의 퇴진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일정을 질질 끌다가 마침내 취소해 버렸다.

20175, 마두로는 차베스가 써먹은 수법을 재인용했다. 그는 합법적 의회를 무력화시킬 요량으로 대통령 비상조치를 발동해 제헌의회를 소집했다. 야당이 제헌의회 선거를 보이콧한 가운데 마두로 지지파들로 제헌의회가 구성되었다. 대법원은 제헌의회를 합법기구로 인정하고, 합법적 의회를 해산시켜 버렸다. 헌법질서를 수호해야할 대법원마저 정권의 시녀가 된 것이다.

 


<참고자료>

Amid Bennaim, The Death of the Autonomous Venezuelan Judiciary

Wikipedia, Venezuelan general strike of 20022003

Wikipedia, Colectivo (Venezuela)

Wikipedia, RCTV

Wikipedia, 2017 Venezuelan Constituent Assembly e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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